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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쏭쏭 Aug 02. 2021

전세난민 경험기

닭장 속에 살고 싶진 않아

전세 계약 만기일 두 달 전.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연장 의지가 없음을 알려왔다. 딸아이가 졸업을 앞두고 있어 내가 사는 곳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애초에 나도 5평짜리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 투룸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1% 정도는 있었기 때문에 반발 없이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총 두 번의 전세계약을 해봤다. 마냥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문제는 지금이 전세난이라는 점. 그리고 전세난은 기사 속에만 존재하는 거짓부렁이가 아니라 실제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2월 말 입주를 목표로 두 달 전부터 전세 매물을 열심히 찾았다. 투룸 전세 2억 중후 반대 매물이 목표였다. 동생이랑 같이 살기 위해서다. 위치는 당산, 영등포구청, 선유도역 근처로 찾았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왜 전세난이라고 하는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우선 투룸 전세 매물 자체가 너무 적었다. 한 부동산 중개업자 분의 말에 따르면 실거주를 의무화하다 보니 전세가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했다. 매물이 드디어 나왔다 싶으면 위치가 너무 위험했고, 그게 아니라면 말만 투룸이지 크기가 너무 작았다. 2억 중후 반대에 어두운 골목이 아니고 상태가 멀쩡하다 싶으면 1.5룸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분과 매물을 보는 사이에 1) 어두운 골목에 위치하지 않았고 2) 크기가 작지 않은 투룸이 방금 나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나에게 매우 운이 좋다며 매물을 바로 보러 가자고 했다. 후다닥 가서 살펴본 뒤 계약을 하려고 부동산에 들어갔더니, 1분 전에 어떤 사람이 집 컨디션을 직접 보지도 않고 계약금을 걸어놨다는 비보를 접했다.


또 다른 매물은 집 상태를 확인하고자 현재 세입자와 약속을 잡았더니, 부동산에서 그 매물을 보려는 사람이 여러 명이라 미리 와서 줄을 서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반차를 내고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가서 줄을 섰다. 계약을 원하는 사람은 3명.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매물을 뺏겼다.


그렇게 2억 후반대 투룸 매물은 전멸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금을 올렸다. 3억대 투룸까지 매물을 살펴봤다. 남아있는 매물이 신축뿐이었는데 모조리 3억 중반 대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요즘 신축들은 집이 너무너무 작게 나온다. 2년 전에 원룸 알아볼 때도 그나마 2018년 준공이 주로 5평짜리가 많았고, 신축들은 심지어 4평짜리로 짓길래 경악을 했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투룸도 10평짜리를 쪼개고 쪼개서 만든 투룸이었다. 이 가격에 이 크기는 진짜 아닌 거 같다고 생각했다. 목표지역을 공덕역 쪽으로 틀어봤다.


공덕역 쪽은 당연히 매물이 더욱 귀했다. 공덕역 근방 부동산 10여 곳을 직접 돌았다. 모두 그나마 있던 매물도 이미 계약이 다 끝났다고 한다. 한 공덕역 근방 부동산 중개업자 분이 아현동 매물은 어떠냐며 소개해줬다. 한창 재개발 중이라 신축 오피스텔 매물이 많았다. 여기저기 치이고 거절당한 경험이 쌓이고 쌓였던 나는 우선 급하게 계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는 재개발 구역에서 집주인 대신 몸빵을 하는 전세 세입자가 됐다. 매일 아침 공사 소리에 눈을 뜬다.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업무차 전화를 할 때면 창문을 급히 닫는다. 공사 소리는 퇴근 시간이 돼야 멈추기 때문이다. 달고 살던 비염은 더 심해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코가 막혀있다.


또 하나. 1억 원이란 빚이 생겼다. 절반은 회사에서, 절반은 은행에서 빌렸다. 충분히 돈을 모아서 전세를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2억 원으로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 대출은 월급에서 까이는 방식이라 매월 월급은 거의 없다시피 들어온다.


최근 정부는 집값 거품 붕괴를 경고했다. 지금 시점에서 집값 하락론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집값 거품이 사라진다면 2년 뒤 내 전셋값은 다 돌려받을 수 있는 걸까 하는 불안감도 생긴다. 나도 전세를 직접 구해보고 나서야 부동산 시장이 2년 전과는 또 달라졌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근로소득으로 적어도 집 한 채는 장만할 수 있었던 시대를 살던 분들이 평범한 청년의 비애를 진정으로 알까.


아무리 집이 귀하디 귀하다 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크기의 집을 원한다. 출퇴근에만 4시간을 쓰면서 청춘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게 살고자 지금까지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노력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세상이 아니란 걸 아는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닭장 속이 아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마음까지 접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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