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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Sep 13. 2023

농심 고구마깡 -4

-소설가가 요양보호사가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채널은 다시 7로 넘어갔다. 어르신 방의 TV는 유선방송 시설이 없어서 지상파 4개 채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여덟 달 동안 지상파 TV가 오전에 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 다 파악을 하고야 말았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면서 시청자 우롱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돈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던 방송에서 다음날에는 노년의 재테크에 대한 특강을 하고, 가족 사랑을 한 시간 내내 갖가지 포맷으로 다양하고도 아름답게 제시해 놓고 다음 날에는 자식에게 유산 넘겨주면 큰일 난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쪽 방송에서는 커피와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고 저쪽 방송에서는 버터와 치즈 베이컨 범벅인 크림 파스타 먹방을 하고 있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분열증 걸리기 딱 맞춤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멋대로의 방송이 좋았다. 어차피 시청자들은, 아니 넓게 말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듀얼 초이스는 양쪽 다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채널 7에서는 새해 들어 인문학 냄새가 좀 나는 교양 방송으로 변신을 시도했는데 나는 그것도 좋았다. 패널로 앉아 있으면서도 패널 중 그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철학자가 한 사람 있었다.

 모두 웃을 때에도 자신이 우습지 않으면 따라 웃기는커녕 심각하게 있는 모습도, 다 동의하고 동의를 구하는 내용에도 혼자 아니라고 정색을 하는 그의 꼴통기질도 흥미있었다. 


그 철학자가 보이지 않으면 실망을 할 정도로 그 프로그램을 애청했다. 낯선 발상, 익숙하지 않은 생각,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다양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존재감이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언젠가 일찍 돌아온 어르신의 딸이 집안의 시시콜콜한 문제를 심각하게 털어놓는데 나는 그녀의 뒤에 있는 TV 속의 철학자가 보고 싶어 고개를 쭉 빼고 싶은 것을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그 철학자가 하는 말을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서 딸의 하소연의 볼륨은 최저로 낮춰 들리게 해놓고 아련하게 들려오는 백발 철학자의 고집 섞인 진심을 최대치로 확대해서 듣고야 말았다. 


  이윽고 열한 시가 넘어가면 나는 어르신을 일으켜 세웠다. 체중의 삼분의 일은 차지할 것 같은 만삭 같은 어르신의 배는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내 손바닥만한 작은 얼굴과 가냘프기 짝이 없는 팔 다리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기형적인 몸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어르신 체형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는 배의 부피와 무게 때문에 볼 일 보기 힘드신 어르신의 화장실 시중을 들고 겉옷을 하나 더 입히고 보조 보행기 바퀴워커를 끌게 하면서 거실로 진출했다. 


  넓고 쾌적한 거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은 고상한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두터운 페르시안 양탄자의 아라베스크 문양을 밟으면 마치 잠자는 고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고 몸 어딘가는 아슴아슴했다. 봄날처럼 따스한 햇살이 부엌 언저리까지 비추는 거실을 어르신이 바퀴워커를 끌고 가장 넓게 돌도록 사이드로만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농심 고구마깡. 
  언제인가 거의 한 달 째 식탁 귀퉁이에 놓여있던 고구마깡을 먹은 적이 있었다. 


어르신의 딸은 식탁에 놓여있는 바나나, 곶감, 강냉이나 견과류 등을 마음대로 먹으라고 늘 말했지만 네네 대답만 하고 지나쳤는데 그날은 어쩐지 허기가 져서 봉지를 뜯었다. 몇 개 집어 먹다가 문득 치아가 부실한 어르신에게도 반으로 쪼개어 입에 넣어드렸더니 뜻밖에도 잘 드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내 나는 알아차렸다. 어르신은 내가 무엇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았던 것이다. 자신이 먹지 않으면 과자봉지를 열지 않으리라는 것도. 어르신의 딸은 그 다음부터 언제나 식탁에 농심 고구마깡을 구비해 놓았다. 딸은 고구마깡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눈치였다. 

  바퀴워커를 밀고 다니는 어르신 곁에 시중을 들면서 나 하나, 어르신 반쪽, 다시 나 하나, 어르신 반쪽을 먹었다. 어느새 EBS를 켜놓은 거실의 대형 TV에서는 알 수 없는 향신료를 넣은 신비한 외국 음식을 만드는 요리교실을 방영하고 있었다. 나는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요리를 매일 보면서 고구마깡을 아삭거렸다.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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