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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트 Sep 06. 2015

영국이야기_5 / Kensington Garden

초록의 공간

노팅힐 게이트에서 포토벨로 마켓으로 오르내리기를 족히 세 번은 한 뒤,

치킨 빠에야로 허기도 채웠겠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런던을 혼자서도 한 번 거닐어 보고 싶었던  것뿐, 포토벨로 마켓 말고 딱히 가려던 곳은 없었기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가깝다는 이유로 들르게 된 켄싱턴 가든



빅토리아 여왕이 태어난 곳이자,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머물렀던 곳.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잘 전시된 그 시절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듯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전경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건물 내부는 우아하고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단순히 박물관 같은 느낌보다는 실제로 런던 사람들이 와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는 공간 같은 느낌.



이런 테라스에 앉아, 한가로이 따뜻한 차 한 잔을 홀짝거려도 좋겠더라.



여행 계획을 나름 꼼꼼히 짜는 편이긴 하지만, 막상 시작한 여행에선 그 루트를 벗어나기를 즐긴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갔던 유럽여행에서는  각각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길잡이와 통역사, 그리고 사진사.



스마트폰이 없던  그때, 방향 감각이 가장 좋던 형이 자처해서 길잡이의 역할을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종이지도 한 장만 손에 쥐고 어떻게 가고 싶던 곳곳을 누볐나 신기할 따름.



형의 길 찾는 능력은 탁월했고, 독일에서 보여줬던 독일어 실력은 핫도그 파는 점원이 감격할 정도.

생소하게 생긴 아시아인이 ‘핫도그 두 개 주세요’를 독일어로 해대니 적잖이 놀랐던지

싱글벙글 대며 큰 덩어리의 햄을 뭉텅뭉텅 더 두껍게 썰어서는 빵 사이에 투박하게 넣어주었다.



나라가 바뀌고 도시가 바뀌는 기차 안.

저마다 챙겨온 유럽여행 책자를 꺼내 들고 다음 행선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탐독했었다.

나중에는 그것도 약간 비효율적이라 느꼈는지 파트별로 나누어 누군가는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서,

다른 친구는 박물관에 대해서만, 또 다른 친구는 도시의 역사라던가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에 대해서만 읽어

기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공유하곤 했다.



그렇게 다들 저마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나, 셔터질을 하는 사진사가 문제였다.

정해진 루트대로 잘 따라가는 듯하다가도, 제 눈에 들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따라가 무리에서 이탈해 걱정시키기 일쑤였고,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성에 찰 때까지 한 곳에 머물러 일정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길잡이 형의 크디큰 관용 덕에 제멋대로인 그 행동으로 인한 다툼 한 번 없었지만,

그때부터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다.



홀로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것.



가려고 마음 먹었던 곳을 크게 정해놓고 발걸음을 서두르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비는 시간이 생기기도 한다.

가려던 곳이 하필 공사 때문에 닫았다거나,

대중교통이 파업을 해서 발이 묶였다거나,

혹은 이유를 알 수 없이 기분이 좋지 않아 멀리 돌아다니기 싫을 때.



그렇다고 무작정 하루를 쉬기에는 애써 준비한 계획, 어렵게 낸 휴가 같은 것들이 떠올라 분한 거다.



그럴 때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도를 펼쳐, 지금 서 있는 곳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초록의 공간을 찾는 것.

그 크기의 정도나 얼마나 잘 알려져 있는지는 아무렴 상관이 없다.



초록으로 가득한 공원에선 여행 책자에 기록된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아닌,


정확히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서있는 내가 아니라면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이야기

이를테면 2015년 2월의 런던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방영되고 있기에


잠시 머무르는 여행객으로서 잠시나마 그 곳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는 방법.



어머니

박물관이나 유적지로 붐비는 여행객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하루하루 그 곳에서 일상을 만들어왔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 곁으로 슬며시 다가가는거다.


고된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움켜쥐고 공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양복의 신사,

하릴 없이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그저 신기하기만한 유모차 속 아이들.



아무래도 저 친구가 절 부르는것 같습니다만

그런 이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노라면

그제서야 책 속의 도시가 아닌, 정말 이곳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둑해진 소호 거리

한 나절도 안 되는 시간을 떨어져 있던 친구가 그새 그리워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런던에 오기 전,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던 버거 앤 랍스터를 가려고 했지만

무지막지하게 서 있는 줄을 보고 나중을 기약하며 후퇴.



이래저래 심부름도 많이 해주고, 여행 동료도 되어 준 친구에게 꽤 괜찮은 저녁을 사고 싶었는데

계획했던 곳에 못 가게 되자 한참을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버거 앤 랍스터 맞은편에 있던 바이런. 수제 버거집.







페일에일 한 캔, 라거 한 캔.







어딜 가든, 가게 이름 붙은 메뉴를 시키는게 괜찮을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런 의미에서 시킨 BYRON 버거.



버거보다 더 맛있었던 어니언링.








영국 음식은 어디 가서 뭘 먹어도 다 맛없다는 이야기도 이제 옛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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