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 오리 Nov 29. 2024

오직 쓰기 위하여/천쉐 지음/ 글항아리

 -외로울 땐 독서



 지은이 천쉐는 타이완의 작가이다. 1995년 데뷔작 『악녀서』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중화권의 대표적인 퀴어 문학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장편소설『다리 위 아이』는 2004년 『중국시보』 10대 우수 도서로 선정됐고, 장편소설『악마』는 2009년 타이완문학상 진뎬상, 2010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대상 올해의 소설, 제34회 진딩상 후보에 올랐다.



 머리말의 제목이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이다. 작가의 글 쓰는 과정의 분투를 암시하는 듯했다.

 작가는 1998년, 생업이 바쁜 나머지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이후 반년 간 심리 치료를 받았다. 그때 의사는 그녀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가족 문제든 일 문제든, 누군가 당신을 대체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의 삶에서는 누구도 당신을 대체할 수가 없다고요. 당신의 글쓰기는 오직 당신 자신만이 할 수 있어요. 글을 쓰지 않는 대가도 오로지 당신 스스로 치러야 하고요.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생명력을 잃고 말아요. 당신의 우울, 슬픔, 낙담, 무기력은 모두 자신이 되지 못해서 생겨난 거예요. 생명력을 잃고서 가족을 어떻게 잘 돌보겠어요? 자신부터 잘 돌봐야 딸 노릇도 하는 거죠. 먼저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다른 사람도 책임질 수 있어요.”(5~6쪽)


 그녀는 반년 간의 치료를 마치고도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쓰는 사람이고, 글을 써서 스스로를 치유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런 신념을 얻었다.


 나를 믿으려면 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나 자신이 되어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내 갈 길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믿음을 가지려면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나 자신을 믿는 법을 배웠다면, 나를 지켜낼 가장 강력한 힘이 생긴 셈이다.


 이런 신념이 긴 세월 동안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게 하지 않았을까. 더 근원적으로 자기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녀가 삼십여 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에 대한 깊은 애정, 철저한 몸 관리, 글쓰기 루틴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표현한 글들을 읽으면, 그녀가 그렇게 많은 멋진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그렇겠지만 글쓰기에도 왕도는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계속하는 수밖에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신념이 굳건해야 한다는 것. 그녀의 글 쓰는 방법에 어떤 신비로운 비책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한 자 한 자 계속 써나갔다는 것뿐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부제가 ‘글쓰기의 12가지 비법’이었다. 그런데 책 속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다만 ‘창작자에게 건네는 열 가지 조언’이라는 부분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법이 아니다. 굳이 비법을 찾아야 한다면 글쓰기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표현한 글에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글쓰기에서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글을 쓰기 전에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오랜 시간을 거쳐 다듬어진 작품이 글쓴이 자신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래오래 노력하다보면, 끝내는 하늘로 올라가 약간의 신력을 훔쳤다는 느낌이, 소설의 신이 더없이 귀중한 무언가를 아주 조금씩 우리에게 돌려주고 우리 작품 속에 그걸 집어넣어주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80쪽)


 지금 내 실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겠다는 마음을 품고, 무한한 인내심으로 내 작품에 기회를 주고, 그 위대한 작품들이 준 충격을 머릿속 깊이 새기는 것이다. 그러나 까다롭다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발 한 발 착실히 나아가야 한다. 모든 작품은 한 글자씩, 한 구절씩 써나간 것이며, 그러면서 한 글자씩, 한 구절씩 더 나아진 것이다.(88쪽)


 내가 바로 내 작품의 가장 든든한 옹호자가 되어줘야 한다. 작품은 나 자신의 것이니까. 내 작품을 소중히 대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글을 쓰는 것으로 실천해야 한다. 느려도, 비틀거려도, 내 발걸음이 가장 빠르지는 않다 해도 말이다(...) 끈질기게 써나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목표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89쪽)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하는 것을 열심히 연구하며 갈고닦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독특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지치고 힘겨울 때 자신의 행동이 가치 있는지 잘 판단하는 능력, 어려움을 견뎌내고자 하는 심리적인 자질 또한 재능이다.
 진정한 재능은 쉽사리 글을 써서 남들보다 우월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남들이 못 가는 길을 가고, 남들이 못 견디는 고생을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실의를, 좌절을 참아내며 남보다 더 멀리 가는 것, 이런 것이 가장 소중한 재능이다.(119쪽)


나는 천천히 쓰고 천천히 고쳐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별로였던 내가 차츰차츰 나아지는 과정을 보는 게 좋다. 평범한 내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러면서 평범한 사람도 극한의 능력을 발휘해 자신을 넘어서는 작품을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게 좋다.(149쪽)


 내가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오게 해준 비결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기’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자.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의 상황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인생만을 살아갈 수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려 애쓰며 내 작품에 집중하자. 상을 받았든 못 받았든, 베스트셀러가 됐든 안 됐든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떳떳한 작품을 쓰자. 그리고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자. 우리 삶을 무기력하지 않게, 허무하지 않게 만들자. 글 쓰는 마음은 생명의 꽃술과 같다. 그 마음에 불이 붙으면, 한 번에 다 불사르지 말고 천천히 계속해서 불타오르게 하자. 이 생명의 꽃술은 오직 우리 자신만이 불을 붙일 수 있고, 지킬 수 있으며, 계속 타오르게 할 수 있다. (151~152쪽)


  글쓰기에는 비법이 없다. 오로지 쓰고 또 쓰는 수밖에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도 어떤 요행도 없다. 그저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수밖에.

 내게는 이 책이 글쓰기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했다.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태도는 곧 삶에 대한 태도였다.

우리 삶도 하나의 작품이다. 

그 작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