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트 Aug 01. 2015

서울이야기_2 / 역삼동, Hearth

나만 알았으면 좋겠다 싶은곳들의 첫 번째 이야기.


높은 건물들과 매연으로 그득한 도시에서 비루한 한 몸 편하게 머물 곳이 있다는 건 참 괜찮은 일이다.


높은 아파트 중 어느 한 층이어도 좋고,

골목 구석을 헤집어야 찾을수 있는 갈색 벽돌의 아담한 빌라여도 좋다.

하다못해 두 세평 남짓한 ‘내 방’이라 부를 수 있는 곳만 하더라도.



그 와중에 참 까다롭게도, 각자가 느끼는 편안함은 죄다 다른 듯 싶더라.

의자의 높이가 맞지 않아서, 테이블이 좁아서, 조명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서인지 마음과 몸이 모두 안정된 편안함은

호화스런 고급 호텔도 쉽사리 주지는 못하는가 보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러, 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본 곳이 마음에 드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동네이름과 맛집의 합성어로 치밀한 검색을 끝내야만 비로소 움직이는 시절이라,

애초에 '지나가다 우연히 어딘가에 들른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 되어버렸으니



그래도 아주 가끔, 그 드물고 드문 일이 일어날 때가 있다.



점심시간, 한가한 곳을 찾기 쉽지 않은

저마다의 목걸이를 하나씩 둘러맨 사람들로 북적대는 역삼역 근처.


세로로 길게 뻗은 공간, 가게 앞을 바라볼 수 있는 2인 테이블, 다리 긴 의자들.

짙은색 대리석 테이블로 벽 한쪽을 비집게 차지하고 있는 와인바.

여섯 정도가 오붓이 앉을 수 있는 나름의 단체석.



사실 그런 공간의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었다기 보다,

혼자 들른 손님에게 건네는 친절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막 일을 배워가는 듯한 아르바이트생은

2인 세트로만 구성된 저녁 메뉴판을 건네 당황시켰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데도 연신 물을 쏟아댔지만



그런게 다 괜찮았던건,

편하게 있다 가라는 가게 주인의 말 한마디가,

식사는 입맛에 맞냐는 꽤 형식적인 질문이,



직접 만든 피칸파이라며 내미시는

가장 좋아하는 검은색 돌 모양의 접시가,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 덕분에,

다른 이의 공간에서

이 한 몸 편히 둘 수 있는 곳을 새로이 찾았다는,

간만에 느끼는 그 기쁨을 찬으로 삼아

적당히 익혀진 파스타 한 접시를 양껏 비워냈다.



그리고 디저

'매주 금요일 점심마다 혼자 와서 앉아 있어야지'

나름 꽉 차게 다부진 마 먹었다.


나만 아는 곳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장사는 잘 되면 좋겠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함께.




역삼동. Hearth.

작가의 이전글 서울이야기_1 / 청계천, 장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