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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ul 13. 2024

노는 물을 빚으로 살 수 있다면 ② 해방구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커다란 덩치, 두꺼운 팔뚝과 달리 남자는 친근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자기도 굿데이에서 일했고 주변 사람들 중에도 일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궁금하면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처음엔 굿데이도 평범한 대부중개 업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점차 나쁜 짓이다 싶은 선을 넘어가는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캐피탈이나 대부업체에서 내주는 합법적인 대출이 많이 막혔어요. 껀수가 줄어드니까 기본급밖에 못 받아가는 달이 있는 거예요. 기본급이 100만 원도 안되거든요. 나머지는 껀당 인센티브 개념이고… 저는 정직하게 일해서 기본급만 받아가는데, 사기 치는 새끼는 직급도 높여주고 인센티브도 얹어 주는 거죠. 저도 사실 몇 번 했는데 찔려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금방 그만뒀어요.”



악순환의 고리


굿데이에는 상담 인력을 관리하고 이익을 편취하는 열 명 안팎의 팀장, 과장, 이사 등 리더급 일당이 있었다.


그들은 다단계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팀원 한 명이 친구를 데리고 오면 일정한 인센티브를 줬다. 그렇게 신입이 와서 어느 정도 적응하면 그들에게 외제차를 사라고 유도하거나 비싼 시계를 사게 만들었다. 협박이 아니라 ‘그 정도는 네가 갖춰야 우리랑 어울릴 수 있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신입들 대부분 처음 굿데이에 올 때는 그저 월급 많이 주는 텔레마케팅 업무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리더들이 온갖 외제차를 타고 골프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잘만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리더들의 말을 잘 듣고 같이 어울리다 보면 엄청난 부의 기회가 열릴 것 같은 환상을 갖는 것이다. 신입들은 자연스레 대출을 일으켜 선배들과 수준을 맞췄다.


노는 물을 빚으로 산 것이다.


이것이 족쇄이자 악순환의 고리였다. 대출이 몇 천 생기면 그걸 갚기 위해 더 절박하게 일에 매달려야 했다. 양심 때문에 합법적인 선에서 대출 중개를 하면 돈이 모이지 않았다.


리더들은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을 두고 실적이 낮다고 공개적으로 멸시했다. 상환일은 때마다 다가오고, 선배들과 계속 어울리려면 지출 수준을 유지해야 했다. 눈 한 번 딱 감고 급전이 필요한 대출자를 속이면 큰돈이 떨어졌다.


실제 굿데이 근무자가 받았다는 월급 입금 내역


점차 수법은 다양해지고 대담해졌다. 서류를 조작해서 금융회사의 심사를 통과하게 만드는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다. 2021년경, 굿데이가 최악의 대출 사기조직이 되었을 때 구사했던 ‘자산론(자동차 대환대출)’이라는 수법은 황당할 정도다. 가장 최근까지 일했던 인물의 증언이다.


“1억 정도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그 사람이 신용이 안 좋아. 그럼 우리가 이렇게 구라를 쳐요. 자 선생님, 일단 여기 3백만 원짜리 중고차가 있는데 이걸 3천만 원에 사세요. 그러면 신용망에 그게 선생님이 가진 3천만 원짜리 자산으로 잡혀요. 자산이 늘면 어떻게 된다? 신용이 쭉쭉 올라갑니다. 세 달만 그렇게 잡고 계시면 돼요. 그러면 신용등급 올라가고 저희가 1억 대출 저금리로 세팅해 드릴 수 있어요.”


그들은 이렇게 사람들을 속여서 20년쯤 전에 나온 똥차를 수천만 원에 넘겼다.


중고차 딜러들까지 한패였고, 차 구입비용도 고금리로 빌리게 만들어서 수수료를 떼먹었다. 금융기관의 빈틈을 이용하면 더 많은 대출을 일으킬 수 있다는 헛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속았다. 이즈음 굿데이가 만들어낸 사기성 대출 수법이 10가지가 넘는다.


굿데이 사무실 한쪽 벽에 쓰여있었던 문구


돈의 맛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방법으로 괜찮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청년은 돈으로 치장한 신기루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미래 소득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니다. 비현실적인 것을 가려내는 판단을 함께할 수 있는, 도움 되는 주변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인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비전이 있기 때문에, 돈을 목적이 아닌 교환수단 정도로 여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는 많다.


적은 나이에 세상의 험난한 압력을 온몸으로 견디며, 저학력, 빈곤으로 인한 차별과 울분에 시달리는 청년들. 그들에게 주변사람들의 갑작스러운 인생 역전은 주목할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탈출할 매력적인 문이 열리고 손 하나가 나와서 까딱이면, 어떤 청년은 덥석 그 손을 잡는다. 조금 반칙 같아도, 지금까지 자신이 반칙의 피해자였으므로 딱히 주저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돈의 맛’을 보게 된다.


대출이지만 고급차를 뽑아 몰고 다닐 때 자신의 계급이 바뀐 느낌을 받는다. 그런 선배들과 어울리며 골프를 치고 좋은 룸에서 술을 마실 때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차츰 씀씀이가 커진다. 그렇게 되면 길은 셋 중 하나다. 더 많은 빚을 내거나, 아니면 사기를 치거나. 혹은 둘 다 하거나.


2020년경 굿데이 야유회에 멤버들이 몰고 온 1~2억대의 고급차들


하지만 이태호와 김진성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점점 실적이 떨어지고 욕을 먹었다. 결국 굿데이를 그만두고 다시 제대로 된 일을 해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비싼 이자로 빌린 돈이 줄지 않았고 갚아야 하는 것만큼 벌지 못했다. 그러다 다른 대부 중개업체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실적이 별로였다. 다시 그만둔 뒤 생활고에 시달렸다. 김진성은 죽기 직전 며칠을 굶다가 누나한테 배달음식 한 번만 시켜달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김진성은 죽는 날까지 문자로 채무 독촉을 받았다.


최민서는 굿데이를 떠난 뒤 먹고살려고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형사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합의금 2천만 원을 마련해서 남자친구에게 주었다. 그것이 고스란히 빚이 되었다고 한다.


고금리 이자가 쌓이자 최민서는 월 500만 원을 준다는 주식 방송 업체에 취직했다. 그 회사는 40대 남자 사장 혼자 운영하는 회사였다. 주식 방송 조회수가 저조하자 사장은 최민서에게 벗방을 요구했다. 최민서는 거부했고 다툼이 생겼다. 그러자 사장은 미리 졸피뎀을 준비해 최민서에게 몰래 먹인 뒤 밧줄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른 폭염으로 도시가 들끓었던 2020년 6월의 일이었다.


최민서를 살해한 사장은 1심에서 징역 35년을 선고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그가 강력 전과 2범임이 밝혀졌다. 그는 끝까지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자신을 변명했다.


삼백충의 자기해방


'삼백충'이라는 말이 있다.


10년, 20년을 일해도 월급 300만 원을 넘지 못하는 사람을 폄하하듯, 스스로 자조하듯 일컫는 말이다. 수도권에 집 한 채도 못 구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해가며 살아야 하는 소득.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삶이다.


삼백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미래가 보이지 않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당시 굿데이에 빨려 들어간 청년들 주변에 성공한 사람이라곤 대부중개로 돈을 번 동네 선배들밖에 없었다. 그 물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해방의 길이었다.


Dall-e3로 그린 삽화


도박처럼 그들은 삶에 나섰다. 죽은 사람들도, 사기를 당한 사람도, 이 판을 짠 범인들도 다 이삼십 대 청년이었다. 사회가 기대하는 교육과 취업, 질 좋은 일자리에서는 소외된 부류의 청년들이었다. 성실한 노동으로는 비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을 그들은 공기처럼 들이켰다.


그렇게 기꺼이 도박장의 플레이어가 되었다.


성실하게 일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쉬운 세상에 냉소가 흘러넘친다. 종종 폭로되는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치부책엔 그들만 가능한 편법과 온갖 투기 내역이 가득하다. 누가 진정한 악당인가? 이런 세상을 만든 뒤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것은 누구인가? 한국 사회의 극단적 불평등에는 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가? 이태호, 김진성, 최민서, 세 사람은 죽음으로 죗값을 치렀다. 그들이 떠난 세상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메아리처럼 울려온다. ☀︎










* 취재를 할 당시까지만 해도 피해자들의 신고를 접수한 전국 곳곳의 경찰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흔한 소액 사기 사건으로 본 것이다. 2022년 11월 방송이 나간 후 경기북부경찰청에서 사건을 맡겠다고 나서며 우리를 찾아왔고, 그렇게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24년 7월 11일, 경찰은 굿데이와 그 파생조직 일당 160명을 검거하고 '자산론(자동차 대환대출)' 사기 사건에 대한 긴 수사를 마무리했다. 밝혀진 범죄의 규모는 내가 취재할 당시 파악했던 것보다 두 배 이상 컸다. 특정된 피해자만 425명, 피해 액수는 125억 원이었다.


방송 당시에도 오해가 있었던 부분을 다시 정확하게 짚어두자면, 자동차를 이용한 자산론 사기는 위 세 사람이 굿데이를 떠나 사망한 이후 생겨나고 고도화된 수법이다.



Q 파일 : 세상의 문제를 들여다본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 1332회를 돌아보며 못다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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