[생각편] 단순한 사람이 행복한 이유
경우의 수
전형적인 문과 체질인 내게 수학은 '높은 대학을 잘 갈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중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분야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확률'이었다.
'철수와 영희가 서로 마주 보고 앉을 확률은?'
'A에서 B까지 최단 거리로 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이렇게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나면, 괜시리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듯한 성취감까지 느꼈다.
그건 아마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경우의 수'를 그려보는 내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내 머릿속을 뒤덮은 수많은 nCr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특히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이나 꿈과 관련된 일이라면, 내 머릿속은 자동으로 nCr 계산 모드로 전환된다.
'부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야 하는데 자차로 갈까, 아니면 택시로 충분할까? 응급실로 바로 가야 할까, 외래를 잡야 할까? 이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상급병원에 갈까? 그럼 지금이라도 차를 돌려야 하나?'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은 그 짧은 순간에 떠오른 생각들이다.
이처럼 모든 경우의 수를 펼쳐놓고 최선의 선택을 해보려 하지만, 얼마 못가 고려해야 할 변수와 불확실성에 가로막혀 버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우왕좌앙하며 눈 앞의 상황을 '공포'에 질린 채 바라보게 된다.
무엇도 내 뜻대로 컨트롤할 수 없고,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알 수 없기에 불안감이 나를 압도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면 옆에서 나를 묵묵히 지켜보던 남편이 내 손에서 차 키를 빼앗아 곧장 시동을 건다. 그는 우선 부모님께 가 상황을 지켜본 뒤, 가장 빠르고 무난한 선택을 내려 곧장 실행에 옮긴다.
나는 그의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지만,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모든 일을 빠르게 해결해 나간다.
그렇게 상황이 종결되고 나면 그동안 내 머릿속에 펼쳐져 있던 수많은 경우의 수들은 어느새 '쓸데없는 걱정'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SIMPLE IS THE BEST!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여보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묻는다.
그러면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너도 그런 생각하지 않았어?"라고 답하는데, 사실 그의 행동은 내가 떠올린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였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때 가서 그 일이 생기면 그때 해결하면 되는 거지! 지금 당장은 눈앞에 닥친 상황 에만 집중하면 돼. 난 '만약'이나 '나중'은 지금 당장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역시... 내가 이 남자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지.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이 사람.
'SIMPLE IS THE BEST'라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
이렇게 또 한 번 경우의 수에 치여 사는 나는 남편에게서 인생을 조금더 쉽게, 조금 더 편하게 사는 방법을 배운다.
넘쳐나는 '경우의 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