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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Mar 31. 2022

바람이 나를 감쌀 때

행담교 - 세 번째 과제 <문득 떠오르면 기분 좋아지는 장면>

  나는 내가 유난히도 감상적인 아이라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알았다. 엄마가 어려서부터 나를 ‘괴짜’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 집안에서 나를 괴상하고 독특한 아이로 몰아갔다. 엄마의 성향을 많이 물려받은 나머지 삼형제와 엄마 사이에서 자라며 인종차별이 어떤 건지 대충 알 것도 같았고, 나는 나를 많이 미워하고 내가 미움 받는 이유는 내 탓이라고 굳게 믿는 어른이 되었다. 왜냐하면 난 엄마와 형제들을 정말 좋아했고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역시 이상한 건 나겠지, 하는 꽤 합리적인 이유였다.


  새로 입사한 회사는 최근 퇴사자가 늘어 직원이 신입사원으로 한창 물갈이되고 있었다. 때문에 거의 매주 한 명 이상 면접이 있었는데 팀장은 그 중 한 사람이 독특한 인상이라고 설명했다. 그 얘기를 나중에 같이 점심 먹는 사람들과 나누었는데 여자 대리가 “난 독특한 사람은 싫어!” 하고 정색을 했다. 왜인지 그 말에 상처 받은 것은 나였다. 속으로는 ‘아무 사람이건 싫은 마음부터 먹는 사람이 난 더 싫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몇 달 뒤에는 대리가 나부터 싫어하게 될까 걱정이 들었다.


  나의 독특함에 대해 언니는 이렇게 설명했다. “너는 가끔 자기 세계에 너무 깊이 빠져. 자기가 특별한 줄 아는 것 같고 그게 보기에 좀 거북하지.” 그리고 언니 말이 사실이라서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난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고심되었다. 좀 무난하고 평범했으면 하고 말이다.


  언니가 나의 이런 면을 특히 싫어했고 싫은 표현을 일상처럼 해댔기 때문에 심지어는 나조차 동족 혐오를 하듯 독특하게 구는 사람을 벌레 보듯 보게 되었다. 그러나 끼리끼리는 통하기 마련이라 진정 우러나오는 혐오는 아니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나는 내 기질을 인정하고 각기 다양한 모양을 한 사람들도 그대로 보려고 애쓰고 있다. 독특한 인상이라던 면접자는 몇 주 전 입사하여 팀원들과 적당히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독특한’ 부류이긴 해도 팀원에 대한 배려심이 있고 일을 배우는 자세가 깍듯했다. 사실 ‘독특하다’는 그 말이 아무 때고 성의 없이 쓰이기도 한다. 그 사람의 어설픈 모습을 보았을 때, 서투른 모습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았을 때 느끼는 어색함을 쉬운 말로 ‘독특하고 이상하다’ 해버린다.


  시간을 거슬러 19살, 고등학교 3학년 1반으로 배정 받은 새로운 친구들과 첫 인사를 나누던 때로 돌아간다. 동글납작한 얼굴에 순한 인상을 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를 소개한다.


  “얘들아, 만나서 반가워. 나는 너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수정처럼 맑고 순수한 동심이 있다는 걸 잘 알아. 그 마음이 변치 말길 바라고 한 해 동안 수험생활로 지치고 힘들겠지만 함께 잘 지내길 바라.”


  교실이 약간 술렁인다. 흔하지 않은 인사말에 동요되어 누군가는 비웃듯 실소를 터뜨린다. 나는 벌써 삐죽하게 동족혐오가 올라온다. 한 학기는 그 애와 친해지기 싫어서 피해 다녔다. 그러다 2학기 즈음 자리 뽑기로 그 애와 앞뒤로 앉게 되고 그 애의 독특하고도 순수한 면을 알게 되었다.


  내가 미워질 때마다, 또 나 같은 동족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 친구와 함께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학교 앞동산에서의 날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쐬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매일같이 나누었다. 내 독특한 발상과 기질이 그 애 앞에선 무색한 것이 되었다. 그저 평범한 수다쟁이일 뿐이었다.


  평범한 척 무표정한 얼굴로 수많은 사람을 지나치며 걷다가도 그 애의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때때로 들려오는 것 같다. ‘수진아,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것 같던 그 맑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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