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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Aug 09. 2023

작은 창

“마음이란 거 너무 거추장스럽지 않아? 마음은 너무 온전히 내 것이라서 오로지 내 안에만 있잖아. 네 마음은 네 안에만, 내 마음은 내 안에만. 이것들은 서로를 느끼고 보는 감각은 없어. 우리 통각이 물리적 통증을 감지하듯이 우리 마음은 영혼의 통증을 감지해. 사실 물리적 통증도 거추장스러운 면이 있다고 봐. 어차피 죽을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면 안 아픈 게 낫잖아. 영혼이 찢길 정도로 마음이 아프게 되면 그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어. 죽지도 않고 그저 끙끙 앓기만 해야 해. 물론 마음의 상처도 너무 크면 결국 몸이 아파오기도 한대. 나도 그랬어. 언제는 화가 나서 온몸이 부숴져라 떨리고 그 떨림이 어떻게 해도 가시지 않은 적이 있었어. 얼마나 떨리는지 호흡을 수십 번 가다듬어도 가라앉지가 않는 거야.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 그러더니 그날 밤새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으로 근육통에 시달렸어. 몸 속 근육이 다 쥐가 난 것 같았어. 왜 그렇게나 화가 나고 화를 냈는지, 그런 쓸모없는 시간을 만드는 게 다 마음 때문이야. 마음이란 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느끼고 이해하고 반응해버리니까,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그런 일을 벌이니까. 마음이란 게 참 지독한 놈이야. 거의 나의 왕인 셈이지.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마음이 나를 완전히 지배해버려. 정신을 잃게 하고 이성을 집어 던져버리게 해. 마음에게 휘둘릴 때 특히 어리석은 짓을 많이 벌였어. 좀 더 현실을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지 못했어. 참을 수 있든 없든 참았어야 할 일을 참지 못했고, 이겨낼 수 있든 없든 이겨냈어야 할 일에서 도피했어. 마음은 주로 쉽고 약하고 병든 것을 좋아해서 거기에 이끌리면 끝은 항상 좋지도, 옳지도 않은 결말을 보게 했어. 마음을 이겨내라는 거, 쉬운 일 아니니까 그러라고 하는 말이야. 마음은 쉬운 걸 좋아하지. 쉽고 편하고 빠른 걸 좋아해. 그리고 쉽고 편하고 빠른 것 중에는 거의 그렇듯이 건강하지 못한 것들뿐이 없어. 우리는 요즘 상대를 위한답시고 네 마음 편할대로 하라고 말하지. 아니, 어쩌면 상대라기보다 우리의 관계를 위한 거지. 그러니까 그런 의견은 정말로 네 마음 편할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야. ‘나는 네가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우리 관계를 위해서 함부로 내 의견을 말하지 않을게.’ 그런 뜻이야. 선택은 언제나 네 몫이라는 말이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 같은 걸 우리 모두 달고 살아서 그래. 우리는 오로지 내 안쪽만 보이는 마음을 달고 살아서 상처를 받는 이유도 각자의 입장에 갇혀버렸기 때문이거든.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 누가 뭐라하든 깊이 생각하지는 말아. 왜냐하면 그 사람도 자기 마음만 느끼고 볼 수 있는 사람이야. 상대의 마음을 볼 수는 없어. 우리가 자기 마음만 느낀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야. 우린 존재 자체가 흉기야. 언제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니까. 더 무서운 건 자기가 받은 상처만 느끼고 안다는 거야. 상대의 것을 느끼지 못해. 그래서 상대를 불신하게 되고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려고 해. 그렇게 해도 상대가 받는 상처를 느끼지 못하니까. 아무리 크게 상처를 주려고 해도 느껴지지 않아서 속이 시원하지가 않아. 정말 심한 말을 해도 상대가 어떤 절망감일지, 어떤 모멸감에 빠졌을지 사실 죽어도 몰라.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건 마음이 아닌 이성으로 하는 거거든. 마음으로는 절대 불가야. 이성과 지성으로 하는 거지. 물론 내게도 감성이 있으니까 상대의 감정을 예상하거나 예측할 수는 있지. 유추할 수 있고. 이 과정은 이성과 지성을 발휘해야 해서 꽤 소모적인 일이야. 그런데 때로 나를 소모하지 않고도 상대에게 이입하고 동감할 때가 있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래. 내 안쪽만 볼 수 있던 마음이 이제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상대의 마음을 쫓게 돼. 그 사람의 말, 행동, 눈빛, 말투, 감정, 사연, 그 모든 것에 동화되고 동요하게 돼. 그걸 바로 교감이라고 해. 교감은 정말 입체적이지. 아주 풍부한 감성을 일으켜. 교감을 나눈 사이는 쉽게 잊히지가 않을 거야. 서로를 신경 쓰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경험을 평생 한 번 할까 말까 할 거야. 그때 잠시간 마음에 창이 뚫리고 저 너머를 본 듯해. 무언가 푸른 세상이 넘실거리고 있었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지. 그때 그 창이 여전히 작게 열려 있어. 두리번거리면서. 빨간 우체통에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이 담겨 오길 기다리면서. 이 거추장스럽고 변덕스럽고 끝은 반드시 나쁜 데로 몰아넣는 마음 때문에, 난 아무 대책도 없어! 창밖으로 소리도 못 지르면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거 있지.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다는 건 마음에게 휘둘리고 있는 걸까 그래도 이성을 붙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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