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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트 Aug 30. 2015

영국이야기_4 / Notting Hill

우리는 서로가 너무 좋은 시절에 만났다

총 일주일간의 영국 여행 중 가방 운반을 도와준 친구와 일정이 겹치는 날은 사흘 정도.

그래도 하루 정도는 런던을 혼자 거닐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각자 가보고 싶은 곳을 가기로 했다.



마침 친구도 영국에 왔으니 대영박물관은 한 번 가봐야 했고,

난 이제 박물관이나 미술품에는 흥미도 소질도 없음을 절실히 깨우친터라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다.



런던의 백종원이라는 제이미 올리버



이국만리에서 만나서 훨씬 더 반가웠고, 가방뿐만 아니라 내 부모님께 들러

미처 챙기지 못했던 여름 옷가지라던가 고춧가루, 멸치 같은 것들까지 가져다 준 이.


가방 때문에 시작한 여행이라 했지만,

몇 년을 엉덩이 한 번 맘껏 의자에서 떼지 못하고 힘들게 공부한 친구를

유럽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게 한 몫 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다양한 지식이 많은 친구였다.

사회과목에 특히 능했고, 나로서는 외워야만 제대로 기억하는 역사과목을 재미있는 소설 책 읽어내려 가듯 다뤘다. 중요하다 빨간 줄 쳐진 것들을 외우기에 급급했던 나와는 달리, 하나의 큰 그림을 보듯 했다.



정치나 사회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고 자신의 의견도 또렷했다.

그때는 그 친구의 그런 점이 싫었다.

뭐가 무엇이라 단정 짓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꼴같잖아 보였음도 없진 않다.



생각해보면 설익은 마음으로 가진 그 같잖은 경쟁심 때문이었다.

중간고사라던가 모의고사 점수들로 보이지 않는 일렬 종대의 칼 같은 줄이 세워졌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 모여든 학교라는 공간에서 점수는 곧 권위나 권력 같은 것으로 환전되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더라도 선생님들의 말 한 마디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체감되는 형체 없는 짓누름.



살아가며 끝나지 않는 게 경쟁이고, 때론 그 경쟁심이 동기부여로 이어지기도 함은 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달디 단 열매를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그래도, 앞에서 몇 번째에 서 있는지의 번호표를 갖고선

누군가는 시기와 선망의 대상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암묵적인 무시가 허용되는 일.


스무 살의 문턱을 넘어 평생을 걸쳐 하게 될 역겨운 짓을 벌써부터 연습하기에는,

그러기엔 서로가 너무 좋은 시절에 만났다.


점수나 대학의 이름이 아닌,

 저마다의 색을 또렷이 해가는 이름 석.

 서로를 기억하기에도 부족한 시절에.



‘바른 생활’이나 ‘도덕’ 같은 당위성 짙은 가르침은 중학교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윤리’ 과목에는 옛 성인들과 학자들의 이름, 학문들의 종류로 가득 차 윤리적인 것은 암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배달했다. 그래서 착한 어른이 되라는 가르침은 수 많은 암기 과목에 밀려 더 이상 당위적이지도 않은 이야기가 되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일곱, 열여덟, 그리고 열아홉

한 없이 푸릇한 시절이고

서로에게 조건 없이 따뜻할 수 있는,

두려움 없이 나의 것을 모두 보일 수 있는,

그래서 지나가는 낙엽에도 함께 즐거워 자지러지는 때다.



자율학습을 몰래 빼먹고선 떡볶이를 먹으러 나가고,

좋아하는 친구의 이야기로 서로의 상담사가 되고,

15분도 채 되지 않는 쉬는 시간마다 공 하나를 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그 순간들이 평생에 걸쳐 기억되는 이유.



내 그런 기억들 속에서 꽤 많이 출연하는 친구.

반가웠던만큼 하루 정도 따로 여행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싶었다.



영국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영화 노팅힐



일부러 자막도 넣지 않고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영화 속 배경으로 내내 등장하는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

섹시한 영국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파란문의 집을 찾아보고 싶었고,

여행 책 가게에도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선, 피렌체에 가면 두오모에 꼭 올라봐야지 마음먹었었다.

영화 탓인지 두오모나, 두오모가 잘 보이는 종탑에 오르는 이들은 대부분이 아시아인이었다.

그때도 비가 어렴풋이 내려 철창에 빗방울들이 줄을 지어 매달려 있었다.



포토벨로 마켓에 들어서자 양 옆과 길 가운데에 수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흐린 날씨는 상관 없다는 듯 활기차게 움직였고 매력 있는 영국 발음의 영어들이 이리저리 오갔다.



인상적인 상품 조합





고풍스런 앤틱샵도 상당히 많다





구매충동이 가장 많이 들었던 가게 STUMPER FIELDING











포토벨로 마켓은 토요일에만 장을 크게 선다. 평일에는 비교적 한산.



고속도로 휴게소에 하나쯤은 있는 음반가게와 비슷한 느낌



영국 브랜드 ALL SAINTS와의 첫 만남







한국에 와서 결국 샀다



파리까지 가서 결국 또 샀다





ㅠㅠ









허기를 꽤 많이 달래준 시식용 고로케(같은 것)













시장 끝까지 올라가니 만난 포토벨로 역. 언덕길이 싫다면 이곳에서 출발해 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기 많던 빠에야는 먹을 공간이 따로 없어 맞은편 골목이 임시 식당의 역할을 했다.













시장의 들뜬 공기에 휩쓸려 카메라를 놓을 틈이 없었고, 애초에 보고 싶었던 파란 대문집 같은 것들은 까먹은지 오래였다. 시장 끝까지 한 번 올라서는 그제야 생각이 나, 찾아가볼까 말까 고민을 했다.

안타깝게도 파란대문의 집은 공사중인듯 했고 여행책 가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와 함께 다닐 때는 조금 더 자신 있게 꺼내던 셀카봉을 가방 저 밑에 쳐 박아둔 걸 바라보며,

내가 사기로 한 오늘 저녁에 어떤 맛있는 걸 사줄까 거북이 같은 속도의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그렇게 슬슬 허기가 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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