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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경 Nov 25. 2023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등단 작가 17년차가 알려주는 등단 이후의 소설가

며칠 전 책이 나왔다.

나의 첫 장편소설이다.

제목은 <프롤레타리아 여인의 밤>

자신을 부르주아라고 생각하는 분은 프롤레타리아 여인은 어떨까 궁금해 하면서 보시고

자신을 프롤레타리아라고 생각하는 분은 이런 프롤레타리아도 있구나 하면서 보시면 되겠다.


첫 장편이라고는 하지만 오래 서랍속에 묵혀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경기문화재단 창작 지원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감사.


작가의 말을 쓰라고 해서 몇 줄 끄적였는데 이거야 말로 순수 농도 100% 진심이다.

진실한 사람은 진심을 알아봐 준다고 하니 여기에 올린다.


소설가가 되고 난 후의 인생은 어떨까 궁금하신 분도 읽어보면 좋을 듯.


http://aladin.kr/p/pQQjD



작가의 말                         

                             나도 첫줄을 기다리고 있다네  

        

“분명히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거죠.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갈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순간 자기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눈물을 글썽이는 나의 표정은, 얼음 넣은 화요 한 잔을 빈속에 마신 것처럼 말끔하게 좋았으리라. 차원은 물론 다르겠으나, 나 역시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가고 있었고,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가면서, 평생 불신과 신뢰의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는 마당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저 두 문장을 읽는 순간 ‘자기 신뢰’를 한 뼘쯤 득템하고 내 뺨 역시 발갛게 달아올랐으리라.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평생 못 쓰다 죽겠구나.

매일 밤마다 이런 하소연을 늘어놓은 나를 들어주느라 뇌 용량이 꽉 차버리는 바람에 정작 제대로 된 소설 하나 못쓰고 살았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다. 그리하여 소설책 언제 나오냐는 내 주변의 인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내가 소설인 줄 알아라.      

  문청들이 열병 앓는 신춘의 계절, 사는 게 하도 힘들어 이번까지만 응모하고 끝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열네 군데 신문사에 소설을 보냈는데 매일신문, 경남신문 두 군데서 당선 연락이 와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이후는 소설 못쓰는 병에 걸려 더 기절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이건 실화인데, 신춘문예 소설 당선한 이듬해인가 심사위원 중 한 분께 “왜 나를 당선시켜 이 고생을 하게 만드느냐!”는 요지로, 한 문장은 열네 자 이하로 끊어 써야 한다는 세간의 조언을 말짱 무시한 채 내 하고 싶은대로 저 길고긴 만연체 문장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이제껏 쓴 소설, 쓰다만 소설 모두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썼지, 독자가 이런 소설 좋아할까, 이런 생각 1도 해본적 없는 것 같다. 독자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마당에 내가 쓰고 싶은 소설도 제대로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어차피 애독자가 있을 리도 없으므로) 독자까지 생각해서 소설을 쓸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

  그래서 이 소설이 두 번에 걸쳐 문학동네에 최종심에도 오르고 했을 때, 이상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맙기도 했다. 실은 상당히 고마웠다. 아니, 눈물나게 고마웠다. 요즘 퇴고하면서 내 수준을 (뒤늦게, 이제야 겨우)알게 된 건데, 그분들의 초월적인 안목(!)에 무한경배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책상 서랍 속에 묵혀있던 이 소설을 격려해주시고, 책 내라고 기금도 주신 경기문화재단에도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마치 삶을 정리하는 기분이다.      


  1999년 2월 24일 생일 새벽, 내 생애 첫 소설을 완성하고 혼자 좋아 죽던 이래, 맨날 소설을 접어버릴까 말까 하면서 세월 다 보냈다. 오죽하면 내 블로그 이름이 <소설접기>다. 에잇, 진짜 쌩 까버려야지 하면 꼭 어디선가 기를 살려주는 소식이 들려와서 실낱 같은 ‘자기 신뢰’를 부여잡고 아등바등 살았다.

  그러니 내일 일은 나도 모르겠다. 또 소설 못쓰겠다고 자빠질지, 이제야말로 내가 쓰고 싶었던 진정한 소설을 쓰리라 작심하고 달려들지.


  그렇게 갈팡질팡하면서도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분명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가려고 주먹을 불끈 쥐고      


그렇게 오늘도 첫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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