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교환학생기) 수도 빌뉴스 둘러보기
한 학기를 보낸 카우나스 공과 대학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와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카우나스가 아늑한 자연환경에서 살기 좋은 도시라면,
빌뉴스는 수도라 그런지 높은 건물도 많고 공항도 잘 갖춰져 있어
이래저래 살기에 더 편리하긴 하다.
그래도 수도라서 꽤 자주 방문할 줄 알았는데
손가락 꼽아 세어보니 여행을 하러 온 건 세번도 채 안되는 것 같더라.
역시나 가까이 있을때는 귀한 줄 모르다가 이제야 아쉬운 맘이 부푼다.
꼭 가족이 그런 것 처럼.
두 살 터울의 누나가 하나 있다.
공부가 취미이자 특기고, 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근성과 집중력의 소유자.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는 가끔 같은 방에서 잠을 자며 수다를 많이 떨 정도로 누나를 많이 따랐고 좋아했다.
막상 기억을 되짚어 쓰고 보니, 그렇게까지 누나를 따라다녔던게 이제 와서는 새삼 놀랍긴 하지만.
형제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느낄테지만,
자녀 사이에는 부모의 애정을 차지하려는 무언의 경쟁이 존재한다.
한 가정의 자녀로서, 그리고 동시에 학생으로서 인정받고 예쁨 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학업에 있어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것.
내 자식이 공부를 잘 하고 전교 몇 등 안에 든다는 사실은
부모님의 어깨를 한껏 치켜세워주는 힘이 있다.
종종 열리는 학부모 모임이라던가, 명절마다 모이는 친척들 사이에서
우리 애는 전교 몇 등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부모에게 꽤 큰 자부심이고 즐거움이니까.
모든 부모가 당신의 자녀들이 천재이고 수재라고 주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니라는걸 받아 들이는 때가 온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천재라고 오해했던 아이들이 꽤 많으니,
그들 사이에서 ‘내 아이는 진짜였어’라고 말하는 우월감은 아무나 맛볼 수 있는 건 아닐테다.
누나는 그 희소한 우월감을 부모님께 안겨드리는데 능숙했다.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스스로 잘 했고, 시키는 것은 기본으로 해낼 뿐더러
더 할게 없나 여기저기 찾아 다닐 정도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서연고를 목표로 할 때 하버드를 바라 봤으니,
공부를 향한 그 집념은 상당히 지독해서 단 한번도 미끄러지는 일이 없는 누나였다.
그런 누나를 바라보며 내가 첫 번째로 세운 전략은 모방이었다.
'누나만큼 공부를 잘한다면 나도 인정받고 예쁨 받겠구나' 라는 생각이 확고 했기에,
공부를 잘 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이미 명확했다.
하지만 뱁새는 뱁새고 황새는 황새일 뿐인지, 내 학업의 성과는 항상 누나의 것보다 못했다.
학년도 다른데 어찌 동등하게 비교를 하겠느냐만, 상대적으로 내 것들이 평가절하됨은 분명 있었다.
같은 점수를 받아도, '남학교니까' 혹은 '내 학년이 평균적으로 더 못하니까' 등의 이상한 조항들이 붙어나갔다. 다른 곳에서는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결과도 집에 오면 당연한 것이 돼버리기 십상이니,
아마 이때부터 조금씩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이 싹 텄고 자존감은 그 성장을 머뭇댔던 것 같다.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아이’의 자리는 누나의 것이 공고히 되어버렸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착한 아이’의 자리를 찾아 갔다.
보통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맏이가 동생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니면서 생긴다는데,
내 경우는 ‘착한 아이’의 역할을 맡아서 ‘공부를 잘 하는 아이’인 누나와 차별성을 지니기 위해
그래야 그 차이를 메울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된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가족안에서 누나는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되었고,
나는 공부보다는, 착한 아이가 되어 어른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래도 그 때는 나름 괜찮고 좋아했다.
공부 말고 다른 요소로 인정받는 것에 대해 느끼는 즐거움이 컸고,
그렇게 나름대로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착한 아이라는 역할은 꽤 많은 것을 참도록 요구했다.
어른들이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은 내게 있어 높디 높은 장벽이 되어
절대 벗어나선 안 되는 기준이 되었다.
사실은 별 것도 아닌 일들도 어기면 큰 일이 나는 줄 알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항상 허락을 받은 뒤에야 마음이 놓였으며,
아직 어린 나이기에 드는 철 없는 생각들과 말들을 되도록 홀로 삼켜내야 했다.
그렇게 점점 스스로를 밖으로 표현하는 법을 잃어갔고,
속으로 곪아내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아마 그래서일 테다.
가장 가깝고, 항상 내 편일 수 있는 가족에게 내 속의 이야기를 더 못하는 이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고, 그냥 다 그만두고 싶고.
그냥 답답한 마음에 내지르는 말일수록 더욱 못하겠는거다.
가족에게도 제대로 터 놓지 못하는데,
생판 남에게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고.
그래도 괜찮은건, 그 습관과 성향이 나로써 무언가 기록하게 만들었다는 것.
직접 말하지 않고 삼키는 만큼 꼭꼭 씹은 뒤 되새김질까지 해서 이렇게 천천히 풀어댄다.
그래서 홀로 카페가는 시간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만큼이나 설레고 즐거운가 싶다.
꽤 즐거워 보이는 사진들을 고르고,
그 사이에 차분히 한두마디씩 붙여 두는 것.
그렇게 조금씩 숨구멍을 넓혀 가는 일.
그렇게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
여전히 조금씩 자라고 있는 걸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