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왜 이렇게 어렵나요
임신 준비 중인 36살 예비맘입니다. 저희 부부가 임신을 시도한 지 만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동안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임신 준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난임병원에서 검사를 받기도 하고, 영양제를 꾸준히 챙겨 먹기도 하고, 어떤 음식이 좋은지 어떤 음식은 조심해야 하는지 등 열심히 공부한 내용도 함께 공유해 볼까 해요. 첫 번째 이야기는 딩크족이었던 우리 부부가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22년 3월, 우리 부부는 약 7년 간의 딩크족 생활을 졸업하고, 35살(동갑)의 나이에 2세를 갖기로 결정했다. 사실 딩크족 졸업을 하는 몇 달간의 과정에서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전 아이는 싫다는 단호한 남편의 의견을 시작으로 우리 부부가 딩크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는 여러 이유에 마음이 동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기울었고, 그 결과 우리 가족은 남편과 나, 개, 토끼(딩크족이지만 나름 대가족) 이렇게 구성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작년 가을 쯤부터 남편이 '만약 아이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어떨 것 같냐'는 식의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화들은 대부분 '어차피 안 낳을 거면서 그런 건 왜 물어봐'로 끝이 났다. 그리고 작년 봄, 남편의 충격적인 발언.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이는 절대 싫다던 남편 입에서 이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라고?
딩크족이 될 때도, 졸업할 때도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누며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린 건 맞지만 남편이 이런 화두를 던질 때마다 깜짝 놀라는 건 늘 내 몫이다. 내 나이 35세에 임신을 하자니. 그 젊은 황금 시절을 다 흘려보내놓고 의학적으로도 노산이라고 여기는 나이에 갑자기 2세에 대해 언급하다니. 괘씸하다.
주변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들이 몇몇 있지만, 나는 절대 낳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호기심 있게 들여다 본 적이 없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갑작스러운 임신을 했을 때도 마음 한가득 축하를 전했지만, 어쩌다 또는 어떻게 임신이 된 건지 궁금하지 않았다. 임신에 관한 아무런 관심도 없었기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마냥 열심히 사랑하다 보면 아이가 찾아오는 건가?
작년 3월, 딩크족에서 갑자기 열렬 임신 준비자가 된 나는 주변에 조언도 구하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임신 전 해야 하는 검사가 있는지, 영양제는 뭘 챙겨먹어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피해야 하는지 등등. 심지어 나의 탈딩크족 선언에 신이 난 지인 한 분은 35세 나이엔 100번을 해도 생길까 말까이니 최선을 다해서 굿밤을 보내야 한다고 조언하기까지 했다.(그만큼 가까운 사이다.)
참 이상하다. 아주 오래 전 원시인들도 아무런 지식 없이 본능으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고, 동물들도 자연스럽게 후손을 남기는 일이 당연한데, 왜 나는 임신이라는 게 처음부터 어려운 미션처럼, 해내야 하는 목표처럼 여겨졌을까.
처음 몇 달은 배란일일 거라 생각하는 날짜에 맞춰서 시도를 해봤다. 결과는 꽝. 평생 챙겨먹은 적 없던 영양제를 하나 둘 사모으기 시작했고, 없으면 큰일 나던 커피도 줄이기 시작했다. 직업스트레스도 심한 편이어서 마인드 컨트롤에도 신경 썼다. 한 번도 어긋난 적 없이 아주 규칙적인 내 월경이 원망스럽기 시작했고, 나나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는 와중에도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 산부인과 내원은 미루고 있었다.
아이를 갖자고 한 남편이 미웠고, 남편이 피곤해 먼저 잠드는 날이면 그 미움이 분노로 바뀌기도 했다. 남자는 할아버지가 되어도 임신이 가능할 지 몰라도, 여자는 유한하다고!!! 잔뜩 기대했다가 또 월경을 한 어느 날은 엉엉 우는 나에게 남편이 "아이가 있으면 더 즐겁고 행복할 것 같으니 우리 부부에게 오게 하자는 거지, 아이가 없다고 우리가 불행한 게 아니야. 아이를 갖는 과정이 고통이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전했다. 맞네. 우리 재밌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나는 왜 혼자 미션을 만들고 매번 실패한 기분을 겪고 있었던 걸까.
사춘기 소녀처럼 약 9달 동안 온갖 질풍노도를 겪고 결심했다. 병원에 가보자. 1월 초 난임병원에 예약해 나와 남편 모두 검사를 받았다. 뭐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그것을 해결하면 바로 임신이 될 것만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둘 다 모두 건강하고 임신하기에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몇 십만 원을 들여 검사했건만 모두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전부라 기분이 이상했다. 나 좋아해야 하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그럼 그동안 왜 임신이 안 된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거기다가 내 울적함에 불을 지핀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다 좋은데 난소 나이가 조금 많아요.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올해 내 나이 36세, 난소 나이 38세. 난소 나이가 많다는 건 남아있는 난자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두르라니. 나보다 더 조급한 사람이 어디있다고. 여기서 어떻게 더 서두르라는 거야. 난자도 적으면 월경이라도 불규칙적으로 몇 달 뛰어넘고 그럴 것이지 어찌나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나가버렸는지. 그날은 마음속에 온갖 태풍이 몰아닥쳤다.
생각해 보면 작년 내내 스트레스가 찰랑찰랑 위험수위였다. 직업 스트레스가 극심했는데, 거기에 임신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어쩌면 임신이 어려웠던 건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데, 난임의 원인이 아니란 법 없잖아? 그런 상태에서 난임병원에 다녀온 뒤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했고, 의외로 그것을 계기로 마음이 매우 의연해졌다. (이상한 전개라고 생각할지도) 이름도 모를 아가야, 네가 오고 싶을 때 오렴. 오고 싶지 않다면 그걸로도 괜찮단다. 이 엄마(아직 스스로 엄마라고 말하는 게 매우 어색하다)는 네가 왔을 때 즐거울 수 있도록 다시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있을게. 안 오면 니 손해란다.
임신에 관한 나의 첫 이야기로 오늘은 딩크족이었던 우리 부부가 임신 준비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겪었던,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았어요. 아직도 임신 소식이 없기 때문에 임신 꿀팁과 같은 건 없지만 제가 공부한 내용들, 소소한 감정을 다루는 방법 등을 앞으로 써볼 예정이에요. 다음은 슬프게도 첫 임신과 유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