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는 프랑스 영화감독 코랄리 파르자의 2024년 영화다.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개봉 초에 봤는데 이후 관객이 꾸준히 들어 며칠 전 13만을 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 영화에 특별히 관심이 간 이유가 있다.
내가 올해 제작해서 곧 방송하는 다큐멘터리 SBS스페셜 <바디멘터리 - ‘살’에 관한 고백>과 원팀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져 있다.
이 영화가 우리 다큐멘터리와 시너지를 일으켜 좋은 영향을 불러왔음 싶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한다.
한때 전설적인 할리우드 스타였으니 나이가 들면서 TV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밀려난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50세가 되자 그마저도 빼앗긴다.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입원하게 되고, 그곳의 잘 생긴 간호사로부터 비밀스러운 약물 서브스턴스를 소개받는다. 투약 후 인생이 바뀌었다는 간호사의 말에 이끌려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에 손을 댄다. 그리고 ‘수(Sue)’라는 완벽한 외모의 여성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우주는 균형을 추구하고 우리는 얻는 만큼 잃는다. 엘리자베스는 비현실적으로 완벽한 수로 살며 다시 한번 인기를 누리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생명’을 잃는다. 이 과정에서 겪는 딜레마와 갈등이 영화의 핵심이다.
반드시 지는 전쟁
어떤 사람이 반드시 질 수밖에 없는 경쟁을 매일 거듭해야 한다면,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정신이 무너질 것이다.
외모와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그렇다. 경쟁 상대는 주변 사람들이 아닌 SNS와 미디어 속 완벽한 여성들, 혹은 젊은 시절의 자신이다. 이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며 심각한 정신적 부상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전쟁과도 같다.
이 전쟁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날마다 패배하는 처참한 패잔병이다. 하지만 주변 세상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아름다운 외모’에서만 찾는다면, 어떻게 이 전쟁을 포기할 수 있을까. 전쟁을 거부하는 순간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테니 말이다.
이런 ‘전쟁’은 엘리자베스 스파클 같은 셀럽뿐 아니라 대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치러야 하는 의무와도 같다. 그들의 존재 가치가 능력이나 인성, 내면이 아닌 외적 아름다움과 체중으로 상당 부분 평가받기 때문이다.
하차 통보를 들은 후 자신의 외모를 거울에 비춰보는 엘리자베스
심지어 요즘 같은 능력주의 시대에 체중은 자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스펙이 되었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자기관리도 못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찍히는데, 특히 여성에게 이런 잣대는 더 엄격하다.
이러니 사람들은 미학적으로 더 우월해서 예뻐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안 예쁘면 큰일 나니까” 예뻐지려고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특정 집단에게 유독 세게 가해지는 압박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차별이다. 그들만이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 그들이 걸을 때만 역풍이 부는 것이다.
이걸 시각화해서 상상해 보면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런 차별을 당연시하며 살아간다. 오히려 미와 건강의 추구라는 이름으로 권장되기까지 한다. 결국 이 전쟁은 은폐되어 있다. 비가시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 약물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각화한다
보이지 않는 전쟁을 거듭하며 패배하다 보니,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도 왜 아픈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더 아름다워지기 위한 전쟁’에서 지는 사람들이 겪는 대표적인 병이 바로 섭식장애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면서 리서치를 하다가, 한국에서 20세 미만 여성 섭식장애 환자가 최근 5년 사이에 97.5% 증가했다는 통계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환자가 5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는 것은, 문제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무너져 있는 이들은 훨씬 더 많음을 뜻한다. 살살 부는 역풍이 아니라 숨 막힐 듯 오염된 바람이 거세게 밀려오는 셈이다. 그것도 우리 사회의 특정 구성원들에게만.
그 보이지 않는 바람을 가시화하는 것은 저널리즘과 예술의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SBS스페셜 <바디멘터리>와 영화 <서브스턴스>도 이런 점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한다.
SBS스페셜 <바디멘터리 - '살'에 관한 고백>에는 김완선, 한승연, 전효성, 소유 화사 등 다섯 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출연한다.
문제의 설계자는?
엘리자베스는 “50살을 넘어 늙었으니 가치가 없다”는 회사 관리자 하비의 말에 겉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진짜 생각이 달랐다면 서브스턴스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비의 말이 사실이며 온 세상이 ‘너는 늙었고 예쁘지 않다’에 동의하리라는 두려움이 서브스턴스 투약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소수의 음모로 일어나지 않는다. (극우 유튜브에 절어있었던 윤씨 일당의 계엄령은 예외로 하고..^^) 기업들의 이해관계, 미인의 이미지를 파는 미디어의 이익, 그리고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에 동조하는 개인들이 다같이 사회 문제를 심화시킨다.
개인은 문제가 없고 추상적인 사회 구조만 문제라고 여기면 매듭을 풀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우리 다큐의 주인공들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을 이런 사회구조의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보지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피해자인가 동조자인가?
“권력관계가 특정 집단에 의한 지배를 수반한다고 해서 지배자가 그 상황을 완전히 조장하는 것도 아니며, 가끔은 피지배자 자신들이 상황을 진전시키거나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렇게 억압을 합작하는 것이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바로 거식증이다” (수전 보르도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180p)
이번 다큐와 영화 <서브스턴스>가 우리가 겪는 고통의 구조를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식증 당사자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병들게 한 사회 구조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줄어들고 문제를 다루는 주도권을 회복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