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소설
진술서 1쪽.
우리 아바이 동무가 오마이 동무와 사별한 지도 십 년이 넘었습네다. 아바이 동무가 종종 먼 산을 바라볼 때마다 내레 그저 마음이 아팠습네다. 그런 제가 아바이 동무의 비밀을 알게 된 건 꼭 한 달 전이었습네다. 해질녘쯤에 놀이소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아바이가 옆 집 안마당을 훔쳐보고 있는거 아이갔습네까? "아~ 아바이동무, 게서 뭐합네까?" 화들짝 놀란 아바이가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모른 척하는 걸 보고 저는 직감을 했습네다. 아바이가 옆집 순이 누나를 좋아하는구나. 이 아자씨가 이런 주책맞은 흑심을 품고 있는지 누가 알았겠습네까.
며칠 뒤 저는 좋은 날을 골라 은근히 물어봤습네다. "아바이 동무, 솔직히 얘기 하시라요. 내레 이제 다 커서 뭐든 이해할 수 있시요." 처음에 손사래 치며 부인하던 아바이도 제 끈기에 두 손을 들었습네다. "동무래 정말로 이해해줄 수 있갔어?" 고개를 끄덕이자 아바이가 입을 열었지요. 아아, 아버지의 짝사랑은 순이 누나가 아니었습네다. 그때 그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은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겁네다.
처음엔 내레 받아들이기 힘들었시요. 하지만 상사병 걸린 소녀마냥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마음 졸이는 아바이를 보니 화딱지가 났습네다. "아 거, 그럴거면 기냥 확 고백하시라우!" "야야 일없서, 당에 알려지면 내레 미제의 똥물에 오염된 불순분자로 찍혀 바로 아오지행 아이간네?" 옆 집을 훔쳐보며 볼이 발그레해진 아바이 동무를 보며 저는 새삼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네다.
진술서 2쪽.
어느 날 아바이 동무가 헐레벌떡 사립문을 제끼고 뛰들어오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네다. "야야, 일났어. 날래날래 짐싸라우!" "무슨 일입네까?" "당이 알았어야... 내 칵 답답해서 정신줄 놓고 고백을 했디... 근데 순이 삼촌이 바로 밀고를 했어" 잠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간나 새끼! 뭐하네? 짐 안 쌀거네?" "난 안 갈라요!" "이 간나 새끼, 네래 무사할 것 같네?"
버텼지만 저는 아바이 동무한테 결국 설득당하고 말았시요. "남조선으로 가는기야. 남조선이래 백억대 어린이 주식부자가 수두룩하다지 않네? 거긴 천국이야. 내레 널 어린이 주식부자로 만들어주갔어!!" 내레 고조 주식이 뭔지는 몰라도 부자라는 말에 칵 넘어간 거 아닙네까. 어린이 주식부자가 돼서 강냉이도 맘껏 튀겨먹고 알사탕도 빨아먹을 생각을 하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네다.
진술서 3쪽.
(한국 정부와 기독교의 항의로 공식기록에서 삭제함)
진술서 4쪽.
... 그러다가 결국 버려진 아바이와 저는 거리를 떠돌았습네다. "제3국으로 가야갔어" 며칠째 밥도 굶어 지칠대로 지친 아바이와 저는 하염없이 걸었습네다. 그러다가 왠지 모르게 이름이 친근한 봉가봉가 공화국의 대사관을 발견했고, 담장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네다.
◎ UN 인권조사관 빅토르 박의 소견서.
1. 위 진술서는 봉가봉가 공화국 주중 대사관의 의뢰로 배OO씨 부자와 본인이 함께 작성.
2. 이들은 탈북 직후 South Korea의 기독교 계열 탈북자 인권 구호단체를 만났으나, 탈북 동기를 들은 그들이 "사탄아 꺼져라" “에이즈야 물러가라”며 쫓아냄.
3. 아버지 배씨의 바이섹슈얼 성적(性的) 지향성을 고려할 때,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서도 마땅한 인권을 가질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되므로, 봉가봉가 공화국이 이들 부자를 인도적으로 수용할 것을 권고함.
4. 참고 사항 : 얼마 전 South Korea에서는 세계인권선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혐오발언을 거듭해온 인사가 국가인권위원장에 임명됨. 새 위원장은 동성 가족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며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항문암, A형 간염 같은 질병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
심심하면 쓰는 한쪽 소설입니다. 삽화는 미드저니로 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