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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오리 Apr 17. 2024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외로울 땐 독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웅진지식하우스


All the Beauty in the world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작가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서 멋지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형이 암으로 죽는 비극을 겪었다. 형을 너무나 좋아했던 작가는 지독한 상실감을 이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그는 그곳에서 10년을 일하며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은 작가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슬픔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냈다. 특히 예술에 대한 그의 시선에 깊이 공감했다. 그는 전문적인 용어로 현란하게 예술 작품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작품에 다가가는 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그는 예술 작품이 우리들의 삶과 유리되지 않고, 우리 삶 속에서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기록해 보았다.


 틈틈이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87쪽)


-예술의 특성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지적에 깊이 공감했다. 예술은 거대하면서도 아주 내밀한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주 내밀한 것에서 어떤 거대한 힘을 읽어내게 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것이 예술이 지닌 특성인 것 같다.

예술은 추상적이지만 모호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위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114~115쪽)


- 예술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이런 태도가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 부분이었다. 작가의 진솔한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예술을 제대로 만나기 위한 실천적 태도를 알려주었다고나 할까. 나 같은 예술 문외한에게는 소소한 기쁨을 주는 깨알 같은 정보였다.



 전시실 한두 개를 지나다 보면 스티글리츠가 그의 파트너이자 후에 아내가 된 화가 조지아 오키프를 촬영한 일련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초상화도 아니고 스냅사진도 아니다. 습작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작품들은 그녀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한 노력들이다. 조지아 오키프의 손, 발, 몸통, 가슴, 얼굴 그리고 다시 얼굴.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것보다도 이 시리즈는 대체로 사람이 얼마나 구체적이고도 독특하게 만들어졌는지, 우리가 태도와 몸짓으로 얼마나 많은 의사소통을 하는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선, 색깔, 빛, 그림자로 보이는지를 생생하게 일깨워준다. 사진 속의 오키프는 털이 없는 영장류 같기도 하고, 또 일순간 근엄한 여신 같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실체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류라는 생물종의 신비로움이 나에게 깊은 각인을 남긴다(...) 여기 있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조지아 오키프는 우리에게는 없는 미덕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멈춰 있다. 그녀는 영구적이다. 그 주변으로는 그녀의 성스러운 아름다움과 (옛말에서 성스럽다 Sacred는 단어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이었다) 지루하고 평범한 세속의 영역을 분리하는 액자가 둘러져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150~152쪽)


 -쉴 새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진격하는 현대인들이 잠시 멈춰 서서  흠모할 예술적 대상을 만날 수 있다면, 잠시나마 세속의 영역을 초월한 성스러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 힘은 바로 이런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일상에서 벗어나 예술 작품을 만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드는 사람은, 자기만의 행복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갑갑하고 지루한 현실의 ‘여기’에서 어딘가로 훌쩍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는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그리고 처음에는 아무하고도, 심지어 경비원들하고도 말을 하지 마세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눈을 크게 뜨고 끈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존재감과 완전함뿐 아니라 상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만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세요.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술품의 제작자, 문화, 의도된 의미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내세요. 그것은 보통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방침을 바꿔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어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들을 해보십시오. 그것과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메트에서 애정하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322~323쪽)


 - 작가는 미술관에 가서 우리가 예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술관을 나설 때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되어줄 작품을 가슴에 품고 나오라고 했다. 살아가는 동안 그 작품이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므로.

 미술관에서의 이러한 진지한 관람 행위가 삶에서 의미 있는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지지 않은가?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 준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324쪽)


 -예술가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불멸의 삶을 산다.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시간을 멈추게 했으니 말이다. 그 멈춤의  기록 속에서 예술가는 시대를 초월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흔히 간과해 버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붙잡아서, 그것의 위대함을 집중 조명해 준다. 예술은 순간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영원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진정한 매력과 힘이다.



 여담이지만, 이 책 제목이 특이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더 끌었을 것 같다. 작가가 미술관의 경비원이라고? 호기심을 무척 자극하지 않는가.

 그러나 원제목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 All the Beauty in the world 』이다. 우리나라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서 더 이목을 끌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제가 좀 더 지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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