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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색 Oct 14. 2023

잠긴 방문을 열었을 때

방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바닥은 마지막으로 잠기기 전 푸- 하고 크게 숨을 내뱉고 들이마셨다. 물은 천천히 자라나는 새싹처럼 바닥에서부터 벽을 타고 틈틈이 차올라 벽지를 녹였다. 물에 풀어진 벽지가 허옇게 둥둥 떠서 수면을 덮었다. 문을 열자 축축하고 적막한 광경이었다. 열린 문으로 차오른 물이 빠져나가며 계단을 따라 흘러내렸다. 계단은 지하로 이어졌고 흘러내리는 물은 거침없이 쏟아졌다. 아연하게 서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추억은 인내하고 감수한 사람이 갖는 거라고,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녹색병원에서 방명록 앞에 앉은 작은아빠를 보면서, 침울하게 탈의실에 누워있는 유석이를 보면서, 어깨를 굽히고 손님을 맞는 효정이를 보면서, 반듯한 검은 상복을 입고 제 할 일을 하는 휘석이를 보면서, 국화꽃 앞에 놓인 고운 할머니 얼굴을 보면서 잠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손님의 대부분이 가족 친지들이었다. 그리고 거의 십여 년 만에 모인 친척들과 종일 이틀을 함께 지냈다. 그 시간들이 길면서도 그리 길지 않았다. 만나지 못한 세월이 훨씬 길었기에. 그만큼 사이도 서먹했고 서로의 근황도 주섬주섬 전해들은 것이 다였다. 무슨 일을 하고 어디서 사는지를 서로 물으면 더 할 얘깃거리를 찾아 요즘 하는 주제를 끄집어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간 연락을 끊고 지내는 걸 잠수라고 한다. 물 속에서는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림을 그려본다. 우리가 다 잠수복을 입고 그대로 풍덩, 해저 깊은 데로 몸을 빠트린다. 빛이 들지 않는 심해까지 가라앉아서 주변은 어둡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 깊은 물속은 미동도 없고 시간도 죽은듯하다. 수면 밖 세상이 수천 만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못한 걸 후회하는 동안, 소원해진 여러 관계를 돌아보는 동안 당장은 감수하기 싫어 미뤘던 일들이 끝내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결국 언젠가 결국을 보게 되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죽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이별하게도 되겠지만 남는 것과 남기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집을 비운 사이 화장실 변기 호스가 빠져 종일 물이 샜다. 떨어진 두루마리 휴지가 수챗구멍을 막아 물은 화장실을 채우고도 넘쳐 흘러 거실과 큰 방까지 침범했다. 거실에 깐 카펫, 앉은뱅이 책상, 좌식 소파, 선물 받은 방석, 잠자리에 깐 매트리스가 몽땅 물을 빨아먹고도 남은 물은 바닥을 적시고 내려가 아랫집 천장으로 또 떨어졌다. 할머니를 잃고 그날의 소동이 떠올랐다. 우리가 없는 사이 벌어진 그 큰 사단이 또다시 비슷하게 벌어진 것 같았다. 고요히 바닥에 물을 머금고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그 집처럼, 이번 일은 더욱 손쓸 수 없이, 돌이킬 수 없는 일로 벌어졌다.

지애와 급히 연차를 내고 밤새 근처 빨래방으로 빨래를 나르고 건조기에 돌리고 아예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은 대형폐기물봉투에 꾸역꾸역 담아 버리며, 또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고, 아랫집의 피해 상태를 알아보고, 바닥의 물을 화장실에 쏟아버리고 걸레로 닦아내고 한여름 더위에도 보일러를 틀고 공기청정기를 밤새 작동시켰다. 돌아올 요석이를 위해 남겨둔 작은방은 다행스럽게도 물이 들어오지 않아 거기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소식을 듣고 집주인과 부동산 아저씨가 밤중에도 멀리서 찾아와 상태를 확인해주고 다음날 바로 업자를 불러주었다. 원인은 변기 물통을 어설프게 설치한 탓이었다.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고 기사 아저씨가 말했다. ‘언젠가 일어날 일.’ 엄마도 도움을 주려고 아침부터 자취방으로 찾아왔지만 모든 사태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고 일단락되어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집주인에게 적당히 피해보상을 받고 물값도 반반을 하자고 했지만 그건 관두었다. 덕분에 서울에 놀러 온 엄마와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경건회도 하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미 손쓸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고요함을 고요함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굳게 다물린 할머니 입술에는 어울리지 않는 빨간 칠이 얇게 그려져 있었다. 아빠는 할머니 얼굴이 무척 평온해 보이지 않았느냐고 여러 번 말했다. 내 눈에는 그렇지 않아서 그냥 조용히 있었다. 그 얼굴은 일부러 지을 수 있는 표정도 아니고 자연히 나타나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 상태가 되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얼굴과 같았다. 그것은 표정이 아니었다. 표정은 내가 짓는 것인데 그 얼굴은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할머니를 가운데 두고 한 사람씩 차례로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 할 때는 더욱 참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이 슬픔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인데, 마지막 할 말은 이제 전할 수 없는 것인데, 저 얼굴을 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참아내기 힘든 것을 참아내야 하고 감수해야 함을 배웠기에 용기 내어 베옷에 싸인 할머니 손 위에 사뿐 손을 올리고 할머니의 보라색 귀에 한 마디를 건넸다. “할머니, 그동안 감사했어요.”


물에 잠긴 집을 바라보며 아연했던 그날 밤처럼 죽음이란 깊고 무섭고 심오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닥치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의 허망함은 그보다 더 아득한 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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