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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 Chuisle May 10. 2017

영화 속 '성' 불평등

문화상품과 페미니즘


 존 로크라는 영국 무역상은 1561년 아프리카로 항해를 하며 그의 여정을 흥미롭게 기록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집도 없는 야수들”이라 부르고서, “이들은 머리가 없고, 눈과 입이 젖통에 달려있다”라고 썼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그의 글이 서양에서 화자되는 전통적 아프리카 이야기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을 단 한 가지 이야기로만 반복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단편적인 이야기 그 자체가 되어버립니다.
-TED강연 'The danger of a single story'

 어릴적 북한에 대해 꽃제비, 가난과 같은 이야기만 들었던 저는 북한사람들에게도 휴대폰이 있고 깨끗한 옷이 있고 돌아갈 가정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는 커서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흑인 노예들의 삶에 대해서만 배웠던 저는 19세기 미국에 ‘흑인 자유민’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가나에서 온 방송인 샘 오취리는 우리나라의 사극드라마만 시청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한복만 입고 다니고 초가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단편적인 이야기는 편견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동등한 인간으로서 소통이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우리에게 이야기를, 어쩌면 단편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려주는 이야기꾼은 바로 문화상품일 것입니다. 문화상품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은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영화 성평등 테스트인 벡델 테스트를 고안해냈습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선 3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합니다.

1.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오는가?

2. 이 여성들끼리 대화를 하는가?

3. 이 대화가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닌가?

쉬워보이죠? 여자 2명이 길거리를 지나다니면서 남자 이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2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을 갖춘 영화들에서 이를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나봅니다. 한국 역대 흥행영화10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은 단 4편, <도둑들>, <광해>, <해운대>, <괴물>이었고 2015년 흥행 영화 22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도 8편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해운대’의 경우 쓰나미 때문에 위험에 처한 유진(엄정화)과 지민(김유정)이 전화 통화를 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 덕분에 테스트를 통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장 차별에 민감하고 영화산업이 성공적인 나라인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북미박스오피스가 선정한 2015년 흥행영화 100편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54편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사랑하고 인기있는 영화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2부>, <아바타>, <스타워즈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에게는 인증마크를 부여하는데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영화가 좋지 못한 영화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문화상품이 남성 위주로 제작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동화나 영화의 경우에는 어떨까요? 우리는 특히 아이들의 경우에 얼마나 이야기에 쉽게 영향을 받고 따라하게 되는지 알고있습니다. 최근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월트디즈니에서 제작한 작품들이 불평등과 가난에 대해 잘못 묘사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아이들에게 잘못된 현실을 전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젠더에 관해서 픽사와 디즈니는 평등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까요? 1986년에 창설된 픽사가 지금까지 제작한 애니메이션 15편 중 여자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는 2012년에 개봉한 ‘메리다와 마법의숲’한 편밖에 없습니다. 다른 14편의 영화에서 대부분의 여성캐릭터는 남성캐릭터만 있으면 칙칙할까봐 집어넣은듯한 장식적인 존재, 혹은 주인공의 아내나 첫사랑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픽사영화에는 여자아이들에게 모델이 될만한 여성캐릭터가 없습니다. 반대로 DISNEY의 경우는 대부분이 공주영화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유형의 영화들이죠. 이런 영화들은 여자아이들에게 가부장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여자아이들에게 모델이 될만한 주인공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화속 이야기들은 여성에게 아주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동화속이야기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멋진 왕자님들 중에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이 없습니다. 이야기 설정상 무작정 멋있다고 하지만 그 단조로움 안에서 어떤 개성이나 취향, 지성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어공주>에서 에릭왕자는 에리얼을 눈 앞에 두고도 딱 한 번 들었던 예쁜 목소리에 집착하여 자신 옆에 있는 에리얼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백설공주>에서 왕자는 공주가 혼수상태가 될 때까지 나타나지도 않다가 죽은 시체를 보고 사랑에 빠져서 키스를 합니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은 아버지의 실수 때문에 야수에게 넘겨지고 자신을 소유품으로써만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을 견딥니다. 벨 혼자 철저히 희생하여 야수와 사랑에 빠진 다음에야 알고보면 왕자님이었다 이런 이야기이죠. 디즈니 공주이야기의 공통점은 공주가 왕자를 찾아내는데 그 과정에서 항상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 희생이 본질인 것 마냥 그런 이야기들로만 구성되어있습니다.       -<나쁜 페미니스트(록산 게이)> 중


 미국여성 5명중 1명이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영화들이 이를 부추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젠더나 문화문제는 너무나 복잡해서 에세이 한 편이나 책 한권이나 텔레비전 쇼, 영화 하나에 압축해서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주제들이 교차되는 지점을 발견해 남녀가 정말 평등한 입장에서 등장하는 영화나 책들이 더 많이 나온다면 좀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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