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거친 자갈로 이루어진 험난한 사우디아라비아 랠리에서 승리했다
WRC 2025 시즌은 지난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종전을 치렀다. 최근 여러 중동 국가가 오일머니를 활용해 다양한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는 것은 석유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모터스포츠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서 F1은 물론 WEC와 WRC, 포뮬러 E, TCR 등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시즌 F1에는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카타르와 아부다비까지 무려 4개 나라가 캘린더에 이름을 올렸다. WRC에서는 지난 2010~11년 요르단 랠리 이후 오랜만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새로운 중동 개최지로 등장했다. 현재 이 지역에는 FIA MERC(Middle East Rally Championship, 중동 랠리 챔피언십)가 열리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WRC 개최를 위한 사전 준비로 지난 5월 첫째 주 MERC 제3전(사우디 MERC 랠리)을 성황리에 마쳤다.
중동 특유의 지형적 특성은 랠리 스테이지에 그대로 드러난다. 사막은 차량 주행 및 바람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며, 타이어에 위협적인 거친 자갈길과 험난한 지형은 드라이버와 랠리카를 매 순간 위험에 빠뜨린다. 황량하고 거친 풍경은 마치 SF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 행성을 연상케 한다. 대부분 선수가 처음 달리는 만큼 꼼꼼한 페이스노트 작성이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환경에 따른 적응력도 필수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한 숨 돌렸던 참가자들은 30℃가 넘는 무더운 날씨를 다시 견뎌내야 했다.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은 최종전에도 오트 타낙(Ott Tänak),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의 3인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타낙의 막판 스퍼트에 기대를 모았지만 일본 랠리에서 포디엄에 들지 못해 타이틀 쟁탈전에서 밀려났다. 타낙은 일본 랠리 직후 WRC에서 휴식기를 가지겠다고 선언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1987년생의 타낙은 2009년 WRC에 데뷔해 주요 상위 팀을 두루 거쳤으며, 현대팀에서도 다섯 시즌을 뛰었다. 2019년 챔피언을 포함해 지금까지 22개의 우승컵을 보유하고 있는 타낙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모국 에스토니아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기 위해 당분간 풀 시즌 참전을 포기한다. “현대팀에서 일군 모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팀이 보여준 신뢰와 지원에 깊이 감사합니다. 지금도 랠리를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랠리를 놓지 않을 것입니다.” 타낙의 소감이다.
누빌은 지난해 염원하던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올해에는 아직 우승컵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부진에 빠졌다. 지금까지 4번의 3위가 최고 성적.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우승이 간절했다.
한편 시즌 후반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었던 포모는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를 희망적으로 기대했다. “새로운 이벤트는 누구나 똑같은 수준에서 경험하는 일이기에 무척 즐거운 일이죠. 결국 페이스노트가 관건입니다. 모래와 돌이 많고 거친 데다, 장소에 따라서는 상당한 고속 구간도 있기 때문에 완벽한 세팅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차 안은 푹푹 찌고 타이어 관리도 필요하죠.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시즌을 좋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퍼포먼스는 좋았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최종전에서 저의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현대팀의 신임 WRC 스포팅 디렉터 앤드류 휘틀리(Andrew Wheatley)는 경기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종전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설레는 동시에 무척 힘든 이벤트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언제나 어렵기 때문에 사전 준비가 중요하죠. 이번 시즌은 힘들었습니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죠. 이번 경기에서는 세 대의 차를 모두 무사히 데려와 시즌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6 시즌에 다시 한번 파이팅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조사 타이틀을 확정한 토요타팀은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두고 경쟁 중인 엘핀 에반스(Elfyn Evans), 세바스티앙 오지에(Sébastien Ogier)를 중심으로 칼레 로반페라(Kalle Rovanperä)와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 사미 파야리(Sami Pajari)까지 모두 5대의 야리스를 엔트리했다.
일본 랠리에서 오지에가 우승을 차지함에 따라 포인트 선두 에반스와 오지에의 점수 차는 불과 3점. 로반페라의 경우는 에반스와 24점 차이라서 두 선수 모두 완전히 탈락하지 않는 이상 타이틀 획득 가능성은 희박했다. 토요타팀은 사막의 강렬한 햇살을 피하기 위해 차량을 다시 은색으로 칠했다.
M-스포트 포드팀은 오랜만에 4대의 차를 준비했다. 정규 드라이버인 그레고와 뮌스터(Grégoire Munster)와 조쉬 멕켈린(Josh McErlean) 외에 파트타임 드라이버인 마틴 세스크스(Mārtiņš Sesks)가 핀란드 이후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카르 랠리 5회 우승자인 카타르 출신의 나세 알아티야(Nasser Al-Attiyah)가 4번째 퓨마 랠리카를 몰기로 했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합산 거리 319.44km의 17개 SS에서 시즌 최후의 결전이 펼쳐졌다. 11월 26일 수요일 열린 SSS1 자밀 모터스포츠 슈퍼 스페셜(Jameel Motorsport Super Special)은 F1 그랑프리가 열리는 제다 코니쉬(Corniche) 서킷의 넓은 주차장 공간을 활용해 관람객 친화적으로 만든 특설 코스다.
2대씩 출발하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형태이면서도 5.22km의 상당히 큰 사이즈로 이뤄졌으며, 크로스 되는 부분을 제외하고 거의 전 구간에서 2대가 나란히 달리게끔 구성돼 경기장의 열기를 돋웠다. 오프닝 스테이지에서는 그레이블 세팅으로 포장 도로를 달린 타낙이 가장 빨랐다. 타이틀 경쟁자인 에반스와 오지에가 맞대결을 벌여 오지에가 0.9초 차 승리를 거두었다.
11월 27일 목요일. 본격적인 그레이블 스테이지가 펼쳐진 이날은 19.36km 길이의 알 파이살리야(Al Faisaliyah)를 시작으로 SS3 문 스테이지(Moon Stage, 20.12km)와 SS4 쿨라이스(Khulais, 11.33km)까지 3개 스테이지를 오전과 오후에 반복해 달린 후 첫날의 자밀 모터스포츠 슈퍼 스페셜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SS2~SSS8 7개 스테이지 합산 거리는 106.84km.
WRC는 통제된 서킷이 아니라 공도에서 열리는 만큼 관중 통제와 경기 흐름 등을 체크하기 위해 사전에 이벤트를 개최해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지역 랠리를 기반으로 이벤트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다. 사전 준비 경기로 치러진 MERC에 포함되지 않았던 알 파이살리야는 좁고 빠른 도로를 약 5km 달린 후 사막으로 진입한다. 이후에는 완만한 사구와 능선 지형을 통과해 고속 섹션으로 이어진다. 14.7km 지점부터는 험난한 암석 지형의 긴 내리막이 나타난다.
출발 순서가 상당히 중요한 오프닝 스테이지에서 11번째로 출발한 세스크스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종합 선두로 등극했다. 2번째로 빨랐던 파야리가 오지에에 이어 종합 3위가 되었고 포모와 누빌이 그 뒤를 따랐다. 반면 에반스는 세스크스보다 14.4초나 느렸고, 멕컬린은 타이어 펑처로 2분 30초나 손해를 보았다. WRC2 클래스의 알레한드로 카촌(Alejandro Cachón)은 점프 착지에서 큰 충격을 받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SS3 문 스테이지 역시 사전 경기에 없었던 새로운 코스로, 이번 경기 중 가장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되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페이스노트를 작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스테이지 이름 그대로 마치 달 표면을 연상시킬 만큼 황량하고 거친 지대이기 때문. 모래로 덮인 언덕은 눈에 잘 띄지 않고, 모래 지형이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며, 그립도 자주 변한다. 헤어핀을 포함한 타이트하고 테크니컬한 구간도 포함되어 있다.
자갈이 엄청나게 깔린 이번 스테이지 역시 후발 주자에게 많이 유리했다. 세스크스가 톱타임, 포모가 2번째였고, 오프닝에서 부진했던 타낙이 3번째로 빠른 기록이었다. 선두보다 15.2초 늦게 완주한 누빌은 이렇게 말했다. “꽤 괜찮게 주행했는데, 피니시 5km를 남기고 슬로 펑처가 났습니다.” 가츠타와 누빌을 제치고 종합 4위에 오른 타낙은 내년부터 휴식기를 앞둔 상황에서도 모든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여줬다.
SS4 쿨라이스는 다른 스테이지보다 짧지만 코스가 좁고 코너가 많아 훨씬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초반에는 구불거리는 내리막으로 시작해 곧이어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약 6.5km 지점부터는 헤어핀이 있는 기술적인 내리막을 따라 피니시까지 이어진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가파른 절벽까지 있어 여러 모로 고난도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로반페라는 스테이지 초반 타이어 펑처로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교환하지 않고 그대로 달리기로 했다. 완주에 성공했으나 거의 50초 가까운 손해를 보았다. 에반스와 세스크스는 길을 잘못 들어 손해를 보았고, 오지에는 빠른 출발 순서로 인해 힘겨운 주행을 이어갔다. SS3에 이어 SS4를 2번째로 완주한 포모는 선두 세스크스보다 불과 1.3초 뒤처진 차이로 종합 순위 2위를 유지하며 첫 우승컵을 향한 질주를 이어갔다.
현대팀에서 가장 앞선 포모는 사우디아라비아 랠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밖에서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차 안에서 보면 상당히 거칠어요. 코너마다 큰 돌이 있고 도로에는 구덩이가 수없이 많죠. 타이어 펑처나 차가 손상될 위험이 컸어요. 차 1대만 지나가도 도로 상태가 달라지죠. 이렇게 끊임없이 다양한 환경으로 바뀌는 코스에서는 모든 코너마다 전력으로 탈출하는 게 오히려 어렵고 위험합니다. 마음을 억누르고 집중하면서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균형감을 찾으면서 달려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후 내내 문제 없이 달리는 겁니다.” 반면에 누빌은 오전에 인터쿨러 팬이 작동하지 않아 출력이 떨어졌고, 타이어의 슬로 펑처로 시간을 잃었다.
알 파이살리야를 다시 달린 SS5에서는 오전과 마찬가지로 세스크스가 다시 톱타임을 기록했고 파야리가 뒤따르며 종합 2위에 올랐다. 타이틀 도전자인 오지에와 에반스는 종합 7, 8위로 둘의 시차는 30초. 이어진 SS6 또한 세스크스가 잡을 듯 보였지만 스테이지 막판 타이어 바람이 빠지면서 페이스가 떨어졌다.
파야리가 종합 선두로 올라섰고, 포모 역시 세스크스를 추월해 종합 2위를 되찾았다. 세스크스와 근소한 차이로 타낙과 누빌이 따라붙어 현대팀의 기세를 높였다. 쿨라이스를 다시 달린 SS7에서는 타낙이 다시 톱타임을 기록한 가운데 세스크스와 파야리가 부진했다. 포모는 타이어 문제를 피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달렸으면서도 종합 선두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일몰 후 8시 30분, 어둠에 잠긴 제다 코니쉬 서킷 주차장에서는 목요일을 마무리하는 슈퍼 스페셜 스테이지가 시작되었다. 오지에와 세스크스가 타이 기록으로 공동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타낙, 누빌, 로반페라가 뒤따랐다. 종합 순위에서는 포모가 선두를 유지했고 6초 차이로 파야리가 2위, 세스크스, 타낙, 누빌이 뒤를 이었다. 타이틀 경쟁자 중에서는 오지에가 종합 7위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로반페라와 에반스까지 불과 40초의 차이에 그쳐 타이틀의 향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11월 28일 금요일은 전날보다 장거리 스테이지들로 구성된 고된 하루였다. 오프닝 알굴라(Alghulah)를 시작으로 30km가 넘는 SS10 움 알 제렘(Um Al Jerem), 28.59km의 SS11 와디 알마트위(Wadi Almatwi) 3개 스테이지를 오전과 오후에 반복했다. SS9~SS14 6개 스테이지 합산 141.72km를 달리는 구성으로 하루가 시작했다.
SS9 알굴라는 11.69km로 이날 중 가장 짧지만 테크니컬한 코스와 험난한 구성으로 참가자들을 괴롭혔다. 사막과 좁은 산악도로가 혼합된 코스는 초반에 고속의 오르막으로 시작해 헤어핀이 연속되는 내리막이 나타난다. 이후 평평한 사막지형을 지나 다시 산악 지형의 가파른 오르막에서 경기를 마쳤다.
SS9에서 톱타임으로 선두 위치를 굳건히 지킨 포모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자갈이 여기저기 많아서 타이어 그립이 계속 바뀌었어요. 똑바로 달리는 게 쉽지 않았죠. 그나마 스타트 포지션으로 달려서 길이 파헤쳐지지 않은 게 도움이 됐습니다.” 파야리, 세스크스, 타낙, 누빌이 그 뒤를 이었으며, 1위 포모와 5위 누빌의 차이는 불과 19.9초에 그쳤다.
SS10 움 알 제렘은 2번째로 긴 30.58km의 장거리 스테이지. 드라이버의 지구력과 페이스노트의 정확성에 더해 차량과 타이어의 한계를 시험했다. 사막 지형이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타이어 관리가 필수인 스테이지다. 두 산 사이의 평탄한 도로에서 시작해 고속과 중속 코너가 혼합된 구간을 지나면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그 후에 탁 트인 고원을 통과하면 가파른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SS10에서는 타낙이 가장 빨리 달려 선두권과의 차이를 좁힌 가운데 세스크스가 2번째 기록으로 파야리를 밀어내고 종합 2위로 올라섰다.
SS11 와디 알마트위는 앞선 움 알 제렘보다는 살짝 짧지만 여전히 장거리 스테이지다. 계곡을 뜻하는 와디(Wadi)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불구불하고 좌우가 막힌 까다로운 지형이라 위험도가 높았다. 초반 4km가량의 사막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사막 지형으로 이어지고, 후반부에 다시 까다로운 오르막 산길이 나타나는 구성이다. 고속 구간과 기술적인 구간이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주최 측은 마지막 산길 구간의 가파른 낭떠러지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해 3.6km 구간을 단축했다.
타낙과 세스크스가 이번에도 1, 2위 기록으로 선두 포모를 압박했다. 이제 포모와 세스크스는 2.9초, 종합 4위인 타낙도 선두와 9.2초 차이로 좁혀졌다. 한편 챔피언 타이틀 경쟁에서는 에반스가 위기에 빠졌다. 슬로 펑처였지만 장거리 스테이지라 타이어를 갈아야 했고, 1분 30초가량을 손해보았다.
오후에 알굴라를 다시 달린 SS12. 지금까지 용케 펑처를 피해왔던 오지에도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슬로 펑처였기 때문에 큰 시간 손실은 아니었다. 타낙이 이날 두 번째 톱타임을 기록하고 세스크스가 두 번째 빠른 기록으로 포모를 압박했다. 선두 포모와 세스크스의 시차는 1.9초까지 줄었고, 파야리, 타낙과는 6.3초였다.
SS13 움 알 제렘에서는 우승 후보 중 무려 두 명이 무너졌다. 풀 시즌 마지막 참전인 타낙이 피니시 10km를 남기고 타이어가 터졌고, 파야리 역시 비슷한 지점에서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악몽은 포모에게도 찾아왔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세스크스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파야리가 일으킨 먼지 속에서 교차로가 잘 보이지 않아서 코너를 지나쳤죠. 먼지가 너무 많아 앞이 잘 안보였어요.” 경기 후 포모가 남긴 말이다. 선두권에 여러 변화가 생기면서 누빌이 3위, 가츠타가 4위로 올라섰고 오지에도 6위가 되었다.
SS14에서도 선두권 선수들이 트러블에 시달렸다. 타낙은 구동계 문제로 풀 시즌 마지막 우승 기회와 멀어졌다. 또한 종합 선두인 세스크스는 타이어 펑처로 1분 가까이 손해를 보았다. 누빌 역시 타이어에 문제가 생겼으나 톱타임인 로반페라보다 7.2초 늦은 2번째 기록이었다. 포모도 타이어가 터졌지만 세스크스보다 데미지가 적었기 때문에 종합 선두로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포모에게 문제가 생겼다. 스테이지를 마친 후 최종 타임 컨트롤(TC)에 1분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1분 페널티가 가산된 것. 위기에 빠진 포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경기력에는 만족합니다.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을 즐기면서 내일 다시 뜨겁게 싸울 준비를 마쳤죠. 그런데 조기 체크인으로 페널티를 받아 4위가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죠. 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자세히 조사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11월 29일 토요일은 SS15 타반(Thahban)에서 시작해 32.88km의 초장거리 아스판(Asfan)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프닝 스테이지를 다시 달리는 SS17에서 이번 시즌을 마감했다. 16.29km의 오프닝 스테이지 타반은 굴곡과 요철이 있는 사막 도로에서 시작해 바위가 늘어선 평평한 지역으로 이어진다. 8.45km의 점프를 통과한 후 11km부터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는 고속 구간이 있으며, 마지막에 까다로운 연속 헤어핀으로 구성된 코스다.
포모는 어제의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 가장 빠른 페이스로 스테이지를 마쳤다. 3번째 기록을 세운 누빌은 세스크스를 2초 차이로 제치고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가츠타와 포모가 6초의 시차를 두고 포디엄 마지막 자리를 다투었다.
33.28km에 달하는 아스판은 이번 경기뿐 아니라 이번 시즌 모든 스테이지 중 가장 길다. 단순히 길기만 한 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지형, 시시각각 바뀌는 노면 형태와 그립의 변화까지 감안해야 했기에 드라이버와 랠리카에 엄청난 압박을 주었다. 대부분 사막 지형에서 진행된 아스판은 10.6km의 교차로를 지난 후 고원을 향해 달리는 오르막에서 길이 점차 좁아지며 까다로워진다. 스테이지 막판에 급경사를 오른 후 피니시 직전에 짧은 내리막으로 바뀐다.
이번 스테이지에서는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 경쟁이 거의 완결되었다. 종합 5위였던 로반페라가 타이어 펑처로 밀려난 반면 오지에가 스테이지 톱타임으로 에반스와의 시차를 더욱 벌렸다. 포모는 앞선 세스크스가 만든 모래먼지 속을 달리느라 고전했지만 가츠타보다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가츠타는 부드러운 모래 바닥에서 전복되는 큰 사고를 겪었으나, 1분가량 손해를 보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 덕분에 포모가 종합 2위로 올라섰다.
타반을 다시 달린 SS17이 시작되었다. 누빌이 안정적인 달리기로 최종 스테이지이자 파워 스테이지를 완주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랠리의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포모가 54.7초 차이, 3위 오지에와 8.6초 차이로 종합 2위를 지켜 현대팀이 원투 피니시로 최종전을 마쳤다. 에반스가 스테이지 톱타임을 따내며 경기 마지막을 장식했지만 챔피언의 영광은 오지에의 품에 돌아갔다. 같은 프랑스 국적의 랠리 선배인 세바스티앙 로브(Sébastien Loeb)와 같은 개인통산 9회 챔피언에 오르며 또 하나의 전설을 썼다.
시즌 내내 우승 없이 4번의 3위에 그쳤던 누빌은 최종전에서 우승컵을 차지함에 따라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경기 내내 우승 후보였던 포모는 결국 1분 페널티에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랠리1 승격 이후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2위의 기록은 2026 시즌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현대팀은 올해 다소 부진했지만 최종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투 피니시를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아울러 2026 시즌에 최고의 성과를 목표로 전력을 다해 챔피언 타이틀에 도전하겠다는 다짐도 보여줬다. 잠시의 휴식기를 가진 WRC는 2026년 1월 22일 개막전 몬테카를로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랠리까지 총 14전의 승부를 시작한다.
2026 시즌은 2027년 대규모 규정 변경을 앞둔 ‘랠리1 시대의 최종장’이 될 예정이다. WRC는 2027년부터 복잡성과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바뀐다. 랠리카 1대 제작에 약 100만 유로가 드는 것으로 알려진 기존 랠리1 대비 60% 이상 삭감된 34만 5,000유로(기본 사양)를 비용 상한으로 정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랠리1 경주차의 섀시 세이프티 셀(Chassis Safety Cell)을 공동 개발해 양산차의 차체만 얹는 방식으로 바뀐다. 이밖에 인원 제한, 물류 운송 비용 절감, 현지 시설 활용 확대, 원격 엔지니어링 지원을 위한 데이터 연결성 강화 등을 통해 팀 운영 비용도 줄인다. 아울러 초반에는 지속 가능한 연료 기반의 내연기관을 사용하고, 향후 하이브리드나 EV로의 전환도 가능할 예정이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 엔진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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