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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Soom Sep 18. 2022

당신의 오십

유니콘 같은 그런


몇 년 전만 해도 어른은,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되는 건 줄로나 알았다. 게다가 그 '어른'이란 게 일면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치 유니콘을 만나길 꿈꾸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달까.


이렇게, 매년 다를 바 없이 또. 쓸쓸한 삼십 줄에 서서 나는 다를 바 없이 인생이 뭔지 행복은 또 뭔지 사랑이 뭔지, 하는 답 없는 질문들에 넘어지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일어난다. 그리고 어제의 당신의 고백을 곱씹는다.


오십에 선 당신.


나보다 이십 년을 질러 살아놓고서도 어째서 나와 다를 바 없는 고민에 넘어지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일어나는 거냐 묻고 싶었다. 원래 인생이 그런 거냐고. 분명히 내가 만난 어떤 어른들은 답을 아는 듯이 굴었는데 어째서 당신은 여전히 답을 몰라서 주저앉아 우는가?


확신이 없는 나 스스로가 답답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배움을 지속하며 진리니 자유니 사랑이니 그런 거창한 것을 고민했는데... 당신은 이런 내 고민에 답한다.


내 나이에도 노답이다. 아직도. (w/눈물 한 방울 또륵)


그 솔직한 고백에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고약하게도 우는 당신의 글을 읽으며 묘한 위로를 받아버렸다. 당신이 울어서 좋았다. 오십 살에도 끙끙거리며 아파해서 좋았다. 당신의 가슴에 난 빵꾸가, 그 빵꾸를 보란 듯이 전시한 당신의 고백들이 내 마음을 만족시킨다. 정말 고약하게도.


이게 답이라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인생은 영원하지 않으니 아까운 줄로 알라고, 젊음을 아쉬워하며, 알차게, 소중히 살라고, 자기 자신을 아끼라고. 그딴 이래라저래라 보다 사십에도 오십에도 달라질 것 없이 괴로웠다는 말들에 큰 힘을 받았다.


포장지를 벗기고 (알몸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속살을 내보이는 일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더 나이를 먹도록 생존해있는다면 적어도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포장 속 내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면 좋겠다. 하여,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은-유니콘 같은 어른이 되는 것은 포기한다.


최대한 벗겨버려도 아쉽지 않을 단출한 포장지를 생각해본다. 아니, 말은 이렇게 해도 인간인지라 때때로 간지 나는 모양새를 하고 싶어 지겠지. 그런 욕망도 판단치 않으며 살고 싶다. 어쨌든 당신처럼 오십에도 엉엉 울면서 말하기에 용기 낼 수 있길 바란다. 그대로의 당신이 그대로 내 안에 들어와 위로가 되었듯... 나의 그대로가 누군가의 그대로를 수긍해주는 모양이 되길.... 결국에는 그런 유니콘 같은 일을 또다시 상상하며...


당분간은 당신의 고백을 곱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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