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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Jun 06. 2023

대학 탁구 동아리 실패? 성인 동호회 입문기

나의 이십 대를 바꿔놓은 스포츠, 탁구 02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체육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강제로라도 운동을 했지만, 20대가 되니 그마저도 없었다. 내가 하는 운동이라고는 지각할까 봐 지하철역에서 강의실까지 전력질주하는 것 정도? 그렇다고 본디 운동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수학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목이 체육이었다. 여학생들이 앞머리 망가진다고 사릴 때 나는 땀 흘리며 수행 평가 연습을 했고, 공부하다가 머리가 아프면 밤에 친구를 만나 농구공을 던졌을 정도니까.


  의무 체육 시간이 없는 대학생은 운동하는 시간도 직접 만들어야 했다. 혼자 하는 운동은 재미없을 것 같고, 여자는 매니저나 되어 버리는 그런 동아리는 절대 싫고. 그렇게 선택한 게 탁구 동아리였다. 중학생 때 한 달 레슨 받은 게 전부지만 똑딱똑딱 경쾌한 탁구공 소리도 다시 듣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신문방송학과 14학번 양유정입니다. 탁구 동아리 가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우연찮게 홍보물을 보고 교내 탁구 동아리에 가입 문의를 했다. 지금은 남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 탁구 동아리 회장 H 오빠가 친절하게 모임 일정을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무색하게도 한동안은 탁구장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는 사실. 당시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탁구 동아리를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다. 질투가 많았던 그는, 동아리원의 팔 할, 아니 구 할이 남학생인 데에 불만이 많았다. 내가 모임에 가겠다고 하면, 대체 왜 남자만 득실득실한(?) 동아리에 가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탁구 동아리 대신 남자친구와의 평화를 택했고, 10번도 채 참석하지 못하고 졸업하고 말았다.


  진짜 탁구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는데, 탁구에는 어마어마한 '대학 탁구'의 세계가 있다. 소소한 동아리 활동 수준이 아니라 대학교 소속으로 탁구 대회에 출전하고, 그들끼리 교류도 활발한 그사세랄까. 지금 같이 탁구를 치는 또래 중 많은 이들이 대학 탁구 출신으로, 활발히 활동했던 친구들끼리는 서로 이름만 대도 알고 친분도 두텁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배워야 빨리 느는 법. 대학 탁구 출신의 친구들은 각종 탁구 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부수도 높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그때 어떻게든 내 삶에서 탁구 동아리를 지켰어야 하는데... 열심히 활동하고 그들과 어울리며 탁구 실력을 키웠다면 적어도 지금 희망부*는 탈출했을 텐데! 혹시 지금 대학생 신분으로 이 글을 읽는 탁구 병아리가 있다면 당장 대학 탁구 동아리에 들어가길 바란다.


JTBC '취존생활' 캡처


탁구와의 인연은 영영 끝인 줄 알았던 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2019년, 그러니까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때, TV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았다. SNS에 올렸던 탁구장 셀카가 운 좋게 작가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거다. 배우 이시영과 함께 탁구 동호회 활동을 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탁구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운명 아닌가?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 작가님께서 가입하라고 알려준 동호회에는 놀랍게도 대학교 탁구 동아리에서 만난 H 오빠도 있었다. H 오빠 덕분에 포핸드 스윙과 백핸드 스윙도 겨우 하는 개초보 왕초보였는데도 동호회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었다. 정말 온 우주가 나를 탁구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그 해엔 내내 솔로였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동호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동호회원들에게 탁구는 단순 취미 이상이었다. 그들에겐 탁구가 인생이고 삶 그 자체였다(지금 내게 그렇듯이!). 탁구를 치기 위해 사는 사람들 같았달까.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탁구에 투자하는 듯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가볍게 탁구장에 가는 정도의 취미로만 생각했는데... 운동에 이렇게 미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내가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게 신기했다. 동호회원의 연령대 폭도 넓고 직업도 다양해서 그들과 친해지는 재미도 있었다. 


  그 해를 기점으로 내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화에 다 쓰기엔 스크롤 압박이 너무 심할 것 같아 다음 화부터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희망부 : 탁구 대회에서 가장 낮은 6부보다 낮은 참가자들을 위해 만들어주는 병아리 부수. 대회마다 명칭이 다르며, 비슷하게 '새싹부', '7부' 등이 있다. 




양유정 / 4년 차 탁구병아리

탁구를 만나고 내 일상이, 아니 인생이 바뀌었다. 제일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며. 무엇보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그건 이 시리즈를 통해 천천히 공개하겠다.

탁구장 예절부터, 탁구 게임의 재미, 탁구의 기술, 동호회의 묘미까지. 탁구를 두고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를 펼쳐나갈 예정이다. 스포츠 동호인이거나 혹은 푹 빠져 있는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다. 내 글을 읽고 단 1명이라도 탁구에 관심이 생긴다면 이 시리즈는 성공! 본격 탁구 영업 에세이, 많이 기대해 주세요!


 • 간간이 올리는 탁구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yang_k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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