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만들어가는 미래 모빌리티는 어떤 모습일까?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제조 기술의 현황과 신기술 방향성을 공유하는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4’를 개최했다. 이포레스트는 자동화 및 정보화 제조 솔루션을 바탕으로 인간 친화적인 스마트 기술을 적용한 현대차·기아의 스마트 팩토리 브랜드다. 올해로 5회 차를 맞은 이포레스트 테크데이에서 현대차·기아는 약 200건에 달하는 신제조 기술을 전시하고 나아가 협력사, 대학, 연구기관 등과 기술 교류의 장을 마련해 미래 공장 실현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올해 이포레스트 테크데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바로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oftware Defined Factory, 이하 SDF)’이다. SDF는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제조 시스템의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미래 공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SDF는 공장 설비의 성능과 품질, 생산성을 소프트웨어로 신속하게 업데이트함으로써 지속적인 품질 관리와 생산 효율 개선, 그리고 유연하되 최적화된 운영이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행사를 통해 SDF 비전 아래 소프트웨어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조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했다. 아울러 SDF를 구현하는 다양한 제조 신기술과 모빌리티 제조 솔루션을 공유해 참가자들이 미래 공장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직접 만나볼 수 있게 했다. 그중 눈여겨볼 대표적인 신기술 8가지를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곳은 바로 SDF 테마관이다. SDF 테마관은 SDF의 개념과 도입 배경을 설명하고, 나아가 현대차·기아가 추구하는 SDF의 방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전시된 곳이다.
현대차·기아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 이하 SDV)와 연결해 SDF의 개념을 소개했다. SDV와 SDF는 변화 주체가 차량인지 공장인지만 다를 뿐, 결국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SDF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유연성과 제조 지능을 갖춰 생산성과 품질을 개선하고 비용과 생산 기간을 줄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나아가 SDF는 데이터 연결과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고객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제품을 누구보다 빠르게 제공하는 SDV 생산 기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SDF 구현을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고, 제조 시스템의 아키텍처를 ① 하드웨어, ②제어, ③데이터 플랫폼, ④애플리케이션 등 4개의 레이어로 구분했다. 이로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독립적으로 개발할 수 있고 생산 공장의 운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전 세계 공장을 최신 생산 알고리즘으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
한편, SDF 테마관에는 제조 데이터의 흐름에 대한 자세한 시각 자료도 전시됐다. 크게 가상 공장과 실제 공장, 그리고 데이터 센터로 구성된 SDF에서 수많은 제조 데이터가 어떻게 수집되고 활용되며, 이를 통해 공장이 유연하게 운영되는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아울러 SDF에 적용되는 다양한 제조 신기술은 물론, 이포레스트가 추구하는 미래 공장의 운영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자율주행으로 무거운 부품을 실어 나르는 물류로봇(Autonomous Mobile Robot, 이하 AMR)은 자동차 공장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다. 중요한 건 AMR의 활용 여부가 소프트웨어 고도화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AMR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AMR 주행 제어 기술을 직접 개발했다.
새롭게 개발한 AMR 주행 제어 기술은 기존 로봇의 주행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똑똑하게 이동하게 한다. 기존 AMR은 오로지 전진 주행만 가능했지만, 새로운 AMR은 앞뒤 관계없이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주행할 수 있다.
아울러 직선 주행만 가능했던 기존 AMR과 달리 좌우 바퀴의 회전수를 제어해 매끄럽게 선회 주행도 할 수 있다. 이처럼 진보한 자율주행 능력은 규모가 작거나 이동할 수 있는 경로가 한정된 공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새로운 AMR은 높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공장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자동차 생산 공정은 여전히 많은 수작업을 필요로 한다. 특히 고무 호스와 같이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비정형부품의 경우 로봇이 집어 올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손으로 조립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작업이 까다로운 비정형부품의 조립도 자동화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비정형부품 조립 자동화 기술 덕이다.
해당 기술은 AI 비전 알고리즘을 통해 호스류, 와이어류 등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부품의 모양과 위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피킹 포인트를 자동으로 결정해 부품을 집고 정렬한다. 또한 엔진에 호스를 끼우고 클립을 조립하는 등 사람의 손과 같이 정교함이 필요한 작업도 자동으로 이뤄져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킨다. 특히 해당 기술은 자율운영 공장에 꼭 필요한 필수 기술로서 기대감이 매우 높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능숙하게 부품을 집고 조립하는 작업도 바로 이 기술을 통해 구현될 예정이다.
기존 자동차 공장의 생산 라인은 대량 생산을 목표로 몇 개의 차종만 생산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이러한 생산 방식의 장점은 모든 공정이 특정 차종 생산에 최적화돼 있으므로 생산 효율이 높고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 가능한 차종을 변경하려 할 때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차량 생산 시 부품을 고정하는 픽스처가 좋은 예다. 픽스처는 도어, 후드(보닛), 휠 등 다양한 부품을 고정하는 장치인데, 생산 차종을 변경하려면 이 픽스처 역시 새로 제작해야 한다.
현대차·기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무한다축 홀딩픽스처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기술은 제어를 통해 픽스처의 위치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으며, 픽스처에 복합적인 구동 메커니즘을 적용해 다양한 부품을 고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차인 기아 모닝을 생산하는 라인에 대형 전동화 SUV인 기아 EV9을 투입할 경우, 차량 및 부품 크기 차이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픽스처를 이동시켜 EV9의 부품을 고정할 수 있다. 즉, 무한다축 홀딩픽스처는 유연 생산을 실현하는 미래 공장의 필수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 제조 공정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빠른 속도로 자동화되고 있지만,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한 공정은 여전히 많은 수작업이 필요하다. 가령 알루미늄 외판을 가공하는 공정은 여전히 전문가의 섬세한 사상(Sanding, 갈아냄) 작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알루미늄 외판 실시간 면밀착 자동사상 시스템’으로 차량의 알루미늄 외판을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이 자동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지금까지 알루미늄을 다듬기 위해서는 작업자가 알루미늄 외판을 자세히 살펴보고 불량 부위(요철)를 수작업으로 제거해야 했다. 하지만 해당 시스템을 적용하면 3D 비전 기술과 협동 로봇을 활용해 외판을 자동으로 가공할 수 있다. 작업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3D 비전을 통해 알루미늄 외판의 불량 부위를 스캔해 검출하고 해당 부위의 좌표를 로봇으로 전송한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협동 로봇이 샌딩 가공을 통해 외판의 요철을 제거한다. 이때 곡률이 있는 표면이라도 작업 품질을 걱정할 필요 없다. 토크 센서가 적용된 작업 로봇은 균일한 압력을 유지해 굴곡이 있는 표면에서도 알루미늄 외판과 밀착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분진에 노출되는 작업을 로봇이 대체해 작업자의 건강 및 안전 확보에 기여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사족보행 로봇으로 잘 알려진 스팟(SPOT)은 미래의 공장에서 점검 전문가로 활약할 예정이다. 스팟은 이미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AI 키퍼’로서 작업자와 호흡을 맞춰 품질검사를 수행하는 조립 품질 검사원의 역할을 수행한 바 있다. 이번에는 스팟이 공장의 설비 점검원으로 변신한다. 4개의 다리로 계단 및 장애물 등을 유연하게 주파하는 기동성은 여전하고 센서를 통해 사람의 눈, 코, 귀와 같이 다양한 위험 요소를 감지해 공장의 현재 상황을 효과적으로 판단한다.
스팟의 감지 기능은 시각 정보를 담당하는 e-Eyes, 청각 정보를 담당하는 e-Ears, 후각 정보를 담당하는 e-Nose로 구성된다. 스팟은 공장을 돌아다니며 각 센서를 통해 실신한 환자, 화재, 배관 누수, 설비 이상, 화학물질 노출 등을 검사한다. 이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스팟은 미래 공장에서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질 전망이다.
현대차·기아는 ‘미래 항공 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이하 AAM) 테마관’에 마련한 전시를 통해 AAM 생산기술도 다양하게 선보였다. 그동안 축적해 온 차량 제조 기술 노하우를 AAM생산에 접목해 항공기 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번에 공개한 AAM 제조 기술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UAM(Urban Air Mobility) 날개 동체 자동 정렬 시스템’이다. 이는 크고 무거운 동체와 날개를 조립하는 공정에 정교한 자동화 기술을 더해 작업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UAM은 차량과 달리 기체가 매우 크고 무겁다. 따라서 항공기 제조 공정은 자동차보다 10~100배 이상의 조립 정밀도를 요구한다. 특히 동체와 날개를 연결하는 조립 공정에는 매우 정교한 작업이 요구돼 오랜 시간 수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UAM 날개 동체 자동 정렬 시스템을 활용하면 품질 관리는 물론 공정 시간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기존에는 동체와 날개의 체결 부위를 맞추기 위해 날개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동체의 위치를 일일이 조정해야 했다. 하지만 해당 시스템을 활용하면 측정기가 체결부를 정확히 측정하고, 이 측정값을 바탕으로 동체와 날개의 체결부를 1μm(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정렬한다. 이는 머리카락 한 올과 같은 아주 미세한 수치에 해당한다. 해당 시스템은 동체를 정교하게 이동시키기 위한 12축 동시 제어 시스템과 정밀 이송 시스템, 그리고 체결부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고정밀 측정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 모든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해 시스템 통합 제어 소프트웨어도 개발했다. 이를 통해 보통 3~5일 소요되는 공정을 단 몇 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기체에 도료를 칠해 색을 입히고 부식을 방지하는 도장 공정 역시 UAM 제조에서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항공기 도장은 차량 도장과 달리 전부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도장 두께를 균일하게 유지하기 어렵고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도장 공정의 효율을 높이고 운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UAM 도장 자동화 기술을 개발했다.
차량과 UAM 모두 도장 공정이 필수적이지만 차량 도장 공정을 UAM 생산 과정에 그대로 활용할 수는 없다. UAM은 차량보다 기체가 큰 데다 형상이 복잡하고 하부까지 도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차그룹은 UAM에 적합한 도장 공정을 완성하기 위해 3D 시뮬레이션을 도입하고 새로운 도장 설비와 스윙암 로봇을 적용했다.
UAM 도장 자동화 기술은 크게 레일 이중화, 갠트리, 스윙암 로봇, 턴테이블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도장 로봇을 이중화된 레일과 턴테이블, 상하 리프트 등에 설치해 UAM을 빈틈없이 도장할 수 있다. 이 밖에도 UAM 도장 공정에 최적화된 전용 도장 부스를 개발하는 등 현대차그룹은 미래 항공 모빌리티를 성공적으로 양산하기 위해 기술을 지속적으로 혁신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4는 현대차·기아가 머지않은 미래에 선보일 제조 혁신 기술로 가득하다. 신기술로 자율 제조 산업을 선도하고, SDF를 구축해 모든 제조 시스템이 서로 연결되는 미래는 곧 현실화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이 그려 나갈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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