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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환 Aug 31. 2020

속초에서 재택근무를 해보자

2020년 8월 1일, 속초에 집을 계약한 날이다. 장사항 건너편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영랑호가 내려다 보이는 방을 계약했다. 계약 종료일은 2021년 8월 1일이다.


난 서울에 살고 판교로 출퇴근을 한다. 속초 집에는 일주일에 나흘 정도 머무를 생각이다. 일주일에 절반밖에 사용하지 않을 집을 계약한 까닭은 코로나 19로 인해 장기화된 재택근무 때문이었다. 사태 발발 후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전일 재택근무 체제를 시행하다, 선택적 재택 근무제를 거쳐, 대략 5월 경부터는 주 2일 선택적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다.


재택근무가 길어지며 마음속 한 켠에는 답답함이 쌓여갔다. 서울에 있는 내 공간은 업무와 생활을 같이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고립된 채 항상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일상도 점차 지쳐갔다. 한편 재택근무를 한다고 업무 부담이 줄어든 것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속한 팀, 그리고 나는 연초부터 숨 가쁘게 달려왔다. 바쁜 업무를 쳐내며 정신없이 회사생활을 하다 6월쯤 밀린 연차를 모아서 내고 속초와 제주를 다녀왔다.


속초로 이주해 6년째 살고 있는 형을 만나고, 제주에 이주해 5년째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평화로운 풍경과 정겨운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니 제법 위안이 되었다. 해변에서 서프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던 중, 문득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휴가 내내 마음속 한 켠으로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택근무하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진짜로 할 수 있을까? 비용은 얼마나 들지? 그런데 재택근무가 언제까지 지속될 줄 알고? 거짓말처럼 코로나 19가 종식되어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 시간과 비용 계산을 해본 결과 '해볼 만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바로 속초에 방을 보러 다시 방문해 방을 계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주 정도.


서울 강남, 판교에서 속초까지 이동 시간은 대략 두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일주일에 편도로 두 시간 반 운전을 두 번 하면 된다는 얘기다. 내가 계약한 방은 풀옵션 신축 원룸으로 보증금 300에 월세가 45만 원. 월세와 차량 유지비를 합쳐 대략 월 8~90 만원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내가 일 년 동안 지불해야 할 시간과 비용은 매주 다섯 시간과 일 년에 천만 원 정도다.


일주일에 다섯 시간의 교통 시간은 일반적인 서울 직장인이 출퇴근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작다. 서울에서 보낼 이삼일 동안 출퇴근 시간을 더해도 일주일에 일곱 시간 정도일 테니, 이 정도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은 아니다.


일 년에 천만 원의 거주비와 차량 유지비는, 많다면 많고 적당하다면 적당한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보통 사람들이 일 년에 한두 번씩 다녀왔을 해외여행 경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반지하 피트니스센터에서 기구를 들고 트레드밀 위를 달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 사치품 한 두 개를 사는 비용을 더한 금액 정도면 대략 천만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속초에서 아침 운동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영랑호를 뛰고, 서핑이나 스노클링을 즐기고, 설악산 기슭에서 책을 읽는 등의 일상을 소유할 수 있다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판단을 내리고 마음을 먹고 바로 실행에 옮긴 지 오늘로 딱 한 달이 되었다. 속초로 오면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다. 서핑, 낚시, 사이클링, 캠핑, 등산, 다이빙, 스노클링 등, 나이를 더 먹기 전에 건강할 때 후회 없이 많은 활동을 하고 경험을 채우고 싶었다. 지난 한 달 동안은 스노클링, 캠핑 정도만 조금 해볼 수 있었다. 아직 많은 것을 해보지 못한 한 가지 이유는 집 정리를 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대략 지난 주말인 8월 23일 정도를 기점으로 코로나 19가 무서운 속도로 재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코로나 19 재창궐로 인해, 지난 주말 회사는 다시 전사 전일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한다는 공지를 발표했다. 이제 당분간 나는 서울로 돌아갈 일이 없어졌다. 비상 상황의 강도로 보면 이곳 속초는 서울보다는 나은 듯 하나, 나 또한 당분간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해야 하므로 적극적인 외부 활동은 자제해야 할 것 같다. 당분간 상황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책 읽고 글 쓰고 사진 찍기로 소일거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바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일 년, 속초에서의 일상을 잘 기록해두고 싶다. 앞으로 일 년 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어떤 경험과 생각을 하며 나를 채워가게 될까? 일 년 뒤까지 나는 속초 살이를 계속하고 있을까, 그리고 일 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에 마음 한편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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