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오후 여섯시 사십일분.
퇴근하는 사람들로 틈없이 메워진 버스를 탔고,
다섯정거장을 지나 학동역에 내렸다.
오십원의 추가금이 교통카드에 찍히는걸 보았고,
집 앞의 역으로 향해가는 7호선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 약냉방칸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따라 타는 곳마다 약냉방칸이라는게 조금 짜증이 났다.
사람들 틈을 비집어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일반칸으로 향했고,
운 좋게도 바로 앞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속터미널역에서 내리셨다.
어제부터 줄곧 듣고 있는 김동률의 '동반자'가 귓속을 큰소리로 채우고 있었다.
98년에 나온 노래니까 벌써 18살이 다 된 노래.
노래가 들려지고, 잊혀지는 그 빠른 속도를 생각한다면
나보다 한참은 형 뻘일지도 모르는 노래겠구나 싶었다.
가슴에 물들었던 멍들은 푸른 젊음이라며 그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더라.
이렇게 별 것도 아닌 일을 새삼 되새김질하며,
오랜만에 대중교통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 메모를 켜고 끄적인다.
누구나 어떤 일을 할 때 습관이라는게 생긴다.
공부하기전에 방정리를 해야만 한다던가,
칸막이가 없어 답답하지 않은 곳에서 오히려 집중이 잘된다거나,
어둑해져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놀이터의 그네 중
꼭 왼쪽에 있는 빨간그네에 올라타서는
오른쪽의 초록그네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거나 하는,
일련의 그런것들.
이 시덥잖은 글쓰기에 대한 습관을 말하자면
군대에 있을때는,
취침 소등 후 부스럭거리는 파란색 이불속으로 파고들어가
그 당시에는 꽤 희소했던 아이팟터치를 손에 쥐고는
이렇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지릿한 내음 진동하는 어리숙한 이야기들을 써댔고
리투아니아에서는,
알아듣지도 못할 그 나라 말이 듣기 싫어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채 타던
그래도 꽤 정겨운 초록색의 녹슨 버스안에서
스무해가 넘게 살아오던 곳과 한참을 떨어져 사는 기분이라던가,
생전 처음 혼자 살아보며 드는 생각들 같은,
드문드문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곤 하던 상념들을 잡아내선 한마디씩 풀어내었다.
친퀘테레에서는, 숙소를 향한 버스에서
갖은 불안과 걱정을 한 켠에 쥐고 계속해서 흘러대던 생각들을 끄적였고,
파리에서는,
적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마음 반과
하더라도 충분히 적어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 반으로
몇 줄을 써내려가다 이내 포기했었다.
그래서인지 적당히 씁쓸한 커피 한 잔을 올려놓고 여유있게 노트북을 투닥대는 것 보다,
어디가 되었든, 핸드폰의 메모를 켜놓고 생각나는대로 투박하게 두드리는게
조금 더 편하고 막힘도 없나 싶다.
굉장히 평범한 날.
어제와 별 다를 것 없고, 내일과도 마찬가지일
그런 평범한 날.
그래서 다 같은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그날의 하늘이, 바람이 좋은 날이 있다.
그 순간에 찍은 사진들은 괜시리 더 마음에 들며,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느끼는 정도가 조금 더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그네에 앉아 바라본 할머니 할아버지
손주 손녀들이 괜히 더 화목해보이고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조금 이르게 켜져 있는 주황빛 가로등이 든든하고
주택가 골목 사이로 길게 뻗은 전기줄이
이제 막 붉어지려는 하늘과 어우러져
한 유명작가의 사진처럼 보이는
평범한 것들을 그제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날.
그 날의 생각을 꼬리 물며 끄적 거려본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