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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래 Jan 30. 2024

여행이 뭘까?


“너 어릴 때 가족여행 많이 다녔다며. 그런 거지.”

“그건 그냥 가족끼리 놀러 다닌 건데.”

“학교 다닐 때 천문 동아리 했다고 하지 않았어? 1박 2일로 많이 다녔다며.”

“응, 그건 그냥 친구들이랑 별 보러 다닌 거고. ㅋㅋ”

“무슨 소리야. 그게 다 여행이지, 아니면 뭔데?”

“그냥… 놀러 다닌 거? ㅋㅋ 그걸 딱히 여!행! 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와 닿지가 않네…”

“ ㅇ_ㅇ … ”


그의 얼굴에 전에 본 적 있는 표정이 스쳤다. 비엣젯 이코노미석에서 꼼짝없이 11시간 버티고 있었을 때였던가. 어느 집 개가 짖었을 때였던가.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행이라면 여행인 그것을 많이 다녔다.


봄이면 놀이공원 가고, 꽃놀이 가고. 여름이면 바다와 계곡과 강을 섭섭지 않게 다녔다. 가을엔 단풍 구경 겨울엔 눈 구경을 부지런히 다녔지만, 어려서 그랬을까? 그저 장소를 바꿔가며 놀고먹은 것일 뿐, 딱히 ‘여행’이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천문부 활동이 20대까지 이어져 10년 넘게 자연휴양림깨나 드나들었지만 ‘우르르 별 보러 간다’고 생각했지, 여행을 간다고 느끼진 않았다. 30대 이후 전쟁 같은 직장 생활 틈틈이 숨 쉴 구멍을 찾아 떠났지만 그건 그저 ‘휴식’이었을 뿐. ㅋㅋ


반면 ‘여행’이라는 두 글자는 거창한 무언가 같았고, 추상적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테마’가 먼저였다. 따뜻한 나라의 야외 수영장이든, 하얀눈 소복한 설산 트래킹이든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치앙마이를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달까.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고, 가끔 그 소신(?)을 밝혔다가 주변의 빈축을 사곤 했다.


남들이 여행이라 부를 때 나도 거리낌 없이 여행이라 칭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여행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여행’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는 팔자주름만큼이나 깊어져 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여행을 다녀 보고 있다. 테마나 목적이 앞서지 않아도 그냥 떠나는 것이 목표인 그것을 일단 ‘여행’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언젠가는 여행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감도 ‘이 경험, 이대로 괜찮은가’ 싶은 따끔함도 배낭에 고이 모시고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여행의 기억들을 뒤늦게 끄집어내 보는 ‘난중(여행)일기’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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