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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트 Oct 29. 2017

파리이야기_1 / Boot Cafe

그리고 Mmmozza

리투아니아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공항에서 밤을 새야만 한다. 공항까지 오는 대중교통 편이 열악하여.




프랑스-이탈리아 여행 시작




파리 먼저 가봅세




스마트폰 삼매경




숙소가 이 광장 근처였는데




잘 모르겠지만 추모인지 집회인지가 매번 있었다




아침 먹기 좋을 거라고 추천 받았던 샌드위치 가게




나는 프랑스어를 못하고, 사장님은 영어를 못하셔서 그냥 대충 추천해달라고 손짓발짓으로 주문




가게 이름에 Mozza가 들어가듯, 모짜렐라 치즈로 유명하단다. 먹음직스러운 하얀 덩어리째로 많이들 사가던.




모양새로는 프로슈토 바게트 샌드위치 정도려나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맛




오랜만에 신촌에서 친구를 만났다. 매일매일이 다르게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신촌이지만, 대학생 시절의 풋풋한 추억이 여기저기 가득 서린 곳.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찾는 맥주집에 친구를 끌고 갔다.



이제는 유행이 한참 지나버린 세계 맥주집. 입구는 거리에서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지하라 더 찾기가 어려워 가본 적이 없으면 헤매기에 딱 좋다. 그 집만의 특별한 안주도 없어 맥주 마니아가 아닌 다음에야 가지 않을 것 같지만, 내게는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가게 사장님이 계신 곳. 실은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 반, 사장님을 뵈러 가는 것 반으로 찾곤 했다.



친 형이 없는 탓인지 형들을 좋아했고,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형들은 각종 가게 사장님들과 친분을 두텁게 쌓아 다음에 올 때는 이름을 알정도로 넉살이 좋았다. 내가 소개시켜줬던 삼겹살 집은 다른 형의 단골가게가 되었고, 사장님은 나보다 그 형을 더 잘 기억하고 반겼다. 무언가 소중한 장소를 뺏긴 마음에 억울했으나, 덕분에 사장님과 인사라도 한 마디 더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옥수수술을 파는 가게 사장님은 형이 오기만 하면 서비스를 이것저것 내오시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살갑게 물으셨다.



그런 것들이 참 부러웠다. 이 사람 저 사람 넉살 좋게 지내고, 툭 던지는 농담 한 마디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일. 상대방의 기억에 자신을 부지불식간에 인식시켜 기억하게 만드는 일. 그런 능력을 가진 형들을 좋아했고, 그 모습들을 닮고 싶더랬다.






그 맥주집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다. 체대 회장이었던 또 다른 형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대규모의 손님과 풍족한 매출을 짊어지고 그 가게에 찾아갔다. 더불어 학생답지 않은 넉살이 사장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으리라. 회장이 끝나고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선, 봉구니 몽구니 라이트 비어가 급물살을 타던 때에도 형은 항상 값 비싼 세계 맥주만을 고집했다. 바뀌어가는 트랜드에 손님이 점차 떨어져 가도 형은 항상 앉던 자리를 지켜왔다.



고맙게도 그런 곳에 나를 데려가 주었고, 친히 사장님께 가장 좋아하는 동생이라며 소개해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장님은 젊고 훤칠했으며, 학교 선배이기까지 했다. 형을 좋아하셨던 덕인지 처음 보는 후배에게도 어색함 없이 여러 마디를 건네셨고, 그게 또 괜히 그렇게 감사했더라. 또렷이는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 갔던 그 날, 오늘 장사는 그만해도 된다며 가게 문을 닫고 자신도 합석해선 같이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렇게 새벽까지 형과 수십 병의 맥주를 마셨고, 사장님은 해장을 시켜주신다며 국밥집에 데려갔다. 맥주로 취한 것이 참 간만이라 뜨뜻한 국밥 국물 한 수저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얼토당토않게 해장하러 간 곳에서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선, 더 얼큰하게 취해서는 별 이야기를 다했다. 남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기다림을 하던 시절이었고, 형은 안타까움 반 농담 반으로 이를 흉잡았다. 나름의 논리대로 그 바보 같은 일이 그때의 나에겐 괜찮은 일 임을 술김을 빌어 역설했다. 실은 스스로에게 하는 합리화였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홀로 맨정신이었던 사장님은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단다. 젊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 바보 같은 모습이 참 괜찮아 보였더랬다.



시답잖은 이야기들과 함께 국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고 그 어두운 새벽에 한강을 찾았다. 아무도 없고 짙은 어둠만 깔려 있는 한강은 처음이었다. 웃고 떠드는 소리로 낮에는 잘 들리지 않던 물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특별히 할 것 없이 한강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을 마신 것도 몇 번 되지 않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좋았던 탓에 조금 들떠있었나. 다음에도 꼭 이렇게 같이 오자고, 그때는 농구공도 하나 들고 와서 한 게임 하자며 떠들었다. 가로등을 찾아 종종거리다, 어두워 잘 나오지 않는 사진으로 그 시간의 즐거움을 남겼다.



그냥 지나가려다 가게가 이뻐 카메라를 들이대니 눈웃음을 보내며 들어오라 손짓해줬다. CORDONNERIE는 카페 이름이 아니라 '구둣방'




원래 구둣방이었던 곳인데 페인팅을 그대로 뒀다나




이런저런 삶의 이유로 신촌 자체를 찾는 일이 적어졌고, 자연스레 사장님을 뵙는 일도 줄어들었다. 최근에서야 조금 여유를 찾았고, 문득 생각이 나 가게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찾아간 가게에서 사장님은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벌겋게 취해계셨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내가 지금 너무 취해가지고, 얼굴 빨갛지? 너무 반갑다 야.
형이 사실 가게는 올해까지만 하기로 했어.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좀 마셨다.
오늘은 형이 다 사는 거니까 친구랑 먹고 싶은 만큼 다 마셔, 아냐아냐 진짜야. 알겠지? 부담 갖지 말고"



사장님이 너무 취한 탓에 정말 기분이 좋아 웃으시는 건지, 슬퍼하시는 건지 가늠이 되질 않았고 자꾸만 다 산다시는 말씀이 부담되어 한 두 병만 비우고는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 일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혼자 가게를 찾았다. 사장님은 저번 날 너무나 미안했다며, 너한테도 미안하고 같이 온 친구한테도 너무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혹시 자기가 실수한 건 없냐며 사과를 거듭했지만, 덕분에 돈도 안 내고 맥주만 잘 마시고 갔다고 안심시켜드렸다. 



"오늘은 형이랑 그냥 맥주 한잔 하러 왔어요.
평소에 오면 항상 같이 온 친구들 때문에 둘이서는 처음 봤을 때처럼 충분히 이야기도 못했잖아요.
그래서 온 거니까 형 괜찮으면 같이 맥주나 한 잔 해요."



매출이 점점 줄어든 지는 꽤 되었고, 결정적으로 얼마 전 있었던 학교 축제날 단체 학생 손님들이 한 팀도 없었더랬다. 장사를 떠나 이제는 학생들에게 완전히 버려졌고 잊혀졌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혼자 너무 힘들었고, 하필 친구와 함께 찾았던 그 날 속상함에 술을 잔뜩 마시고 가게에 나온 거라 하셨다. 올해까지만 하고 정리하는 걸로 결정했다고, 그 전까지 올 수 있을 때 자주 오라며 아쉬움이 잔뜩 섞인 말을 하곤 맥주를 들이키셨다.



가게가 없어진다는 게 사실이라는 걸 명확하게 확인하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잔뜩 들어 가게를 찬찬히 둘러봤다. 항상 카운터 앞에만 앉아 있어 몰랐는데 가게는 생각보다 꽤 넓었고 지하지만 복층이어서 공간 활용도도 꽤 좋아 보였다. 조금 주제넘지만 사장님께 가게를 조금 바꿔보면 어떻겠냐며, 요즘 신촌에 버스킹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여기에 무대를 만들고 테이블은 다 소파로 바꾸고, 누구든 가볍게 찾는 공간으로 만들면 괜찮을 거라며 설교질을 해댔다. 가만히 듣던 사장님은 네 말도 다 일리가 있지만, 자기도 다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라며 더 이상의 주제넘은 훈계를 일축했다. 그러고선 맥주 한 잔을 들이키고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장사를 처음 준비하던 때, 자신의 가게가 생긴 게 너무나도 기뻐 공사가 한참 남은 가게를 매일 들렀다 했다. 공사하시는 분들을 도와 이것저것 정리를 했고, 부담스러우니 오지 말라는 인부 아저씨들의 말에도 거듭 찾아와서는 하나하나 꼼꼼히 챙겼단다. 그 이전의 가게 주인이 관리를 못해 세 군데서 물이 샜고, 그걸 찾아내고 막느라 꽤나 고생했다고, 지하에서 나는 특유의 퀘퀘한 냄새를 안 나게 하려고 환기랑 에어컨도 정말 아끼지 않고 펑펑 튼다고, 가게가 잘 될 때는 본사에서 다른 가게 업주들에게 벤치마킹하러 갔다 와보라고 추천까지 했다고 각종 무용담이 끊이질 않았다.



누구보다 속상한 건 사장님일 테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감히 같잖은 지식으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이래라저래라 할 군번이 아니었다. 성공하겠다는 포부와 자신감, 6년여간의 사장님의 젊음이 잔뜩 서려 있는 곳일 텐데, 이제 다 그만둔다 생각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미련과 번복이 있었을까.


 일 년에 한두 번 오는 손님으로서는 감히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 그저 같이 아쉬워할 뿐.



새로 생긴 가게 앞에 서서 '여기 원래 뭐가 있었더라' 하곤 했는데,

이 곳만큼은 정확하게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마음먹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평소와 똑같았을 맥주에 짙은 아쉬움이 섞여 들었고,

자정이 되었음에도 엉덩이를 떼기가 쉽지 않았다.



Boot Cafe. 아직 가게에 붙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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