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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Jun 14. 2020

파인만의 과학이란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 강연록. 원제 'The Meaning of It All'

이 책은 리처드 파인만(1918~1988) 이 1963년 워싱턴 대학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록이다. 파인먼은 아인슈타인 이후 물리학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로, '위대한 설명가', '과학계의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수식어가 붙은 인물이다.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한 공로로 도모나가 신이치로, 줄리안 슈윙어와 함께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는 전 세계 대학교에서 물리학 개론 교재로 사용되었고, 대중서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도 널리 알려진 책이라 한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 강연에서 파인만은 대중을 상대로 과학이란 무엇이며, 과학이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파인만이 사회와 종교 등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밝혀놓은 글은 이 책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록이니만큼 내용은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부담 없는 수준이며 분량도 약 150페이지 남짓이다. 빨리 읽는 사람이라면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으며 읽느라 반나절 정도가 걸렸다. 주말 오후 찜질방에 앉아 쉬면서 읽고 쓰자니 생각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강연 내용에 따라 책은 총 3회로 구성되어 있다. 순서대로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고 내 생각을 간략히 보태본다.



1부. 과학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이 장에서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지식 획득 방법', 그 결과 얻게 된 '지식의 체계', 그 응용으로 구현되는 '기술'의 세 주제로 나눠서 설명한다. 각각에 대해 물리학, 전자기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예시를 들며 설명하고, 세간 일부의 그릇된 상식과 달리 '과학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지는 못한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과학이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관찰', 이라는 방법, 이 관찰의 결과 얻게 된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과 관련한 과학철학적 주제를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 특히 노력을 들여 설명하는 주제가 바로 '불확실성'과 '의심(회의주의)'다. 이 대목에서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그리고 반증가능성이 연상이 되었는데, 이 생각은 후반부에서 사회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할 때에도 계속 오버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상적이었던 문구를 몇 구절 인용해본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의심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데 익숙해 있다. 모든 과학적 지식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과학 지식을 다루어 본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며 과학을 벗어나 다른 분야에서도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믿는다"

(42p)


"과학자의 머리에서 의심을 몰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과학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무지함과 의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의 해답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기에 내일의 더 나은 해답을 찾아 새로운 탐색의 길을 제안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새로운 길을 탐색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면, 또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의심하지 않거나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43p)



2부. 가치의 불확실성에 대하여


서두에서 과학이 가치 판단에 대해 실용적인 답을 줄 수 없음을 밝힌다. 그리고 꽤나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논의를 이어나간다. 이 대목에서 파인먼이 강연을 했던 곳이 1963년의 미국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아마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논제였을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파인먼은 과학을 통해 '의심의 가치'를 알게 된 사람이 그의 내면에서 과학과 종교를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일반적인 사람의 언어로 설명해나간다. 그는 종교의 세 가지 중요한 특성(혹은 기능)으로 형이상학(신과 세상의 관계에 대한 설명), 도덕(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도덕 지침), 감화(영적 감화를 통해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를 언급하고 각각이 과학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혹은 양립 가능할지를 설명한다.


과학적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 가장 먼저 깨져나가는 것은 형이상학인데,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다윈 등의 발견이 누적되며 종교의 형이상학 지식은 과학적 지식과 양립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파인만은 종교의 형이상학 지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종교의 도덕적 가치는 부정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종교가 주는 영적 감화의 기능에 대해서는, 종교의 형이상학적 설명을 포기하면서 영적 감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이어서 파인먼은 과학과 종교가 서구사회의 두 가지 중요한 지적 유산이라고 언급하며 강연을 이어나간다. 그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회의 가치 있는 것들을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으려 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서구 문명은 두 가지 위대한 유산 위에 건설되었다. 하나는 과학적 정신으로서의 모험이다. 이는 진리를 향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이며 우주에 대해 답할 수 없는 미스터리들은 답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도록 요구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의심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인간 지성에 대한 겸허함'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듯싶다. 다른 위대한 유산은 기독교적 윤리인데, 여기에는 사랑의 실천, 모든 인류를 향한 형제애, 개인의 인간적 가치 등이 포함된다. 이는 '영적인 겸허함'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두 유산은 논리적으로 완전하게 일관성을 가진다...

(69p)


이어서 당대 G2였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서, 소련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의견을 허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이 과학적 아이디어를 짓누르는 일들이 벌어짐을 언급한다. 미국 사회는 건국 당시부터 여러 의견들이 경합하며 나은 방향을 찾아오는 민주적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이런 미국 사회의 시스템이 당대 지구 상의 어떤 국가의 시스템보다 우월하다고 믿는다(그 훌륭한 시스템과 달리 현실은 썩어있다는 언급도 한다). 한편 자유가 부재한 소련의 시스템에서도, 과학의 응용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의 발달은 꽤나 효율적으로 진보가 가능한 것 같다고 말한다.


파인만은 한동안 전체주의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하다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검증해나가는 자유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언급하며 2강을 마친다.


다음은 내 생각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약 반 세기가 지난 2020년의 국면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해봤다. 일단 종교의 형이상학이 존중받지 못하는 추세는 점차 강화되어 오는 듯하다.


한편으로, 종교가 주는 도덕적 기능 또한 의심스러운 것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2020년의 한국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파인먼이 강연을 한 곳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인 미국, 그것도 반 세기 전의 미국이었던 것에 비해, 2020년의 한국은 특정 종교의 영향이 그만큼 강하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 현상은, 전반적으로 종교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현상은 특히 종교의 도덕적 기능과 관련해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일례로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한 종교인들은 최근 수년 급부상한 여성주의의 가치관과 조화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재작년 경 지인 결혼식 참석을 위해 ㅇㅇ교회 예배당에 앉아 있다가 주례를 맡은 종교인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성경 구절을 세 번 정도 인용하는 걸 듣고 더 이상 앉아있기 거북해 도중에 빠져나온 적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도덕은 '타인의 언행에 대한 가치 판단 체계'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가치 체계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진보와 보수가 갈라지고,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대립하는 일이 매일 도처에서 벌어진다. 이 난해한 주제에 대해 종교가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단일 종교가 아니라 여러 개의 종교가 경합하는 사회에서?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파인만이 종교의 도덕적 기능이 과학과 양립 가능하다고 한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종교의 도덕적 기능이 2020년 한국 사회에서 유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꽤나 회의적이다.


한편 반 세기 전 미국과 소련의 체제에 대한 비교에서, 현재의 미 중 체제에 대한 비교가 연상되었다. 생각의 자유를 허용하는(탄압하는) 체제, 과학 기술 경쟁이라는 구도에서 거의 동일한 구도라 할 수 있다. 파인먼이 '전체주의 사회에서도 과학의 응용인 기술 발전은 꽤나 잘 이뤄지는 것 같다'라고 말한 내용은 현재 미국이 국제 공조로 화웨이 제재를 하기에 이른 상황을 잘 설명한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현재 가장 각광받는 기술인 인공지능의 패권 경쟁은 반 세기 전의 상황과는 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경쟁력이 천재 한두 명의 번뜩이는 이론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서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냐'에 달렸다면, 14억 인구의 데이터를 제약 없이 수집할 수 있는 전체주의 국가 중국이, 3.8억 인구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핸디캡을 지닌 민주주의 미국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화웨이에 대한 국제 공조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외 등등 굴기(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이다.



3부. 비과학적인 시대의 한 복판에서


과학이 이뤄낸 성취는 더없이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사회에서 사람들이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는 여전히 비과학적인 면모들이 많음을 언급한다. 이를테면 상업이나 정치 분야에서 잘못 설계되고 해석되는 설문 조사, 사실과 전혀 다른 상업 광고가 공중파를 타고 유통되는 것, 종교적 색채를 입힌 유사과학적 치료 요법, 심령술이나 초능력과 같은 것들이다. 파인만은 스스로 초능력자라고 하는 유리 겔라가 사기꾼임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는 평소 가짜 지식이나 유사과학 같은 주제에 우려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가?'라는 주제를 잠시 언급하는데, 그는 '유추'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그 아이디어가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지 신중하게 따져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도덕과 관련하여서는, '먼저 충분한 관찰을 하고 나서 받아들이는 신중함'과 같은 어떠한 일종의 방법 체계, 즉 도덕적 가치를 선택하는 체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언급한다. 여기에서 갈릴레오, 뉴턴이 당대에 벌였던 논쟁들을 예시로 드는데, 그들의 논쟁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공통 기반'에서 출발했던 덕분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대목에서는 작년에 읽었던 조슈아 그린의 옳고 그름 이 떠올랐다.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그린은 서로 다른 도덕을 가진 사람들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공동의 통화'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며, 과거 벤담과 밀이 제안했던 공리주의를 신중하게 적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변했었다...


전반적으로 3장을 읽으면서는 앞서 2부의 국가 체제에 대한 비교에 이어서, 다시 한번 칼 포퍼가 떠올랐다. 지적 회의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포퍼와 파인만은 거의 확고하게 동의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과학철학이라는 주제에 부쩍 더 호기심이 동하게 되었다. 다음 책은 무엇을 읽을까. 아래는 후보 목록



아래 책은 원래 오늘 읽은 책과 동명인 다른 책. 원래 이 책을 추천받았다가 서점에서 실수로 파인만 책을 들고 와서 읽게 되었다는, 하지만 파인만 책도 매우 만족스러웠다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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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시프트라는 유명한 개념을 제안한 토마스 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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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퍼와 쿤의 논쟁을 비롯해 현대 심리학, 뇌과학 등 과거 인문학 영역이었던 주제를 과학으로 다룰 때 겪는 문제점, 논쟁들을 서술한 책. 한 권만 읽는다면 이 책이 가장 좋지 않을까.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608192042505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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