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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pr 07. 2017

카페 이야기

망원동과의 첫만남

 

나에게 망원동은 그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내밀어준 따뜻하고 커다란 누군가의 손 같았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바닥을 치고, 새로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기가 온다. 나에겐 그 해 (2011년) 여름이 그랬다. 돈을 벌기 위해 몇 년간 입시미술 강사 생활을 했음에도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서울 생활비를 충당하고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기 에도 빠듯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다그쳐야 하는 그 일이 나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생각해 낸 게 카페였다. 나와 사정이 별다를 바 없는 친구와 함께 무더운 여름날 카페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그때 당시엔 아무것도 없는 한적하고 평범한 동네 망원동이었다. 일단 우리는 대학생 때 같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한 경험이 있고, 그때의 사장님이 심적으로 많은 응원을 해주고 계시다는 것과, 둘이 바짝 긁어모은 700만 원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보증금이 가장 싸고, 권리비가 없는 곳을 찾다 보니 가게 자리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가는 부동산마다 비웃음을 당하며 퇴짜를 맞고 최대한 불쌍한 척을 해 가며 동정표를 구해 소개받은 순대 국밥 집이 있었다. 3평 남짓해 보이는 크기에 가게 앞으로 조그만 공간이 있는 곳이었다. 며칠을 아침저녁으로 가게 앞에 앉아 유동 인구와 해가 들어오는 방향 등을 살폈다. 큰 대로변 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 사람들이 조금 다니는 골목쟁이 었다. 마침 순대 국밥 집 계약 기간이 끝났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첫 카페, ‘커피집 숍’을 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보증금을 치르고 나니 집기는커녕 테이블 살 돈도 없었다.  오래된 타일 바닥은 그대로 살리고 며칠간 최소 십여 년은 되어 보이는 꾸덕한 벽지를 떼어 내고 조각하는 심정으로 남은 종이를 긁어냈다. 우리의 절박한 마음을 알아주신 고마운 분들이 하나둘씩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인테리어를 도와주신 분이 전에 공사하다가 남은 자제 들을 지원해 줬고, 예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할 때 친목이 있던 다른 카페 사장님이 커피 머신을 빌려 주셨다. 나중에 돈 벌면 갚으라면서…… 웬만한 것은 주변에 버려놓은 괜찮은 물건 들을 주워와 고치고 닦고 다시 칠해서 만들었다. 그리고 집기 들은 친구 들이 오픈 선물로 하나둘씩 가져다주는 것으로 채워졌다. 

 공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다들 여기는 카페 같은 거 할 데가 아니 라면서 걱정스레 한 마디씩 거들고 가셨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은 작은 동네 백반 집, 고물상, 일반 주택 등이 들어서 있는 환경 이었다. 누구도 카페에 어울리는 자리라고 생각하지 못할. 그래도 우리는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홍대에서도 가깝고, 큰 망원 시장이 오분 거리에 있으며 골목마다 아직 북작 스럽지 않은 소박하고 평범한 동네의 느낌이 있었다. 가게 가까이에 월세집도 하나 얻었다. 오래된 주택의 한 층을 둘로 나눈 집이라 벽지를 바른 문 사이로 옆집 대화 소리가 다 들리고 겨울 에는 나무 창문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추운 집 이였지만, 반 지하층이 아닌 햇빛을 볼 수 있는 이층이라는 점이 그래도 고마웠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 나는 동상에 걸렸다.


 카페를 차린 뒤 며칠이 지나 마감을 마치고 친구와 둘이 앉아 술을 한잔 하는데 이 공간이 너무나 감사하고 신기하게 느껴졌다. 오직 우리만의 공간. 우리 손으로 구하고 우리 손으로 갈고닦아 놓은 거대한 작품 같은 느낌. 그 공간에 어울리게 그림을 배치하고 날씨와 계절에 어울리는 음악을 골라 트는 것. 매일마다 먼지를 닦고 화분에 물을 주는 것. ‘가게 하나 차리는 게 종합 예술 작품 만드는 거 같지 않니’ 하며 서로를 칭찬해줬다. 

 자전거를 하나 선물 받았다. 날씨가 너무 궂은날이 아니면 둘 중 하나는 교대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망원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갔다. 바구니에 한 가득 신선한 과일이며 필요한 재료 들을 싣고 오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망원 시장은 서민 들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물가도 싸고 활기찬 기운이 돈다. 세일을 외치는 생선 가게 아저씨의 목소리와 흥정하는 아줌마들, 자전거 소리, 음악의 울림, 떡볶이와 튀김 냄새들이 가슴 한켠 답답한 그 계절의 등을 쓸어 주었다. 





 나에게 망원동은 그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내밀어준 따뜻하고 커다란 누군가의 손 같았다. 

그리고 친구 들은 우리를 보러, 커피를 마시러, 책을 읽으러 이곳으로 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길가의 꽃을 데려와 우유팩에, 자른 플라스틱 물병에 꽂아두었다.





오픈 당시의  모습  -지금의 커피집 '숍' 은 2013년, 좋은 분에게  양도 했으며 지금의 저와는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p.s. 앞으로 서울 마포구 망원동- 합정동- 연남동을 오가며 카페 이야기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한 '그리움' 에 대해 쓰고, 그릴 예정입니다. 







전소영_sowha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BLOG / iris567.blog.me

I N S TAGRAM / @artist_so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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