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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Oct 16. 2021

변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어

나의 스물일곱에게_02


얼마 전, 모처럼 만난 10년 지기 친구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양유정은 진짜 많이 변했어."

"옛날 모습이 거의 안 남아있는 것 같아."


정말 그랬다. 불과 3~4년 전까지의 나와 지금의 내 성격은 두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너 그때 그랬었잖아~'라는 식의 10년 전 얘기를 하다 보면 과거의 내가 낯설어서 놀랍다. 단순히 외향적이었던 사람이 내향적으로 바뀌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말투, 행동 양식, 습관, 가치관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동안은 한번 형성된 성격은 잘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음식 취향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휙휙 바뀌는 것처럼 성격이나 기질도 마찬가지일 줄이야. 그래서 어떻게 달라졌냐면,



#염세주의자에서_긍정봇으로

난 주로 부정적인 상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다행인 건 그 부정적인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것.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일 시험에서 하나도 기억 안 날 것 같아"

↳ 절대 기억 안 날 수 없게 100번 더 읽기

"이거 못 하면 진짜 모질이처럼 보이겠다"

↳ 될 때까지 연습하기

"왜 내 그릇은 이거밖에 안 돼?"

↳ 그릇이 넓은 친구들은 어떻게 사는지 관찰


지는 것, 남보다 못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데, 자꾸 뒤처질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몇 배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내 모습이 '노력파'인 게 당연할 정도. 어쨌든 늘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으니 남들이 '긍정의 힘'을 강조할 때 믿지 않았다. 하지만 과정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이었다. 늘 불안했고 긴장했다. 잘 때 이를 가는 습관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생활하는 습관, 만성위염과 스트레스성 복통이 이래서 생겼나 보다.


부정적, 비관적 사고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내 성격이 됐다. 나라고 늘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인데, 여차해서 결과까지 안 좋으면 나는 한없이 우울해졌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런 성격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었다. 한 번 깊은 우울감에 빠져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이후로는, 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긍정봇이 되려 애썼다.


화법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잘 될 거야', '충분히 잘했어', '이 정도면 괜찮아' 등. 긍정적인 자기 암시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정말 다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물론이고 매사에 여유가 생겼다. 긍정적으로 말하니 생각도 저절로 긍정적으로 변했다. 더 자주 웃고, 더 많이 즐거우니, 궁극적으로 행복의 총량이 커졌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셀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달까.



#의미_있는_시간_낭비

수많은 열혈 게임 유저들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게임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열심히 해봤자 나한테 남는 게 없는데 왜 하는 거지? 운동을 하면 체력을 기를 수 있고 책을 읽으면 마음의 양식을 쌓을 수 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게임은 인생에 마이너스일 뿐이었다.


그랬던 내가 모바일 게임을 2년 가까이 (매일 최소 1시간 이상) 하고 있다. '현질'도 하고, 출퇴근할 때나 혼자 밥 먹을 때 유튜브로 게임 방송도 본다. 이 얘기를 처음 들은 내 친구들은 모두 (0_0)? 이런 표정을 지으며 믿지 않았다. 수험생 시절엔 급식 줄 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점심시간이 한참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일 늦게 밥을 먹었고, 대학생 시절엔 학교 수업과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빠듯한 와중에 대외활동까지 했을 정도로 시간 낭비를 싫어했던 나니까.


게임에 눈을   우연한 계기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데, 누군가의 추천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거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짜야하므로 다른 생각이 파고들 틈이 없었고, 온전히 집중할  있었다. 그렇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시간을 보내고 나면, 훨씬 정돈된 마음가짐으로 다른 일을 시작할  있었다. 이겼을 때의 짜릿함은 !


그동안은 너무 시간 효율을 중요시하며 사느라 쉽게 지쳤다. 피로감은 누적되다가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시간을 빠듯하게 채워 쓰는 습관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대신 지금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시간'을 준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 빼곡하게 살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 사실을 알게 해 줄 시간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게임으로 보내고 있다. 때로는 시간 낭비도 인생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알고_보니_팔로워_체질

난 반장과 학생회장, 동아리 회장을 빼놓지 않는 학생이었다. '리더'가 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대표'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인 게 분명했다. 난 멋지고 싶었다! 다행히 난 활발한 성격이었고 친한 친구들도 많아서 늘 어렵지 않게 회장(반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입학해서까지도 '리더'의 자리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몸 담았던 동아리에서 임원진이 되지 않았을 때 힘들기도 했다. 마땅히 내 몫인데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인턴 시절, 인턴 대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지원하라고 하는데 너무 하기 싫었다. 누가 하라고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 엄청나게 갈등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분명 리더형 인간인데 왜 하기 싫지?', '분명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리더 역할을 하는 걸 보면 후회할 텐데', '그래도 오늘은 정말 손들기 싫다. 왜 이러지'라면서. 어물쩡거리다가 기회가 지나갔다. 그런데 웬 걸? 인턴 생활을 지속할수록 후회는커녕 '팔로워' 자리가 내 자리 같았다. 리더라는 이유로 모두의 이익을 위해 내 이익을 포기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쓰느라 머리 아플 일도 없었다. 나 사실 팔로워도 꽤 잘 어울리는구나, 이때 깨달았던 것 같다.




이밖에 크고 작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달라졌다. 그러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됐다. 최근 몇 년간 내가 많이 달라질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에 나오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와중에, 좋은 어른의 장점은 적극적으로 내 것으로 만들고, 그렇지 못한 어른의 단점을 통해서는 나를 돌아보며 '더 나은 나'를 만들려고 알게 모르게 노력했던 거다. 그리고 지금, 달라진 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성격과 가치관을 내가 더 행복한 방향으로 바꾸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 성향을 발견하는 게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마땅히 나를 더 위하는 방식을 찾아 삶에 적용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더 편하게 느끼는 지점이나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을 때 놓치지 않고 기억했다가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친구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뒀다가 생일에 선물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조금씩 더 좋은 사람으로 발전해온 것처럼, 앞으로 달라질 내가 정말 기대된다. 서른 살의 양유정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양유정

그림 지안 (instagram@inside_gsu)



<나의 스물일곱에게> 시리즈 다시 읽기

프롤로그 : 얼렁뚱땅 서른이 될 순 없으니까
01 :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02 : 변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어
03 : 내 결혼 생활은 이런 모습이기를
04 : 정리하지 못한 방, 정돈되지 않는 삶

05 : 누가 뭐래도 진심을 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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