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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Nov 01. 2021

내 결혼 생활은 이런 모습이기를

나의 스물일곱에게_03


#벌써_그런_나이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다. 30대가 되기 전에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최대한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옵션도 고려하는 ‘요즘 친구들과는 사뭇 다르다. '결혼=가장 친하고 제일 좋아하는 친구랑 평생 같이 살기로 하는 약속'이라는 흐릿하고 무모한 정의를 내린 덕에 도출된 계획이었다. 직업도 자산도 안정적일  말고, 같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하고 싶었다. 이제 20대의 끝무렵에 접어들었으니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바로  시기에 다다른 . 20대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조금은 천천히   알았는데,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마침 얼마 전에 친한 친구 S가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남자 친구와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데다가 연애도 오래 해서 예상은 했는데, 막상 들으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물론 20대 초반에 결혼해 애까지 있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너무 특수한 케이스였기에 S의 소식이 크게 다가온 것 같다. 아, 나도 진짜 ‘그런 나이’가 됐구나. 애인에게 프러포즈를 받아도, 결혼을 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 그러고 보니 올해 초 친한 오빠랑 밥을 먹다가 가방을 뒤적이는데 "청첩장 주려는 거냐"고 물어봤던 게 기억이 난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됐다.



#결혼_라이프_스타일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조급해져 결혼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할까 막연하게 고민하곤 했는데, 최근 직장 동료(지만 까마득한 선배님들인) P님과 K님의 결혼 에피소드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신기하게도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며, 두 분의 결혼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도 달랐다. 일단 P님은 10년 가까이 연애하고 느지막이 결혼을 하신 반면 K님은 20대 중반,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입사하자마자 결혼을 하게 됐다고 했다. 돈을 관리하는 방식도 달랐다. P님은 각자 번 돈은 각자 관리한다고 했다. 생필품 정도만 P님이 구매하시고, 생활비도 반씩, 가구를 사더라도 반씩, 여행 경비도 각자 부담한다고. 반면 K님은 결혼 이후로 한 번도 통장을 가져보신 적이 없다고 했다. 전부 아내가 관리하고 본인은 (한도는 없지만 아내에게 사용 내역이 발송되는) 카드를 쓰기 때문에, 비싼 전자기기 등을 갖고 싶으면 아내가 기분이 좋을 때 결재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를 웃으며 덧붙이셨다. P님은 아직 아이가 없고, K님은 중고등학생 아들이 둘이나 있다는 차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두 분의 방식이 너무도 달랐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내 눈에는 두 방식이 모두 괜찮아 보였다는 거다. 두 분 모두 각자의 방식에 만족하셨고 그동안 큰 마찰 없이 행복하게 살아오셨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식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원점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뭐가 더 좋은 방식인 거야?' 혼란스러워하던 차에, 머리를 굴리는 나를 보고 P님이 한 마디 덧붙여주셨다. 정답은 없으니 결혼하기 전에 당사자끼리 충분히 이야기하고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 합의를 위해서 본인이 어떤 것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지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결혼하면 치약 짜는 것, 양말 벗어놓는 걸로도 싸운다는 말도 있지! 최소 20년 이상 다르게 살아왔는데, 서로의 오랜 습관이나 생활 방식이 꼭 맞아 떨어질 리 없으니까. 그래서 (합의에 실패한) 우리 엄마 아빠도 아직까지 싸우시는 걸까. 이런 차이점이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원만한 합의가 사전에 꼭 필요하다는 거다.


그렇다. 결혼이라고 답이 있을 리 없다. P님과 K님 모두 그냥 '기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을수록 서로 다른 결혼의 모양이 선명했다. 이후에도 회사의 많은 기혼 선배님과 친한 언니 오빠들에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다. L언니는 이런 모양, J오빠는 이런 모양... T선배는 이런 모양쯤 되려나? 그럼 난 어떤 모양의 결혼을 하고 싶은 걸까?



#나만의_모양_찾기


1. 집 문제. 결혼 상대의 직장과 내 직장 사이의 어딘가에, 예산에 맞춰 집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혹시라도 서로의 직장이 너무 멀다면 둘 중 한 명이 직장을 옮기거나, 혹은 직장을 관두거나 주말 부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적당한 위치에 집을 구하기 어려워 주말 부부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괜찮을까? 은근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주말 부부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을까?


2. 출산 문제. 아기를 낳을 것인가. 낳는다면 몇 살 즈음에, 몇 명을 낳을 것인가. 사실 이 문제가 가장 어렵다. 전 직장의 사수였던 과장님께서 육아로 인한 단축근무를 하는 걸 보면서 워킹맘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출근할 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이셨고, 근무 시간은 줄었는데 일은 줄지 않으니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일하셔야 했다. 역시 커리어와 육아를 동시에 잡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택 1을 해야 된다면 나는 내 커리어가 더 중요한데, 또 한편으로는 아이를 별로 안 좋아했던 친척 언니가 아기를 낳고 너무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 기쁨을 포기하는 게 맞을까 싶기도 하다.


3. 돈 문제. 월급이 오르는 폭보다 집값이 오르는 폭이 더 커서, 월급을 모아서는 절대 집을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난 남편과 각자 최소한의 생활비를 나눠가지고 나머지는 무조건 같이 저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K님에 의하면, 생활비가 공금이다 보니 별로 아껴 쓰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고 한다. 그럼 각자 모았다가 목돈이 필요할 때 합치는 게 나을까?


여러 질문을 던져보는 중이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있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막상 '결혼' 코앞으로 다가오면 분명히 정해야  것들이 쏟아질 것이므로, 머지않았을지, 멀었을지 가늠할  없더라도 미리 부지런히 고민해두는  좋을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갈 방향을 논의할  있어야 하니까. 가치관은 벼락치기할  없다. 나는  떠밀리듯 헐레벌떡 결혼하고 싶지 않고, 나만의 방식대로 결혼 생활을 하고 싶다.  배우자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맞춰나갈 의지가 있는 사람이기를. 그리고 그가 꿈꾸는 결혼이 내가 그리는 결혼의 모양과 비슷하기를.




양유정

그림 지안 (instagram@inside_gsu)



<나의 스물일곱에게> 시리즈 다시 읽기

프롤로그 : 얼렁뚱땅 서른이 될 순 없으니까
01 :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02 : 변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어

03 : 내 결혼 생활은 이런 모습이기를

04 : 정리하지 못한 방, 정돈되지 않는 삶

05 : 누가 뭐래도 진심을 다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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