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터스>를 보고 나서 쓰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트위스터스>가 8월 14일 개봉했다. 모처럼 더위를 식히는 시원한 스펙터클과 생각거리까지 얻게 되는 잘 만든 영화였다. 한 번만 보기 아쉬워 특성이 다른 상영관에서 두 번을 봤다.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돌아오는데 집 근처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늦은 저녁 시간인데 무슨 일일까... 차를 타고 느리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멀리서 사이렌 불빛들이 번쩍거렸다.
다가가보니 양쪽 도로를 가득 채운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대형 화재가 난 모양이었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 쪽으로 더 다가가니 매캐한 냄새가 덮쳐왔다. 차량 통행은 아예 차단되어 있고 인파가 가득했다. 그쪽이 발화지인 모양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를 돌리면서 바라보니 내가 사는 건물 건너편의 호텔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급히 검색을 해보니 이미 속보가 떠 있었다. 8층에서 난 호텔 화재로 4명이 심정지 상태로 이송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잠시 주차할 곳을 찾아 주변을 도는데 이미 도로에도 차량이 가득 주차 중이었다. 민간 차량에서 헐레벌떡 삼삼오오 내리는 사람들이 소방복을 꺼내 들고뛰는 모습을 보았다. 퇴근한 소방관들도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화재로 7명이 결국 사망했다. 불은 비어있는 방의 에어컨 누전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건물이었고 불은 가연성 자재들을 연료 삼아 거세게 타오르며 일산화탄소를 내뿜었다. 그 연기가 사람들의 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 호텔 바로 뒤가 영화의 거리이고 그 옆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메인 스테이지다. 영화제 때문에 이 호텔에 사람이 가득했던 한 달여 전 불이 났다면...? 이 참사가 어느 정도 규모로 커졌을지 아찔하다.
지금도 집을 나설 때마다 검게 그을린 그 호텔 건물과 노란 폴리스 라인을 본다. 안타까운 재난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불가해한 것들
‘화마’나 ‘수마’라는 말이 보여주듯 불이나 물, 바람 등 자연재해는 곧잘 어떤 악마적 인격에 비유된다. 범죄자들만큼이나 강력한 에너지로 평범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기에 자연스레 비슷한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난과 범죄는 다르다. 재난은 인격도 없고 악의도 없다. 그저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자연과 인간 사이 균형이 깨진 틈을 파고 들어올 뿐이다.
인간은 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불을 다뤄온지가 백만 년이 지났지만 전기차가 일으키는 불은 여전히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물이나 소화기로 쉽게 통제되지 않는 전혀 다른 불이기 때문이다. 부천 호텔 810호에서도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에어컨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졌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 영화 <트위스터스>가 다루는 토네이도도 그렇다.
영화 대사처럼 토네이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변수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들이 모여 일어난다. 토네이도가 눈앞에서 보이더라도 그 규모조차 특정할 수 없다. 전부 끝나고 난 후,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지고 난 후에, 인간은 뒤늦게 그 휩쓸린 자리를 더듬으며 규모를 셈할 뿐이다.
<트위스터스>의 주인공 케이트는 토네이도를 약화시키는 대학 연구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가장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다. 그러고 나서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모니터 속에서의 토네이도를 관찰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사건에서 또 다른 생존자였던 친구 하비가 찾아온다. 그는 토네이도를 보다 정교하게 파악할 새로운 기술을 확보했다며 토네이도가 잦은 오클라호마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아직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케이트는 하비의 제안을 거절하고 돌아선다.
케이트가 돌아서는 등 뒤에 하비가 말한다. 왜 우리만 살아남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부천의 호텔에서도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었다. 재난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 어떤 인간은 재난의 현장에서 죽고 어떤 인간은 생존하는지 역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그런 불행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최선의 이야기가 고작 ‘신의 뜻’이다. 신만이 알고 있다는 말은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허무한 질문을 케이트에게 던지는 하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다른 인물의 대사에서 하비의 마음을 가늠해볼 수 있는 단서를 얻었다.
토네이도를 쫓는 것을 업으로 삼는 ‘스톰 체이서’ 타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걸 평생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고.
타일러 역을 맡은 배우 글렌 파웰이 직접 썼다는 이 대사가 좋았다. 어떤 자연 현상이 재난이 되기 전에 그걸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악의를 가진 괴물로 여기고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한 그것과 인간이 같이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인간은 자연 현상들과 보다 온건한 형태로 공존할 방법을 찾아낼수 있게 된다.
'신의 뜻'을
넘어설 수 있을까?
죽음의 현장에서 간신히 벗어나고도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해체하고 이해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자 애쓰는, 이런 순수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이 영화가 내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트위스터스>에서 토네이도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가 헐값에 부동산을 사들이는 업자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도 많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최소한의 인간적 상식까지 저버리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 삶에 찾아오는 한 번의 불행을 화인 같은 영원한 피해로 증폭시킨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숙박시설을 운영하면서 수차례 위험이 드러났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호텔 업자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자연이 의도하지 않은 재난까지 인간을 괴롭히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그 재난에서, 왜, 우리만 살아남았을까? 라는 영원히 답이 없는 질문을 붙잡고 괴로워하다 결국 다시 그 현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에도 있다.
사이비 종교 맹신자의 테러로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 평생을 이단 연구에 바치며 비슷한 일을 막기 위해 애써온 종교학 교수. 침몰하는 배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뒤 진로를 바꿔 응급구조사가 된 어느 젊은 생존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만이 인간은 ‘신의 뜻’을 넘어설 수 있는 것 아닐까. ☀
보나쓰 : 주말쯤 좋은 것들을 보고 나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