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vi May 12. 2020

심장이 말했다 3.

독단적이고 변변찮은 단편소설

전편 바로가기



피의자 김연숙 씨의 담당이었다는 간호사는 그녀의 이름을 듣기도 전에 치를 떨었다. 초기 한 두 달간은 약물 없이는 자지 못할 정도로 증상이 심했는데, 주된 이유는 망상과 환각 때문이라고 했다.


“원래도 우울증 증세로 약을 타가곤 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아주 멀쩡하고 건강하셨는데... 따님이 돌아가신 후에 갑자기 그렇게 되신 것 같더라고요.”


인택은 간호사의 말을 정정했다. 명백히 말하자면 피의자는 딸이 죽고 난 후 일 년 뒤에나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딸의 사망 후 갑자기 돌변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전 병원 응급실 간호사의 말을 빌리자면 그녀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침착함이 보였다고 했다. 마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것처럼.


“그럴 리가요. 그랬다면 돌봐주시던 그... 사회복지사? 분께 그런 악담을 하며 괴롭히지 않았겠죠. 결국 그 복지사님이 신고해서 정신병동까지 입원하게 된걸요.”

“복지사분을 괴롭혀요?”


간호사는 김연숙 씨가 자신을 돌봐주는 복지사에게 ‘자신을 속여 딸을 죽게 만들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복지사가 따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해도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더니 나중에 가서는 ‘당장 악마로부터 내 딸을 다시 데려오지 않는다면 널 죽여버리겠다’ 협박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연숙 씨는 보호자라 할 만한 가족이나 친인척이 없어, 전문 의사들의 진단하에 병원 입소가 결정되었고 강제 입원 조치가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입원 개월 수는 6개월 정도밖에 안되던데...”

“맞아요. 거의 기적이었죠. 처음에는 미친 사람처럼 밤낮없이 소리를 지르고 울어 댔는데, 거짓말처럼 3개월이 지나면서 증세가 빠르게 호전되었거든요.”

“그 외에 다른 특별한 것은 없었나요?”


“아뇨, 퇴원 전까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상태를 체크하고 약을 드리는 저희가 다 민망할 정도였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저희는 퇴원 절차가 아주 까다로워요. 세 분의 전문의 선생님들이 다 오케이를 해야 퇴원할 수 있거든요. 막말로 사이코패스가 아니고서야, 어쭙잖은 연기로 퇴원하는 건 불가능해요.”


사이코패스라... 인택은 피의자 김연숙 씨가 딸의 죽음에 매우 침착했다는 증언이 자꾸만 맴돌았다. 실마리를 풀고자 왔는데 머리만 더 복잡해진 기분이었다.


“혹시 그 복지사 분의 번호가 남아있을까요?”

“일단 보호자 칸에 쓸 연락처가 없어서 대신 적기는 했는데... 그 일 이후로 담당자께서 바뀐 걸로 알아요.”


인택은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들고 차로 돌아갔다.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제형에게 실시간으로 까똑 알람이 왔다.


[정확한 사인 나옴. 심정지로 인한 쇼크사. 두부 손상은 사망 전-]


인택은 배너를 올려 알람을 지운 뒤, 간호사가 적어준 번호를 눌렀다. 지루한 연결음이 후에 갈라지는 듯 한 목소리의 여성이 대답했다.


“네.”


인택은 짧게 자기소개를 한 뒤, 그녀에게 연락 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돌연 신호음이 끊겨버렸다. 그녀가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인택은 문자를 남겼다. 그녀의 정보가 중요한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며, 매우 절실하다는 내용이었다. 한참 후 그녀에게 한 줄의 문자가 왔다.


[더 이상 제 소관이 아닙니다.]


인택은 다시 긴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힘드셨을 것 압니다. 김연숙 씨의 사정을 알면 조금은 이해해 주실까요? 김연숙 씨의 따님께서는 오래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였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처벌에 모녀 둘이서 큰 상처를 안고 사셨습니다. 따님께서 돌아가신 후엔, 악마가 딸을 데려갔다 망상을 할 정도로 고통스러우셨던 겁니다. 부디 한 번만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복지사는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답장을 주었다. 그녀는 두 시간 뒤 강남 한복판 카페에서 만날 것을 제안했다. 두 시간이면 잠깐 서에 들릴 짬이 날 것 같았다. 인택은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경찰서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제형은 서로 들어오는 인택을 보자마자 '왜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시냐-'며 볼멘소리를 해댔다. 인택은 제형을 앉혀 놓고 낮부터 모은 정보를 하나둘씩 풀어놓았다.


“흠... 뭔가 끝이 구리긴 하네요. 원래부터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다고 했죠? 혹시 딸도 피의자가 밀어버린 건 아닐까요? 딸이 죽었을 때도 침착했다면서요. 퇴원하자마자 김응철 죽인 것도 그렇고, 애초에 정상인이 아니고서야 전문의를 속이는 건 불가능하다면서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피의자 눈빛 봐요, 멍한 거. 사실 사이코패스, 뭐 그런 거였던 거죠. 물불 안 가리고 죽이는. 으~!! 소름 돋아!”


“교통사고는 경찰 측에서 이미 수사 종결한 건이야. 여자가 딸을 밀었다면 cctv에 안 찍혔을 리 없지. 운전자도 과속 중이었다고 하지만 고속도로도 아니고 딸이 제 발로 뛰어들었는지, 피의자가 밀친 건지 식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을 거야. 정신병원은....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백퍼 사이코 패스에요. 사이코패스."


"제형아, 내가 궁금한 건 '왜 딸이 죽은 지 거의 일 년이 다되는 시점에서 갑자기 미쳐버렸는가' 야. 뭔가 그 억눌린 감정을 촉발시킬 만한 사건이 있지 않았을까?”


“김응철이 비슷한 시기에 죽다 살아났다면서요, 그걸 우연히 본 거 아닐까요? 인정하기 싫었던 거지. 피해자인 자기 딸을 죽었는데, 정작 범인이었던 놈은 멀쩡히 살아서 돌아다니니까.”


“김연숙과 김응철은 기본적으로 거주지역도 활동반경도 아주 달랐어. 모녀는 사건 이후 칩거하다시피 했고, 김응철도 ‘정의구현당했다’ ‘죽을 날만 기다렸다’는 게시물 글이 맞다면, 사건 후 5년간 집이나 병원 그 이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거야. 혹시나 해서 B양이 사망한 병원에서 김응철의 의료기록도 조회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김응철을 마주쳤다면 그 자리에서 죽이려 했겠지, 왜 애꿎은 복지사에게 화풀이를 하겠어?”


“피의자가 입을 여는 게 제일 빠를 텐데... 영 기미가 없네요.”

“네 말대로 피의자가 사이코패스면 그 말조차 거짓일 텐데 어떻게 믿겠냐. 에휴, 난 이만 가봐야겠다."

"또 어딜요!"

"강남에서 복지사 만나기로 했다니까? 넌 ip 추적 결과 나오면 문자 해라.”

“예, 알겠습니다...”


인택은 퇴근시간 차가 막힐 것을 우려해,  지하철을 탔다. 하지만 이것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듯했다. 강남역에 도착한 인택은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에 욱여넣은 몸을 빼낼 수 있었다. 10번 출구로 나온 인택은 복지사가 말한 카페로 향했다. 하필 제일 사람도 많고 시끄러워 보이는 곳이었다. 인택은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복지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홀로 구석에 앉아,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거나 휴대폰의 액정을 반복적으로 껐다 켜고 있었다.


“말씀드린 형사 조인택입니다.”


인택은 그녀가 놀라지 않게 약간 거리를 두고 인사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인택 뒤를 살폈다. 김연숙 씨가 없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제가 곧 김연숙 씨 심문을 하러 가야 해서요.”


그녀는 김연숙 씨가 경찰서에 있다는 말에 크게 안도한 듯했다. 인택의 의도대로 였다. 여자는 최대한 이 자리를 빨리 끝내겠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편에 이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심장이 말했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