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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Jan 23. 2021

제로 투 원

경쟁하지 말고 독점하라

일론 머스크가 추천한 책을 읽는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잘 읽어본 적이 없는 종류의 책이라 신선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더구나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기업인 테슬라의 창업자가 추천한 책 목록이라니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다. 모임의 첫 책으로 이 책이 선정되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 피터 틸은 기업가이자 투자자이다. 스탠퍼드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졸업했다. 1998년 페이팔을 설립해 CEO로 이끌어 2002년 상장시켰고, 페이팔 마피아의 리더로 불린다. 2004년 첫 외부 투자로 페이스북에 투자해 이사로 활동했으며, 스프트웨어 회사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를 창업했다. 이외에도 링크드인과 옐프를 비롯한 수십 개의 성공적 기술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페이팔 마피아가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은 피터 틸이 2012년 스탠퍼드에서 강의한 'CS183: Startup' 수업 내용을 수강생이었던 블레이크 매스터스가 필기해 블로그에 연재한 것이 화제가 되어, 틸과 매스터스의 이름이 공저자로 출간되었다. 아마도 스타트업에 종사하거나 지망하는 사람들이라면 여러 번 읽을 필독서일 것이다. 나는 한 번을 정독하고 내용 정리를 하면서 한 번을 더 읽었는데, 내용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한 것 같아서 나중에 다시 읽어볼 것 같다. 수업을 들었던 스탠퍼드 학생들에게는 한 학기 수업 내용이었을 테니, 내용은 짧아도 생각을 곱씹을 거리는 많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거의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합류하는 일이 생긴다면 아마 이 책을 다시 한번 정독하게 될 것 같다.


한편으로, 꼭 창업이 아니라 지금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의 성과를 잘 내기 위해서도, 또 주식 투자에 있어서도 본받고 경청할 내용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의 본업은 데이터 분석가로, 게임 퍼블리싱 회사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마케팅 고도화를 하는 팀에 소속되어 있다. 마케팅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의 본업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했다(제품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채널이 있으며, 그 한 가지 채널이 다른 채널 모두보다 효과가 좋다와 같은). 한 편으로 나는 몇 달 전 현재의 팀이 빌드업되기 전 업무를 모두 혼자 수행하고 있었는데, 최근 내가 해오던 업무를 위해 네 명 규모의 팀이 세팅되었고 추가로 사람을 충원하고 있다. 비록 불확실성과 리스크 테이킹의 측면에서 스타트업에 비견 할바는 되지 못하겠으나, 큰 회사에서 신생팀의 초기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은 스타트업과 유사한 면이 있기에 배울 점이 있는 듯하다.


주식 투자에 있어서는, 위대한 기업을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핵심적 원칙들을 배운 것 같다. 저자는 벤처투자자이기 때문에 상장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투자를 할 때 저자의 투자관을 그대로 대입하긴 어려우나, 기본적인 원리는 공개 시장과 비공개 시장 모두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말한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을 압도할 정도로 뛰어난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에서는 전설적 투자자인 필립 피셔가 오버랩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10루타 종목을 발굴하는데 집중했던 피터 린치가 생각나기도 했다. 저자가 투자해 성공을 거둔 페이스북 같은 기업에 투자해 장기 동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편으로 그런 기업과 장기 동행을 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장기 전망에 확실한 비전을 투자자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안목을 가져야 하며, 창업가의 비전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래는 모임에 제출한 독후감


어제 저녁 신논현역 앞에 있는 병원에 방문 후 앞에 있는 타코 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타코 중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타코를 먹으며 저자가 책에서 말한 독점과 완전경쟁의 의미를 곱씹어봤다. 저자는 수평적 진보를 위한 경쟁, 기존의 것을 모방하는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논조로 썼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수직적 진보가 진정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스타트업들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라고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 경쟁이란 것이 그렇게 무익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계속 뇌리에 맴돌았는데, 가령 사업자들이 적정 수준의 마진을 확보하면서 벌이는 품질 경쟁은 소비자 입장에서 양질의 재화를 저렴한 가격에 소비할 수 있게 만드는 순기능이 분명 있지 않은가. 뭐, 아마도 틸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와는 다른 것이었을 거다. 이 책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스타트업 사업가들이 스스로 던지고 답해야 하는 질문에 대한 책이라고 1장에 선언을 하고 시작을 한 것이니, 그가 하고 싶은 주제에 한정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저자의 특권이겠지.


다만 한편으로 계속 반발심 같은 것이 드는 까닭은, 그가 일궈내고 여전히 꿈꾸고 있고, 이 순간도 다른 많은 이들이 꿈꾸고 있는 '세상에 없던 기업'이 나의 현실과는 괴리가 꽤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 살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고, 삼십 대 후반까지 큰 성취를 이루지도 못했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페이팔 마피아의 리더인 저자가 하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너무 멋지고 황홀하지만, 이 생엔 절대 이루지 못할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너무 배 아파할 생각은 없다. 모두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것이니, 삶이란 각자 타고난 자원과 운이 허락하는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누리며 살다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의 생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 저자처럼 운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 혹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꼭 바람직한 것이나 정답은 아닐 것이다. 운의 힘을 과소평가하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나심 탈렙의 조언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될 것이다.


한편으로 재미있는 것은, 저자는 멱함수 분포/파레토 법칙/fat tail 분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면서도, 탈렙과 달리 ‘하방으로 크게 깨질 것에 대한 두려움’은 1도 없이 ‘상방으로 크게 터뜨릴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가 이미 자신이 말한 것을 이룬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기에 그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만, 나 같은 범인은 그가 극도로 희박한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기 전 "지금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종류의 책이니, 새로운 시각을 경험해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더랬다. 독점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실로 파격적인 것이자, 기업가(지망생) 들에게는 신선한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꽤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했고, 다른 분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싶다.


책 내용 요약


1장. 미래를 향해 도전하라


면접 볼 때 지원자에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은, 통념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미래를 정확히 예견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는 확실한 사실이다. 첫째, 미래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둘째, 그래도 미래의 뿌리는 현재의 세상일 것이다. 통념과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은 현재를 다르게 바라본다는 뜻이며, 미래를 잘 예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진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수평적 진보는 기존에 효과가 입증된 것을 카피하는 것, 거시적 측면에서는 '글로벌화'다. 수직적 진보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0에서 1, 거시적 측면에서는 '기술'이다. 이 두 가지는 따로 진행될 수도,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두 가지 중 더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적극적으로 정의를 내려보면, 신생기업(스타트업)이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한 당신의 계획을 납득시킬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람들이다. 신생기업이 가진 강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생각'이다. 새로운 생각은 '민첩함'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규모가 작아야 생각할 공간이 생긴다.


이 책은 새로운 일을 하는 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마땅히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할 여러 질문에 관한 책이다.



2장. 과거에서 배워라


페이팔이 시작하던 1990년대 미국은 경제 침체로 시작해, 반전과 히피 문화가 있었고, 조지 부시가 재선에서 낙마하는 등 불안감으로 시작했다. 동아시아 금융위기,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등 어지러운 국제 정세가 있었고, 이후 뭔가 돌파구를 찾기 위한 '신경제'의 대안으로 인터넷이 주목을 받으며 닷컴 버블이 시작되었다.


닷컴 버블은 대략 1998년 9월부터 2020년 3월까지의 18개월이었는데, 당시 저자와 초기 페이팔 마피아는 버블이 꺼지면 투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을 직감하고 투자금을 모집했고, 모집하자마자 버블이 붕괴되었다.


닷컴 버블이 붕괴되고 실리콘밸리에는 모험을 두려워하고, 불확실한 것을 기피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  1) 점진적 발전을 이뤄라 2) 가벼운 몸집에 유연한 조직을 유지하라 3) 경쟁자들보다 조금 더 잘하라 4) 판매가 아니라 제품에 초점을 맞춰라. 이 원칙들은 스타트업 세계에서 절대 원칙으로 자리 잡았지만, 저자는 이 원칙들보다 정반대의 원칙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1) 사소한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대담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 2) 나쁜 계획도 계획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다 3) 경쟁이 심한 시장은 이윤을 파괴한다 4) 판매 역시 제품만큼이나 중요하다


닷컴 버블 당시, 버블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았고, 그 미래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훌륭한 신기술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신기술을 만들어낼 능력이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신기술이 필요하다. 그 신기술을 확보하려면 99년 식의 자만과 과열도 약간은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정반대의 생각들이 자동적으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중의 광기를 일방적으로 거부한다고 해서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봐야 한다. "비즈니스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과거의 실수에 대한 잘못된 반응은 얼마나 되는가?" 진정으로 남들과 다른 사람은 다수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3장. 행복한 회사는 모두 다르다


훌륭한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창출한 가치의 일부를 독점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과 독점이라는 단순한 모형으로 시장을 설명하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이 책에서 '독점'이라고 할 때는 자기 분야에서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감히 그 비슷한 제품조차 내놓지 못하는 회사를 가리킨다(구글의 검색엔진과 같은)


미국인들은 경쟁을 신성시하며 경쟁 덕분에 우리가 사회주의자들처럼 가난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본주의와 경쟁은 서로 상극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완전경쟁 하에서는 경쟁을 통해 모든 이윤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또 보유하고 싶다면, 차별화되지 않는 제품으로 회사를 차리지 마라'.


독점 기업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 '우린 독점 기업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시장이 여러 대형 시장의 합집합이라고 말함으로써 독점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독점 기업이 아닌 회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치를 과대포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 '우리 제품은 이 분야에 독점력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시장을 여러 작은 시장의 교집합으로 정의함으로써 더 특별한 시장이라고 과장한다.


독점기업은 경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직원들이나 제품에 더욱 정성을 쏟을 수 있다. 또 더 큰 세상에 미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에 관해서도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라'는 브랜드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도 윤리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공한 기업들이 누리는 특권이기도 하다.


독점기업들은 돈 외에 다른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그 외의 기업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기업이 매일매일의 치열한 생존 경쟁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독점 이윤'말이다. - (이 대목에서 기업을 사람으로 바꾸면, '경제적 자유를 얻은 사람이 누리는 특권적인 삶의 질'이 떠오른다)


독점기업이 누리는 독점 이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 독점 기업은 지대 수금원 밖에 안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다. 창조적 독점기업들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풍요로움을 소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창조적 독점기업들은 단순히 나머지 사회에도 좋은 기업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정부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독점을 색출해내려고 기를 쓰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특허를 부여함으로써 독점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것이다.


새로운 독점기업이 활발히 나타나는 것만 봐도 오래된 독점기업들이 혁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IBM,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 등의 시장 지배력 변천사가 이를 보여준다. 만약 독점기업이 진보를 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위험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의 역사는 곧 더 나은 독점 기업이 전임자의 자리를 대신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 간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은 혁신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독점기업은 혁신을 계속 지속할 수 있게 되는데, 독점 이윤 덕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경쟁 기업들은 꿈도 꾸지 못할 야심 찬 연구 프로젝트에도 돈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4. 경쟁 이데올로기


사람들이 경쟁은 건강한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교육 시스템은 경쟁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반영하는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 학교에서 학점을 위해 경쟁하는 시스템은 바깥세상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기존 체제에 편입되는 대가로 학생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치솟는 수십만 달러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사람들은 왜 서로 경쟁할까?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싸운다. 셰익스피어에 따르면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다. 비즈니스의 세계는 셰익스피어의 설명이 더 잘 부합한다.


경쟁 구도는 해묵은 기회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고, 과거에 효과가 있던 것을 그대로 베끼게 만든다(휴대용 신용카드 리더기에서 스퀘어, 넷시큐어, 인튜이트, 페이팔의 비슷비슷한 제품들). 모방 경쟁의 위험성을 생각해보면, 아스퍼거 증후군처럼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 지금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며 소모적인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것이 낫겠지만, 싸울 만한 가치가 없는 전쟁이라면 모두가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모방 경쟁, 완전 경쟁이 소비자에게 가져오는 효용을 너무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닐까?)


99년 말 저자의 페이팔과 일론 머스크의 엑스닷컴은 거의 동일한 제품으로 경쟁하고 있었지만, 다가오는 닷컴 버블 붕괴의 위험을 예견하고 50대 50 합병을 성사시켰다. 이들은 불필요한 모방 경쟁을 피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고 닷컴 버블의 파고를 넘어 회사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5장. 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


경쟁에서 벗어난다면 독점기업이 될 수 있겠지만, 독점기업도 미래까지 살아남았을 때만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 위대한 기업은 현재는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더라도 미래에 막대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의 기업 가치는 그 회사가 미래에 벌어들일 모든 돈의 총합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성장하는데 목숨을 건다면,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이 회사가 존속할 것인가?' 숫자만으로는 결코 그 답을 알 수 없다. 답을 알고 싶다면 내가 하는 사업의 질적 특성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독점기업이 대체로 공유하는 특징은 독자 기술,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 브랜드 전략이다.


1) 독자 기술

가장 가까운 대체 기술보다 중요한 부분에서 '10배'는 뛰어나야 진정한 독점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페이팔은 기존의 이베이 결제를 10배 편하게 만들었고, 아마존은 대형 서점 대비 10배 이상 많은 책을 선보였고, 애플 아이패드는 기존 태블릿 PC보다 10배 이상의 개선을 이뤘다.


2) 네트워크 효과

페이스북의 사례.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려면 초창기 사용자들에게 해당 제품이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떤 네트워크든 처음에는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네트워크 효과가 필요한 사업들은 특히나 더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3) 규모의 경제

트위터 사례. 훌륭한 신생기업이라면 처음 디자인할 때부터 대규모로 성장할 잠재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4) 브랜드 전략

브랜드 전략은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실질적인 가치가 있은 뒤에 브랜드 전략이 자리 잡아야 한다.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보유하고 있는 독자 기술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고 있다. 애플의 브랜드는 그 가치 위에 자리 잡은 것이지만, 2012년 야후의 CEO였던 마리사 메이어의 경우 실질적인 가치가 있는 제품 없이 브랜드 전략에 집중했으므로 성공하기 어려웠다.


독점기업은 위 네 가지 중 몇 가지 요소가 합쳐져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신중하게 시장을 선택하고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1) 작게 시작해서 독점화하고 2) 인접시장으로 몸집을 키우는 순서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시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장을 파괴하거나, 불필요한 경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페이팔은 기존의 결제 시장을 파괴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대형 기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다. 페이팔은 비자의 결제 시장을 잠식했지만, 결제 시장 전체를 확장시킴으로써 비자에서 가져온 것보다 더 많은 사업 기회를 비자에게 주었다. 반면 냅스터는 미국 음반업계와 제 살 깎기 식의 싸움을 벌였다.


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지만, 독점 기업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미래의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퍼스트 무버가 되어 1등을 차지하게 되어도, 누군가 따라와서 1등 자리를 뺏기면 의미가 없다. 차라리 라스트 무버가 되어서 독점력을 확고하게 확보하는 것이 좋다.



6. 스타트업은 로또가 아니다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 같은 엄청난 사업가의 성공의 원천은 실력이었을까, 운이었을까. 이렇게 지나간 일에 대해 토론할 때 '운'이란 언제나 과거 시제로 사용된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관한 질문들이다. '미래는 우연인가, 디자인하는 것인가?'


미래가 불명확하다고 여기는 태도 때문에 요즘 특히 역기능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점이 있는데, 바로 절차가 실질보다 중시되는 경향이다 실행할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때 사람들은 으레 다양한 옵션을 묶어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요즘 미국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무엇이든 다 잘할 것 같은 이력서를 꾸미는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준비가 되어 있겠지만, 반대로 그 어느 것에도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미래를 명확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미래를 명확한 것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명확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명확성/불명확성과 낙관/비관주의를 2x2로 나누면 네 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불명확한 비관주의 : 1970년대 초 이후 유럽

명확한 비관주의 : 2014년 현재의 중국

명확한 낙관주의 : 17세기~1960년까지의 서구 세계

불명확한 낙관주의 : 1982년 이후 미국


말콤 글래드웰은 빌 게이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운 좋은 개인적 환경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래드웰(1963년 생)이 베이비붐 세대라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 전체는 어릴 적부터 우연의 힘은 과대평가하고 계획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하도록 배웠다. 글래드웰은 '자수성가한 사업가'라는 대중들의 신화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설명은 그 세대의 전형적 시각을 요약해놓은 것일 뿐이다.


현재 미국 사회의 여러 영역들은 모두 불명확한 낙관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 금융, 정치, 철학, 삶에 대한 태도 등. 


불명확한 낙관주의는 '진화'라는 아이디어와 맞닿아 있다. 요즘은 실리콘밸리에서조차 '린 스타트업'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진화적 관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린 스타트업은 방법론일 뿐 목표가 아니다. 기존에 있는 물건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으로는 지역 시장에서 최고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다. 대담한 계획 없이 재현만 해서는 결코 0에서 1이 될 수 없다. 다윈주의는 다른 곳에서라면 훌륭한 이론 일지 모르지만, 신생기업 세계에서 최고의 이론은 '똑똑한 디자인(계획)'이다.


디자인의 중요성. 잡스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미학적 면과 무관하다. 잡스가 디자인한 가장 위대한 작품은 그의 사업이었다. 애플은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을 효과적으로 유통시키기 위한 명확한 장기적 계획을 상상하고 실행했다. '최소기능제품'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는 불명확한 단기적 세상에 살다 보니 장기 계획은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2001년 10월 1세대 아이팟이 공개되었을 때 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은 평가절하했지만, 잡스는 아이팟을 PC 이후의 새로운 이동식 기기의 효시로 기획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 눈에 이런 비밀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런 계획의 힘 때문에 비공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진다. 창업자는 회사에 대해 더 이상 구체적인 비전이 그려지지 않을 때만 회사를 파는데, 이 경우 인수 회사는 너무 큰 금액을 지불한 것이 된다. 명확하게 대담한 계획을 가진 창업자는 회사를 팔지 않는데, 이 경우는 제시 금액이 충분히 크지 않은 셈이 된다.


2006년 7월 야후가 페이스북을 10억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을 때 나는 우리가 적어도 고려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회실로 걸어 들어온 저커버그는 "회의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팔 수는 없죠"라고 말했다. 마크는 자신의 회사를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지 알고 있었고 야후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명확한 미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서구 세계는 문화를 혁신하는 방법밖에 없다... 신생기업을 성공시키려면 그 무엇보다 큰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노력은 완벽하게 우리 손안에 쥐어져 있다. 기업을 세우는 일은 당신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작지만 중요한, 세상의 일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먼저 우연이라는 불공평한 폭군부터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복권이 아니지 않은가.



7장. 돈의 흐름을 좇아라.


거듭제곱법칙 (power law distribution)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벤처캐피털은 초기 단계에 있는 유망한 회사를 발굴해 자금을 제공하고 이윤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여기서도 거듭제곱법칙의 힘이 작용한다. 벤처 펀드는 보통 10년 정도 기간 동안 운영된다. 벤처캐피털이 지원하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상장되지도 인수되지도 못하지만, 그중 살아남은 1등의 수익력이 나머지 전체를 합한 것보다 크다 - 멱함수 분포


따라서 벤처캐피털은 아주 이상한 두 가지 원칙을 따라야 한다. 첫째, 잠재적으로 펀드 전체의 가치에 맞먹는 수익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만 투자하라.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원칙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 가능한 기업의 대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저절로 따라온다 - '첫 번째 원칙 때문에 제약이 너무 많이 생기므로 다른 원칙은 있을 수 없다'


거듭제곱법칙은 투자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하다. 누구나가 실상은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신생기업에 자신의 시간을 바치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일반인은 커리어를 선택할 때 그 커리어가 앞으로 수십 년 후에도 가치 있는 직업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선택하기 때문이다.


위험회피를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금용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설이지만, 인생은 포트폴리오가 아니다. 신생기업은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며, 잘하는 것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그전에 반드시 그 일이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인지를 먼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스타트업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꼭 자기 회사를 차릴 필요는 없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최고의 회사에 합류하면 매우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 그러나 정확한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거듭제곱법칙을 부정하는 세상은 신뢰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들은 눈에 띄는 경우가 거의 없고, 심지어 숨어 있다. 거듭제곱법칙을 따르는 세상이라면, 당신이 내린 결정이 앞으로 그래프 상의 어느 점을 이루게 될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만 한다.



8. 발견하지 못한 비밀


통념에 반하는 사고가 쓸모 있는 이유는, 세상에 아직도 파헤칠 숨겨진 비밀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숨겨진 비밀이 없다고 믿는 경향이 강해지는 듯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지구 상에 물리적으로 개척할 곳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네 가지 사회적 추세 때문인 것 같다 - 점진주의, 위험 회피, 무사 안일주의, 평탄화.


숨겨진 비밀이 없다고 믿는 것은 도덕적으로 세상이 완전히 정의롭다고 믿는 것, 경제학적으로는 효율적 시장 가설이 맞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기업이 숨겨진 비밀을 믿지 않게 되면 신제품 개발을 제쳐두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는데, 본업 연구개발을 소홀히 하고 컨설팅 같은 신사업에 곁다리를 펴다가 몰락한 HP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숨겨진 비밀에는 두 종류가 있다. 어떤 회사를 세울지 고민할 때는 이 두 가지를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 "자연이 말해주지 않고 있는 숨겨진 비밀", "사람들이 말해주지 않고 있는 숨겨진 비밀"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었다면, 함께 할 동료들과 회사를 차려서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9. 기초를 튼튼히 하라.


동료들이 '틸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이 있다 - "기초부터 망친 신생기업은 되살릴 수가 없다". 처음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다. 자연계도, 인간계도, 처음 만들어진 레거시는 아주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중에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 나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고려할 때 창업자들을 면밀히 조사한다. 기술적 능력이나 서로 보완적 능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 창업자들이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잘 협업하는가 하는 부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창업자들은 함께 회사를 세우기 전부터 서로 역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창업은 주사위 던지기나 마찬가지다.


창업자들끼리 잘 지내는 것을 넘어, 회사에 있는 모든 사람이 원활하게 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역할 구분이 명확하게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소유권/점유권/통제권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자가 소유권과 점유권을 가지므로, 대부분의 충돌은 창업자와 투자자 사이에서 통제권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스타트업의 이사회는 작을수록 효율적이고 좋다(3명 정도).


- 소유권 : 법적으로 회사의 자산을 소유한 사람이 누구인가?

- 점유권 : 실제로 매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 통제권 : 공식적으로 회사에 생긴 일들을 통제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회사에 참여할 사람은 풀타임으로 참여해야 한다. 스톡옵션을 가진 사람과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보상 체계 마련에서 유용한 원칙 몇 가지가 있다.

- CEO는 가장 적은 연봉을 받아 솔선수범을 할 수 있고, 가장 높은 연봉으로 현금 보상의 상한선을 세울 수 있다.

- 현금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고액의 현금 보상은 직원들에게 시간을 투자해 미래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게 만들기보다는 회사가 이미 갖고 있는 가치를 뽑아 쓰게 만든다. 현금은 종류를 막론하고 미래보다는 현재를 중시한 것이다.

- 주식 보상은 사람들이 미래의 가치를 창조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효고가 있다. 그러나 직원들 간에 상대 비교를 통해 분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식 할당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완벽하게 공정한 방법으로 소유권을 나눌 방법은 없으므로, 개개인에 대한 보상은 비밀에 부쳐야 한다.



10. 마피아를 만들어라


내가 최초로 만들었던 팀은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 마피아'로 불린다. 누가 성공적인 기술 기업을 창업하거나 투자할 때 아직도 너무나 많은 옛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서서 서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페이팔의 옛 동료들은 각자 창업해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문화가 최초의 회사를 초월할 만큼 튼튼했던 덕분이다.


우리는 이력서를 꼼꼼히 검토하거나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마피아를 만든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나는 페이팔이 거래 관계가 아니라 단단히 엮인 관계가 되길 바랐다. 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튼튼해지면, 단순히 사무실에서만 더 행복하고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페이팔을 넘어 우리의 커리어에서도 더욱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는 실제로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했다.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특히 '우리'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신나게 생각해야 했다.


채용할 때 일반적으로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회사의 미션이나 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다.


실리콘밸리의 젊은이들은 티셔츠를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데, 그 티셔츠에는 모두 자기 회사 로고가 쓰여 있다.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인 맥스 레브친은 '신생기업들은 최대한 동질적인 사람들로 초기 멤버를 구성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하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페이팔 마피아는 모두 같은 종류의 괴짜들이었고, 페이팔의 미션 - 정부가 아닌 개인이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것 - 에 사로잡혀 있었다.


경영자로서 페이팔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회사의 모든 사람이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책임을 지게 한 것이다. 처음에 이렇게 한 것은 그저 사람을 관리하는 일을 단순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심오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충돌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경쟁을 제거하면 모든 사람이 단순한 직업 관계를 넘어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쉬워진다. 게다가 신생기업은 내부 관계가 평화롭지 않으면 아예 살아남을 수가 없다.


훌륭한 팀원들과 함께 광신 집단(cults)이 되어야 한다. 가장 열렬한 구성원들은 가족도 무시하고 바깥세상을 저버린다. 그들끼리는 강한 소속감을 경험하며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배척하는, 오직 몇 사람만 알고 있는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스타트업은 조금 덜한 정도의 광신 집단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광신 집단은 뭔가 중요한 부분에 관해 광적으로 '틀린'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사람들이 놓친 무언가에 관해 광적으로 '옳다'.



11. 회사를 세운다고 고객이 올까


공학도들은 근사한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만드는 쪽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그런 물건을 만들었다고 해서 고객들이 저절로 찾아오는 일은 없다. 우리는 고객이 찾아오게끔 만들어야 하고, 이 작업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공학도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광고는 중요하다. 광고는 즉시 제품을 사 가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광고는 나중에 판매를 일으킬 수 있는 미묘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괴짜들은 프로그래밍과 같이 투명한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세일즈는 정반대다. 세일즈는 밑바닥에 놓인 실체는 건드리지 않은 채 겉모습만 바꾸는 각종 캠페인들을 용의주도하게 전개한다.


세일즈맨들은 모두 배우다. 연기와 마찬가지로 세일즈는 숨겨져 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나타낸다.


자신의 커리어가 무엇이든 세일즈 능력이 슈퍼스타와 낙오자를 가른다. 월스트리트에서 신입들은 기술적 전문성을 발휘하는 '애널리스트'로 시작하지만, 최종 목표는 거래를 성사시키는 딜 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변호사들은 전문 자격증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정작 로펌을 이끌어가는 것은 대형 고객들을 물어오는 수완가들이다. 학문적 업적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대학교수들조차 스스로를 홍보해 확실한 자기 분야를 만드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역사나 영문학에 대한 학문적 아이디어들은 지적이라고 해서 저절로 인기를 끌지는 않는다. 심지어 기초 물리학의 연구 과제나 암 연구의 미래 방향이 정해지는 것도 설득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조차 세일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세상은 남몰래 세일즈에 의해 견인되고 있음에도, 모든 분야의 모든 수준에서 그런 사실을 숨기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세일즈와 유통은 그 자체로 독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제품 차별성이 전혀 없더라도 말이다. 제품이 아무리 강력해도 강력한 유통 계획으로 뒷받침해줘야 한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지표가 효과적인 유통의 한계를 정해준다. 고객 평생 가치(Customer Lifetime Value)는 고객 확보 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 보다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품 가격이 높을수록 판매하는 데도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제품의 판매액과 성격에 따라 세일즈 방식이 달라진다 - 복합판매, 대인 판매, 마케팅과 광고, 바이럴 마케팅 등. 그리고 사업에 따라 위 방법 중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유통 역시 자체적으로 거듭제곱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보통 반대로 생각해서 더 많은 방법을 쓰면 더 ㅁ낳이 팔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판매 담당자도 몇 명 고용하고, 잡지 몇 군데에 광고도 내고, 뒤늦게 바이럴 마케팅도 몇 가지 추가해서는 효과를 거둘 수가 없다.


대부분의 기업은 그 어느 유통 채널에서도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가장 흔한 실패의 원인은 제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세일즈를 못해서다.


회사는 제품 이상의 것을 팔아야 한다. 우리는 회사를 직원과 투자자에게 팔아야 한다.


직원이든, 창업자든, 투자자든, 누구나 무언가는 팔아야 한다. 주변에 세일즈 담당자가 안 보인다면 당신이 세일즈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12. 사람과 기계, 무엇이 중요한가


컴퓨터는 인간의 보완물이지 대체물이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을 세울 기업가들은 인간을 한물 간 폐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키워줄 방법을 찾는 사람일 것이다.


앞에서 얘기한 수평적 진보 - 글로벌화는 대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수직적 진보 - 기술은 상호 보완을 의미한다. 인간과 기계는 잘할 수 있는 일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교역에서 얻는 것보다 컴퓨터와 함께 일할 때 얻는 이득이 훨씬 크다. '컴퓨터는 도구일 뿐 경쟁자가 아니다.'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기술은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경쟁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점점 더 강력해질수록 컴퓨터는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할 것이다. 페이팔의 사기 탐지 알고리즘은 통계적으로 이상한 패턴을 찾아내 인간 애널리스트에게 제공하는데, 이는 기계와 인간이 보완적 관계임을 보여준다.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도 이와 같은 형태로 작동한다. 링크드인은 헤드헌터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인간 상호 보완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은, 컴퓨터 과학이 일종의 이데올로기처럼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인간의 노력을 대신할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훈련받았기 때문에. 요즘 유행하는 머신러닝, 빅데이터도 이런 관점을 반영하는 듯하다. 하지만 머신러닝은 완벽하지 않으며, 빅데이터의 대부분은 쓸모없는 데이터다. 컴퓨터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패턴을 찾아낼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출처로부터 패턴을 비교하거나 복잡한 행동을 해석할 줄은 모른다. 오직 인간 애널리스트만이 쓸모 있는 통찰을 찾아낼 수 있다.


미래에 가장 가치 있는 기업들은 컴퓨터 혼자서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지 묻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도울 수 있을까?'



13. 테슬라의 성공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청정 기술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정기술은 파산했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답해봐야 할 일곱 가지 질문 중 한 가지 이상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1) 기술 -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시기 -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 제대로 된 팀을 가지고 있는가?

5) 유통 -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방법을 갖고 있는가?

6) 존속성 -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테슬라는 7가지 질문 모두에 훌륭한 대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14. 창업자의 역설


흔히 사람의 성격 특성은 정규 분포를 따른다고 하지만, 창업자들은 매우 특이한 아웃라이어적 특성이 여럿 조합된 경우가 보통이다. 부자인 동시에 가난하고, 인사이더인 동시에 아웃사이더이고, 명성과 오명을 동시에 뒤집어쓴다. 


스티즈 잡스의 사례를 통해 기업이 알아야 할 교훈은, 우리에게는 창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상하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창업자들을 더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단순한 점진적 발전을 넘어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특이한 개인들이 필요하다.


창업자가 알아야 할 교훈은 개인에 대한 명성과 칭찬은 언제든지 오명과 축출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창업자들은 항상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창업자들이 중요한 것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위대한 창업자는 자기 회사의 모든 이들에게서 최선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맺는말.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미래가 저절로 일어날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것도 없거나, 무언가가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미래는 지금보다는 낫겠지'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지금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새로운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 하나뿐인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0에서 1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야만 단순히 지금과 다른 미래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첫 번째 단계는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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