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물일곱에게_Prologue
2014년 3월, 좁은 동네를 벗어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우물 밖으로 갓 나온 개구리처럼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양각색의 낯선 사람들과 경험해본 적 없는 환경. 온통 새로운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능 문제집이나 풀 줄 알았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탐색하고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1년을 보냈다. 그래서였을까. 선배라는 존재가 하늘처럼 느껴졌다. 겨우 두세 살 많았던 언니, 오빠들이 어쩜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지 모르겠다. 당시 우리 과의 학생회장 오빠의 나이가 몇이었더라… 아마 스물여섯쯤 됐던 것 같다. 그 오빠를 비롯해 다른 선배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멋진 어른이 될까?’
지금 돌이켜보면 참 황당하고 귀엽다. 스물여섯을 보면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니. 그 스물여섯을 넘어 스물일곱이 되었는데도 난 스스로가 ‘응애’ 같은데 말이다. 어른은 대체 언제 되는 거지? 어른의 기준은 뭘까? 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덜컥 ‘법적 성인’ 신분을 얻고 어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던 스무 살 때 부터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답을 내리기는커녕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그런 채로 서른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버린 거다.
왜 이렇게 유별나게 서른을 강조하냐면, 내게 정말 특별한 나이기 때문이다. 서른 살의 여자 셋이 등장하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2019)>을 보면서부터였을까. 서른이 된 내 모습을 무수히 상상했고 조금씩 구체화시켰다. 딱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내 마음에 아주 쏙 드는 ‘힙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대학도 졸업하고 두 번의 인턴 생활과 한 번의 이직을 거친 직장인이 되었지만 조금도 '어른'이 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사춘기가 찾아오고 여전히 진로를 탐색 중이며, 사는 게 어려울 뿐. 주말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밀린 숙제 하듯 해치우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아, 얘기하다 보니 이거 어디서 봤던 레퍼토리다. 7년 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 고민해보지도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어 버린 바보 같은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에 대학 입시에 올인해야 했고,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선 아무것도 질문하지 못한 채 20대에 접어든 까닭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대학 졸업반이 돼서 정신없이 취준생으로 살아야 한 것도 한몫했겠지.
등 떠밀려 스무 살이 된 것처럼 이러다가 또 얼렁뚱땅 서른이 될 것만 같다. 누군가는 서른도 별 거 없다고, 너무 힘주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멜로가 체질>을 보면서 키웠던 서른에 대한 로망을 꼭 실현하고 싶다. 그래서 20대 후반, 서른으로 가는 길목 초입에서 느끼는 감정과 여러 고민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완벽한 서른이 되는 건 어려울지라도, 서른 살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20대 후반이라면 혹은 나처럼 특정 나이에 대한 로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시리즈가 연재되는 동안 같이 고민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양유정
그림 지안 (instagram@inside_gsu)
<나의 스물일곱에게> 시리즈 다시 읽기
프롤로그 : 얼렁뚱땅 서른이 될 순 없으니까
01 :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02 : 변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어
03 : 내 결혼 생활은 이런 모습이기를
04 : 정리하지 못한 방, 정돈되지 않는 삶
05 : 누가 뭐래도 진심을 다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