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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비니 Apr 01. 2019

:: 영화 바이스

개인은 교활하고 대중은 무지하다






브런치무비패스를 통해 작성된 리뷰입니다




희극과 비극의 경계, 딕 체니

영화 바이스Vice는 술에 찌들어 살던 예일대 퇴학생 딕 체니가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의 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바이스에서는 총 두 번의 크레딧이 등장하는데, 딕 체니의 첫 번째 정계 은퇴와 두 번째 정계 은퇴를 기점으로 영화는 분절된다. 딕 체니는 정신 좀 차리라는 아내 린 체니의 마지막 경고에 회생(?)하고, 대학에 다시 입학, 인턴으로서 백악관에 입성한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정계의 구도를 알게 된 딕 체니는 활발하게 정치적 야망을 펼치기 시작한다. 선거를 앞두고 딕은 그의 딸이 동성애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더 컸다. 그는 자신의 정치 권력 때문에 가족이 상처 입기를 원하지 않았다. 별다른 고민 없이 쿨하게 가족의 행복을 택한 그는 조용히 정계에서 물러난 뒤 석유 회사 핼리버튼의 사장이 되어 행복한 가족생활을 꾸려나간다.



푸르른 자연, 화목한 대화, 끊이지 않는 웃음, 맛있는 저녁. 첫 번째 엔딩 크레딧은 화목하고 명랑한 미국 전원생활의 이미지와 함께 올라간다. 하지만 이 화면은 곧 조지 부시의 러닝메이트를 제안받은 딕 체니의 모습으로 이동한다. 부통령이 되어 정계에 복귀한 그는 천천히 자신의 결정권을 확대하기 시작한다. 저녁 메뉴를 고르듯 쉽게,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듯 입맛을 다시며 법을 통과시킨다. 미국인들의 전화, 문자, 이메일까지 도청할 수 있는 애국법은 물론, 군 통수권, 내각 구성권 등의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모두 손에 넣었다. 나아가서는 고문까지도 합법화한다. 911테러로 인해 불안한 대중들 앞에서 대책 회의를 마련하기는커녕 조작된 미디어와 근거 없는 선동으로 이라크를 침공하고 최악의 테러 집단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일조한다.




[명사]  1. (섹스·마약이 관련된) 범죄   2. 악; 악덕 행위, 비행  
[전치사] …대신에, …의 대리로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대중들은 테러의 현장에서, 전쟁의 현장에서, 일터와 학교 곳곳에서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되는 대상을 알려고 하지도, 그 대상을 향해 분노하지도, 의심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자신들도 모르게 잃어버린 자유와 민주의 영역이 갉아 먹히고 있는 것도 모르고, TV와 라디오 전파를 통해 들려오는 또렷한 음성만을 철석같이 믿으며. 모두 '새벽 여명 사이로 그토록 그들이 자랑스럽게 환호하던미국 국가(The Star-Spangled Banner)의 1절 가사'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합법적인 절차로 국민이 뽑은 나라의 일꾼이, 그 권력의 총구를 아주 쉬운 방법으로 여기저기에 겨눈다. 이렇게 영화Vice는 국가의 원수를 대신해야 할vice 부통령vice의 전례 없는 조용한 악함vice을 낱낱이 고발한다.




픽션과 팩트 사이, 바이스Vice

영화의 장르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오가고, 실제 장면들을 삽입하여 픽션과 사실의 경계를 허문다. 거대한 서사, 사실적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의적이고 또 풍자적이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졌던 비극의 모습이 올랐고, 지금 여기 밀접한 곳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모든 역사에서 권력을 쥔 개인은 언제나 교활했고 대중은 무지했다. 누군가 공을 쏘아 올려야만 작은 비밀이 풀렸고, 그마저도 여전히 철옹성처럼 단단하고 두꺼웠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난 뒤에서야 개인의 교활함은 드러난다. (딕 체니는 여전히 아직도 알려진 것이 많이 없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고 있노라면, 이 어두컴컴한 영화관 속에서 이뤄지는 대화와 웃음 역시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많이 보고 겪었다고 해서, 대중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 모든 웃음과 판단과 소름 돋는 불안함이 과연 '개인적인 판단'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대중'이기에 여전히 무지하게 반응하는 짧은 시각일까. 나도 모르게 조금씩 갉아먹혔을 자유의 영역과 민주주의의 세계가 떠올라 나는 얼굴을 없는 대상을 향해 의심을 던졌고, 그래서 또 금세 거북해졌다. 역사 속에서 모든 이들은 권력을 지닌 개인이 아닐 때, 언제나 여전히 무지하고 무능한 대중이였다.



영화의 진짜 마지막 크레딧이자 두 번째 크레딧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을 칭송하는 노래와 함께 흘러간다. 영화 내내 보여줬던 거대한 폭력과 선동의 비극이 명랑한 음악 사이로 시끄럽게 묻혀간다. 아무리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이렇게나 거대하고 은밀한 간극이 숨겨져 있다면, 지금 여기 이곳의 개인과 대중은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노래 끝에 어떤 화면이 펼쳐질지를 상상해보다가, 그만 울컥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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