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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n 11. 2024

"당신의 영혼을 죽이더라도, 당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


올해 미국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들이 쓴 작품을 보는데 치매 노인을 돌보는 국가 시스템에 관한 묵시록 같은 기사가 있었다. 뉴욕타임스(NYT)에 케이티 앵글하트가 2021년 기고한 글이다. 읽는데 뒤통수를 탁 때리는 듯한 말이 있었다. 나 역시 그간 한국의 요양원 비즈니스에서 일어난 숱한 문제를 보며 느꼈던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 같은 말이었다.


We Are Going to Keep You Safe,
Even if It Kills Your Spirit.
(당신의 영혼을 죽이더라도
당신을 안전하게 지킬 것이다)


이 인상 깊은 문장은 미국 국립 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의 질 해리슨 박사가 치매인을 돌보는 미국 요양원에 대해 한 말이다. 요양원들이 환자의 안전을 지킨다며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뜻이다. 케이티 앵글하트의 위 기사에 따르면, 이미 미국의 치매 치료 시스템은 무너져있다고 한다. 환자 가족과 저임금 간병인의 노동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으며, 앞으로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더 큰 부담이 생길 거라고 한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케이티 앵글하트. 2024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UN은 2050년 한국의 노인 인구(65세 이상)가 18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노인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인이 늘면 치매인도 같이 늘어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약 5천만 명이 치매를 앓으며 2050년 즈음에는 3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한국인의 치매 유병률은 65세 이상 노인에서 10%(2018년 기준) 가량인데, 다른 연구결과에서는 농촌 지역의 경우 60세 이상 노인 21.3%가 치매라고 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인구와 이와 비례해서 늘어나는 치매 인구. 우리가 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치매 노인이 된다면?


불가피하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질 수밖에 없다. 내가 만약 치매 노인이 된다면? 2050년이면 나도 60대에 들어선다. 내가 그 불운한 10%에 들어간다면 나는 제대로 된 케어를 받을 수 있을까? 


2023년 5월,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서 78세 노인이 같은 병실의 82세 노인을 목 졸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병실에는 치매 환자를 포함해 5명의 입원자와 간병인이 있었지만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나는 피해자 가족의 제보를 받아 CCTV 등 자료를 검토했다. 치료와 돌봄을 위해 간 요양병원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스러웠다. 물론 악의를 가진 가해자가 사건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환자를 관리하기에 턱없이 허술한 요양병원의 운영 시스템도 또 다른 중대한 원인이었다.



이처럼 돌봄 시스템이 허술할수록 환자를 사람이 아니라 물건 다루듯 수용하게 된다. 케이티 앵글하트의 위 기사에서는 부족한 인력과 자본으로 치매노인을 돌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하게 살피고 있다. 


창가에서 춤추기를 좋아하는 어떤 치매인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춤을 추다가 넘어졌다. 그러자 요양원에서는 더 이상 음악을 틀지 않기로 결정했다. 환자의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미국 국립 노화연구소의 질 해리슨 박사는 이것을 "과잉 안전(Surplus safety)"이라고 부른다. "그것이 당신의 영혼을 죽이더라도, 우리는 당신의 안전을 지킨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는 관리 부담이 늘어나면서 치매인들에 대한 더욱 압박적인 통제가 일어났다. 이런 통제의 배경에는 기능적, 인지적 장애가 있는 노인은 외부자극 없이 침대에 잘 눕혀만 놓아도 괜찮은 돌봄이라는 입장이 깔려있다. 치료랍시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자극을 주면 말썽이 일어나니 "안전하게" 아무것도 못하게 두겠다는 것이다. 62세 남성 브루스 우드의 경우도 그랬다. 치매가 온 후 아내나 자식에게 이따금 공격적인 행동을 한 그는, 결국 요양원에 가서 두 손과 한 발이 침대에 묶이게 되었다. 



정신적 질환으로 말썽을 일으키면 손과 발을 잘라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는 식의 관리는 병세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인간은 생각이든 물질이든 순환을 통해 건강한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데, 스위치를 꺼버리면 모든 것이 멈추게 된다. 하지만 관리 인력이 적고 돈과 시간이 부족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며 활동을 직접적으로 가로막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끝없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우리가 아무 준비 없이 2050년을 맞는다면, 결국 나 역시 손발이 묶여서 병세의 악화를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고 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진 거울에 그림자가 드리우는 미래가 그려진다. ☀︎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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