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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바다 Aug 25. 2018

너의 결혼식 | 아련함, 어린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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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처음에 사랑은 언제나 타이밍이라는 식상한 문구를 앞세운 빤한 예고편을 보고 생각했다. 아니 2018년씩이나 된 마당에 무슨 용기로 저런 뻔한 멜로물을 만들었지? 판타지도 없고 스릴러도 없고 SF도 없이 오로지 멜로로 승부를 보겠다고? 하, 그래서 전혀 관심 갖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개봉 당일 낮부터 퍼지는 입소문에 휩쓸려 바로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시간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어서.  


© 너의 결혼식



아련함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밀려드는 이 주체할 수 없는 아련아련함은 무엇 때문이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올 때까지 의자에 몸을 묻고 한참 생각했다.


과거 비슷한 첫사랑 영화들은 결국 이뤄지지 않은 사랑 때문에 심장 조이는 상실감을 남겨줬다. <건축학 개론>과 <라라 랜드>의 여자와 남자는 마지막까지 서로를 바라보지만 시간이나 현실의 장벽에 막혀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 영화들이 아련한 이유는 사랑의 대상을 서로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다른 결이다. <너의 결혼식>에서 여자와 남자는 서로 똑같이 상대를 바라보는 사이가 아니다. 여자에게 남자는 자기 삶을 이뤄온 여러 조각 중 하나일 뿐이다. 항상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쪽은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 아련함의 정체는? 사람에 대한 상실감이 아니라 시절에 대한 상실감인 것 같다. 내 인생에 가장 철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 때문에 행복했던 시간이, 한 사람이 떠나면서 같이 흘러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때 느껴지는 상실감이랄까.


© 너의 결혼식

 

행복했던 모든 시간은 반드시 흘러간다. 멋진 시간이든 구겨진 과거든 한번 걸어온 길로는 누구도 뒤돌아 걷지 못한다. 인생의 근본적인 결함은 명백히 행복했던 어떤 과거를 봉인해둔 채로 항상 암흑 같은 미래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 아닌가. 영화 속 남자가 사슬로 자기를 묶고 열쇠를 분질러버리듯 우리는 그 봉인을 풀 열쇠를 구하지 못한다.


추억 속의 사람들을 내 곁으로 부를 수도 없고, 좋은 사람들은 떠나가며, 가고 싶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 심지어는 그런 유한했던 생마저 언젠가는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사실로부터, 산다는 것은 끝없이 무너지는 다리 위를 쫓기듯 걷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의 걸음을 잘 방어하며 살아낼 수밖에 없다.


어린 남자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행복했던 기억만을 골라 편집한 앨범 안에서 나는 완전하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 추억의 이야기에 출연해줄 사람이 없다. 남자는 결국 어린 자신을 극복하고 현재로 돌아온다. 물론 현실에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그녀는 없다. 자기에게 주어진 장소와 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온 그녀가 있을 뿐이다. 나는 그녀의 조각 중 하나다. 그녀와 함께 만들었던 추억의 시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끙끙 앓는 와중에도 이런 정확한 사실을 수용한 남자가 결국 여자의 결혼식장에 나타났을 때, 성장이란 그렇게 과거를 떨쳐내고 현실 속에 자기 발로 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 너의 결혼식


가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다만 곁에 묶어놓을 수 없는 모든 소중한 것들의 에 서서, 그들이 자기만의 길을 따라 커가는 것을 응원하는 모습이면 좋겠다. 그 응원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결혼식장에서만 아니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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