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홀로 나와 산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무슨 용기로 이국만리에서 살아보겠다고 기를 썼나.
첫째는 영어요, 둘째는 경험이었는데.
첫째는 자꾸 같은 민족과만 어울리는 게 편해 버릇하니 나가리요,
둘째는 골방에 박혀 키보드 두드리는 걸 좋아하니 이 또한 실패요,
결국은 파국인가.
그래도 남들 하는 만큼 못하면 열등감에 치를 떠는 성향이라 적당히는 해보려 애를 썼다.
이를테면, 같은 민족이 굳이 안 간다는 웰컴 파티에 용감하게 혼자 간다거나
스페인 룸메이트의 자질구레하고 귀찮은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본다거나 하는 일들로.
분명 오기 전 스스로 그렸던 이 곳에서의 나의 모습은 새벽까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웃음을 자아내며, 갈수록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꽤 멋진 대학생이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동생들은 골방에 틀어박힌 할아버지라 놀려댔고, 자신들이 놀러 나가는 날이면 억지로 억지로 나를 끌어당겨 데려가곤 했다. 그 재촉들이 말과는 달리 실은 굉장히 고마웠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가장 편한 방법은 매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통성명을 하고 클럽에 따라가 친분을 쌓는 것. 다만,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새로 만난 이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나간다는 건 또 하나의 난제였다. 인생 모토 중의 하나가 효율성인 탓에 진심으로 궁금하거나 필요하다 생각되는 이야기가 아니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 다반사. 할 말이 수두룩 쌓여 있다 해도 그걸 어떻게 영어로 할지 한 번 더 뇌를 거쳐야 하는데, 애초에 영어로 바꿀 말이 남아 있지 않았으니.
조금은 귀찮지만 더 좋은 방법이 같이 밥을 먹는 일. 한국에서와 달리 이 곳에서 "같이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의 무게는 상당히 무거워 조심해야 했다. 한 번 초대가 성사되면 같은 나라 친구들은 당연히 모두 그 식사자리에 참석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초대를 받은 쪽은 받은 대로, 초대를 한쪽은 한 대로 부담감을 한 아름 지고 각자의 요리를 준비했다.
누군가를 초대했음을 공표하면 모두가 그 날의 일정은 비우고, 본격적으로 메뉴 선정과 역할 분담을 해나갔다. 초대받은 이들의 종교나 성향 등으로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 파악했고, 만들어 주고 싶은 요리와 현실 사이의 타협점을 찾아 메뉴를 결정했다. 다행히 어린 시절 요리하는 엄마 곁을 항상 맴돈 덕에 눈대중으로 간은 맞출 수 있어 요리를 전담했고, 가장 어려운 역할인 "대화 이어나가기"는 동생들에게 전가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지만 대부분 맛있게들 먹어주었고, Great Chef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술이 없고 음악이 없어 조금은 덜 신났지만, 덕분에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고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었다. 요리를 해주어 고맙다며 준비해온 디저트는 고마웠고 그 맛 마저 훌륭했다. '친해졌다'라는 생각은 그렇게 밥 한 끼를 같이 먹어야 할 수 있는 말 같았다. 그렇게 한창 다들 같이 밥 먹는 일에 흠뻑 빠져선, 다음에는 누굴 초대할지 어떤 음식을 할지 고민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친구가 되고, 그 친구와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그렇게 즐거운 일이었다.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들로 그 즐거운 일들에 갈수록 소홀해지는 게 새삼 안타까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