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라거나, 청춘 같은 것
일이 있어 한 고등학교를 찾았다. 익숙지 않은 경기버스를 타고 한참을 꿀렁거리며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건 처음 보지만 꽤 친숙한 풍경. 학교를 주위로 하나씩은 있는 분식집, 학교 건물을 향해 올라야 하는 언덕길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학교를 오고 가는 모든 이를 통제하는 경비아저씨.
곧 운동장과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울창히 심어져 있는 나무들 덕에 초록빛이 다른 곳보다 꽤 많이 감돌고 있었다. 학교라는 곳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유난히 다른 곳들보다 크고 푸른 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어 바라보기도, 숨쉬기도 편안한 곳. 막상 다닐 때는 일상이 되어 체감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곳을 일상으로 삼아보니 그리 상쾌할 수가 없다.
모교는 등교길이 가장 아름다운 학교로 뽑힐 정도였다. 특히나 후문으로 가는 길은 나무로 만든 동굴처럼 녹음으로 에워싸여 터벅터벅 걸어가는 내내 짙은 풀내음이 진동을 했다. 여름이면 은행 열매가 터져 나는 구린내는 보너스.
마음에 여유가 부족한 고등학생이었던 때라 등교길의 정취를 느낀다거나 한 적은 딱히 없지만, 빗줄기가 살짝 내렸을 때 유난히 등교길이 좋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라앉아있던 풀내음이 더 진하게 올라왔고, 공기도 살짝 차가워져선, 내어 입으면 택시기사 같던 교복 와이셔츠 속을 스몄다. 정문과 후문으로 가는 길을 가르는 아주 짧은 터널을 지날 때면 떠드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우산을 아무리 써본들 교복 바지 밑단은 축축해져 왔다.
처음 보는 학교 건물로 들어서서는, 수업이 끝나 이제 막 걸레질이 되어 물기가 남은 바닥을 보니 뭔지 모를 부러움 같은 것이 올라왔다.
내 나이와 같은 2학년 6반에 들어가 어색한 인사를 시작으로 너희들은 쉴 때 무엇을 하는지, 운동은 하는지 질문을 해댔다. 수업이 다 끝났다는 이유로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땀을 삐질댔지만, 걱정했던 것들은 그저 기우였는지 착한 친구들은 활발히 대답을 해주었고 제일 앞자리에서 열심히 반응해주던 친구와의 짧은 인터뷰를 끝으로 기분 좋게 돌아나왔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데 굳이 즐겨 듣지는 않던 신나는 노래들이 갑자기 듣고 싶어 졌다.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혼자 흥이 돋아선 어깨를 살짝씩 들썩거리며 가사를 흥얼거렸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 내릴 때 쯤이 되어 머쓱해졌고, 그 활발한 친구들에게 받은 기운 때문인 듯 싶었다.
십오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고 질문하는 것에 거침이 없더라. 얼마 되지 않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큰소리로 열광했고 감사하다며 소리쳤다.
그 즈음에만 갖고 있을 수 있는,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반짝거리는 것. 젊음이라는 진부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그것이 감사하게도 와 닿은 덕분에.
지금보다 조금 더 즐겁게 살아도 괜찮겠지 싶었다.
조금 더 크게 웃고, 조금 더 눈치 보지 않고,
아주 약간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카페에 앉아하는 사색이야 또 다른 즐거움이지만, 우울함이라거나 자조적인 마음은 그 중독성이 꽤 짙으니 적당히 취하는 것이, 아니면 애초에 저 멀리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면 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즐거운 기록을 끄적이고 싶었나보다.
하루가 지나 찾은 모교의 등교길은 그대로였다. 우산 없이도 맞을 만큼 내리는 비는 어렴풋한 기억을 조금 더 선명케 해줬다.
자습 감독을 잠깐 하고 나오신다는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며 새로 생긴 엘리베이터라던가 철저해진 보안 장치들을 두리번 거리며 구경했다.
이미 수많은 제자가 거쳐갔기에, 그중의 별다를 것 없는 제자 하나는 혹시나 제 이름을 잊으셨으면 어떡하나 하고 이름부터 외치며 학교로 들어섰다.
채 십분도 되지 않는 기다림에 하늘은 금세 어둑해져 살짝 내린 빗줄기와 함께 짙은 초록을 강하게 풍겼다.
허름한 가게 안, 다소곳이 차려진 동태탕 한 그릇과 뜨끈한 흰 쌀밥 한 공기씩을 마주하고 그간 묻지 못했던 안부, 실은 작년에도 했던 그 진부한 질문들로 서먹한 공기를 채워나갔다.
우연한 기회로 테레비에 등장했던 것에 대해 여쭈었다. 무뚝뚝한 그 얼굴로 조금은 수줍은 표정을 지으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작가가 전화가 와가지고는 어떻게 할지 묻더라. 안 나갈 생각으로 원래 하던 대로 한다고 했지. 질문만 안받았으면 방송에는 안나갔을텐데."
"그래도 엄청 잘 나오셨던데요. 화면도 잘 받으시고, 학생들 질문에 대답도 잘하시는 좋은 선생님으로 나오셨던데"
표정 변화가 크게 없으셨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은 감정표현을 크게 하지 않으시는 편. 도수가 높은듯한 안경때문인지 두 눈이 작아 보여, 눈을 뜨신건지 감으신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슬쩍 보면 자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상도 출신의 전형적인 상남자다운 말투. 그래도 무심한듯 애정을 담아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아주 가끔 던지시는 농담에 많은 친구들이 좋아했고 잘 따랐다. 어렸을 적 감자였는지 수제비였는지를 물리도록 먹어 지금도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표정 변화가 많이 없던 선생님은 졸업한지 꽤 지난 제자가 편하셨는지 자주 미소를 보이셨다. 내가 꺼내놓는 이야기들을 그저 옅은 미소와 함께 들으시다가, 젓가락을 드시며 운을 떼신다.
열심히 하면 되는거야.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그럼 된거지.
불변의 진리지만 누가 해주기 전에는 끝내 진부하기만 한 말. 어떤 선택을 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고도, 너가 잘 해낼거라고 믿는다고도 하지 않으신다. 뭐가 됐든 열심히 하라 하셨다. 항상 그러셨다.
삼십년은 넘게 한참 어린 제자가 하는 인생 고민이라봤자 당신에겐 한낱 안주거리도 되지 않는 시시껄렁한 이야기일텐데.
7년 전에 무슨학교 무슨과에 가는 게 좋을지 진지한 표정으로 교무실에 마주 앉아 물어대던 제자가 찾아와, 또 다시 교무실에 와선 믹스 커피 한 잔씩을 쥐어들고 무엇을 하고 사는 게 좋을지 따위의 질문이 아닌 한탄을, 정답에 대한 기대 없이 늘어놓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돌아가는 길은 어두워질대로 어두워졌고 한 시간은 지하철을 타야한다는 생각에 가방이 짓누르는 어깨가 더 무거워져왔지만, 처음보는 아이들에게 받은 기운, 그리고 선생님이 툭 던지던 진부한 조언 덕분인지 지겹도록 타던 4호선 지하철이 평소보다 아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