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키지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읽고
효율의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완전한 세상
여기 완벽한 정신병동이 하나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방법은 켄 키지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펼치는 것이다. 이곳의 하루 일과는 완벽한 시간표에 의해 아주 부드럽게 진행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서 움직인다. 환자들은 아침이 되면 한 줄로 서서 간호사에게 약을 탄다. 약을 삼키고 검사를 받는다. 이어 환자들은 자신의 역할에 착수한다. 만성질환 환자들은 멍하니 의자에 앉아 바지에 오줌을 싸거나, 헛소리를 지껄이며 유령처럼 병동을 거닌다. 급성질환 환자들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닳고 닳은 카드를 꺼내 담배나 돈을 걸고 게임을 한다. 스피커에서는 매일 틀어 다 늘어져버린 오디오 테이프 하나가 재생된다. 오후에는 수간호사의 통솔 아래 둥글게 앉아 서로의 질환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가끔 운동장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한다. 저녁이 되면 모두가 약을 받아먹고 잠자리에 든다.
이 완벽한 시간표는 병동의 시간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구분되지 않는다. 모두 똑같은 나날일 뿐이다. 인디언 출신이자 소설의 화자가 되는 브롬든은 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병동을 '콤바인'이라고 부른다. 콤바인은 벼, 보리, 밀 같은 곡식을 베고 탈곡까지 하는 농기계다. 다양한 이유로 병동에 온 환자들은 콤바인에 탈곡되면 볏짚처럼 한데 묶여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는 병동을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부른다. 그것은 도살장이다. 인간들이 도축되어 인간성과 존엄을 상실하고, 레일에 연결된 쇠고리에 걸려 하나의 고기 덩어리처럼 취급된다. 브롬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곳의 환자들은 추수된 곡식이나 도축된 가축처럼 자유의지를 상실한다. 의욕과 고통마저 상실한 채 모두가 콤바인의 법칙에, 쇠고리에 걸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병동의 법칙, 거대한 콤바인은 하나의 의지에 의해 컨트롤된다. 그것은 바로 수간호사 랫치드이다. 브롬든은 이 여인을 거미라고 비유한다. 거미는 정교한 거미줄을 쳐놓곤 그 가운데에 앉아 자신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이든 미세하게 감지해낸다. 그리고 미세한 진동을 기다린다. 모두가 그녀의 거미줄에 걸려있다. 환자들뿐만이 아니라 동료 간호사들도, 심지어 의사와 병원의 운영진들까지도 이곳에 걸려있다. 거미줄에 작은 이상이 생기기라도 하면 재빠르게 달려가 단 번에 처리해버린다. 그녀가 원하는 건 완전한 거미줄에 모두가 질서 정연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병원의 운영진들도, 담당 의사조차도 그녀의 말에 순종할 정도다. 그 누구도 그녀의 의지에 왈가왈부하지 못한다. 눈에 띄는 환자는 수간호사의 먹이가 된다.
그녀는 어느 환자든 자신이 컨트롤하기 쉬운 형태의 환자로 만들어버린다. 순종적이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최종적인 행정결정을 내린다. 전두엽 절제술을 통해 환자를 감정과 이성적 판단을 제거해 텅 빈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환자들은 그녀를 절대적인 존재로 여긴다. 아침마다 주는 의문의 약을 군말 없이 삼킨다. 자신의 혈관에 투여되는 약물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매일 반복해서 틀어주는 다 늘어진 오디오 테이프에도 불평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병동에서 그녀는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시간의 흐름마저 조절한다. 벽시계를 떼어내 시곗바늘을 임의대로 조종하는 것이다. 빠르게 시곗바늘을 돌릴 때는 아침 식사, 약물 치료, 점심 식사, 약물 투여, 단체 토론, 취침 시간이 반나절만에 지나간다. 반대로 시곗바늘을 정지시켜 놓으면 병동은 얼어붙은 것처럼 단체로 그 시간과 행위 속에 정지해버린다.
이렇게 수간호사가 신처럼 군림하는 병동에 새로운 환자가 맥머피가 입원을 한다. 그는 교도소에서 지내기 싫어 거짓으로 정신 이상을 호소해 정신병동으로 수감된 범죄자이다. 그는 여느 환자와 달랐다. 자신을 발가 벗기고 체온 측정을 하려 하는 직원들을 호통 치며 돌려보내는가 하면, 환자복 입기도 거부하며 자신의 셔츠와 가죽재킷을 그대로 입고 다닌다. 수간호사에게 벌벌 떨며 순향 양처럼 복종하는 환자들을 우스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정신병 환자들의 우두머리인 하딩에게 찾아가 왜 바보도 아니면서 바보처럼 지내는지 묻는다. 그러자 하딩은 대답한다. "이 세계는...... 힘센 자들의 것이에요, 친구! 이 세계는 약한 자들을 잡아먹을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힘센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지요. 우리는 이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 세계의 법칙으로 받아들여야 해요."(p.111)
야수, 거대한 콤바인에 저항하다
맥머피는 정신병동, 아니 수간호사의 법칙에 의문을 품고 순종되길 거부하며 지낸다. 흑인 보조원들이 그를 발가벗겨놓고 체온 측정을 하려 하지만 호통을 치며 거부한다. 정해진 세면 시간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세면을 한다. 병동을 돌아다니며 양치를 한다. 환자들을 한데 모아두고 내기 도박을 일삼는가 하면, 환자복이 아닌 사각팬티를 입고 돌아다니고, 청소 시간에 환자들을 이끌고 텔레비전을 본다. 목청 높여 고래고래 노래를 부른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수간호사의 비위를 거스르게 된다. 수간호사는 알아서 순종하지 않는 맥머피에게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소설의 화자 브롬든은 도저히 길들여지지 않는 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는 지난 십 년간 이 병동에 왔던 그 누구와도 다르고, 그들이 밖에서 만난 적이 있는 어느 누구와도 다르다(...) 맥머피가 어떻게 콤바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콤바인은 그를 통제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것일 수도 있다."(p.156)
병동의 시스템에 저항하며 지내던 맥머피는 이윽고 병원 측에 정식으로 건의를 해 환자들을 이끌고 바다낚시를 떠나게 된다. 이 여행에 그는 두 명의 창녀까지 부른다. 그의 호탕한 기세에 잠시나마 수간호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맛 본 의사도 이를 허락하고 함께 동참한다. 맥머피는 병동 한구석에서 매일 조용하게 지내는 조지를 데려간다. 그는 해군 장교로 복무해 십자훈장까지 받았지만 병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물을 닦는 결벽증을 앓으며 일명 '문지르기 조지'라 불리고 있었다. 맥머피는 배에 올라탄 조지를 선장으로 임명한다. 그러자 조지는 그를 지배하던 결벽증을 씻은 듯이 잃어버리고 유능한 선장이 되어 바다를 항해한다. 말더듬이에 세상으로부터의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비빗은 그동안의 정신 질환은 없었던 것처럼 신이 난 듯 낚시를 하고, 함께 온 창녀 캔디를 사랑하게 된다. 맥머피는 함께 지내는 환자들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맥머피는 간헐적 정신 발작과 말 더듬는 증세를 가진 시펠트에게 묻는다. "시펠트, 당신은 어떻소? 당신도 발작을 일으키는 것 말고는 이상한 데가 하나도 없소(...) 당신도 용기가 있다면 바깥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러자 시펠트가 대답한다. "내게 용기만 있다면, 오늘 오후에라도 퇴원 허가증의 사인을 받을 수 있어요." "내가 이곳에 있고 싶, 싶, 싶, 싶어 하는 줄 알아요? 내가 오, 오픈카나 여, 여, 여자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사람들에게 비, 비웃음을 산 적 있나요? 없을 거예요. 당신은 몸집이 아주 크고 터프하니까! 나는 크지도 않고 터프하지도 않아요 (...) 그런데 당신은 우리가 좋아서 이곳에 있는 듯이 이야기하는군요..."(p.314) 환자들은 내내 크고 거대한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자신을 조종하는 '그것'때문에 정신병동에 올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이다. 하딩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봐요. 분명히 말하지만 몰라요. 나도 그처럼 어마어마한 건 본 적이 없으니까."(p.308)
브롬든이 '콤바인'과 '도축장'이라 부르는 것을 다른 환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콤바인이란 수간호사에 의해 움직이는 병동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그 자체라고 보았다. 세상 자체가 콤바인이며 수간호사는 그저 그것을 위해 일하고 있는 관리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불가항력적인 힘, 거대한 시스템, 세상의 질서. 모두 그것들에 시달려, 그것이 이끄는 대로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하딩은 맥머피에게 어느 날 고백한다.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사회의 집게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수백만 명이 입을 모아 '부끄러운 줄 알아. 수치. 수치를 알라고.' 하고 외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병에 걸린 거야. 사회는 조금이라도 별난 인간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취급해 버리거든(...) 확실히 사람을, 자네 같은 강한 사람을 미치광이의 길로 인도하는 데에는 다른 뭔가가 있어." 그게 무엇이냐고 맥머피가 묻자 그가 말을 잇는다. "그것은 우리야." "우리야 우리."(p.487)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세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수긍과 복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태도였다.
맥머피는 하딩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정신병동의 환자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입원해있다는 것이었다.(p.311) 세상의 콤바인으로부터 견디지 못해 자발적으로 '보다 작은' 콤바인으로 지배당하길 원해 병원으로 온 것이었다. 병동은 일종의 피난처인 셈이었다. 맥머피는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려는 동료 환자들에게 끊임없이 자유 의지를 일깨워준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건 브롬든이었다. 그는 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해서도, 병원이라는 콤바인의 눈에 띄지 않으려 일부러 귀머거리인 척 십 년을 지낸다. 그의 키가 2미터에 가깝지만 모두들 그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여긴다. 맥머피는 브롬든에게 그가 투명인간처럼 지낼만한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준다. 브롬든이 그 누구보다 크고 힘이 세며, 인디언의 후예이며, 지혜를 갖고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브롬든은 생각한다. "맥머피는 구리선과 크리스털로 미국을 네트워크화하고 있는 '콤파인'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거인이었다." p.421
이길 수 없는 게임 스네이크 아이스
맥머피는 병동의 모든 규칙이 부조리라 여기며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윽고 사건이 터진다. 환자들의 소독시간이었다. 병원 흑인 보조원들은 환자들을 수치스럽게 발가벗겨놓고 정체모를 액체들을 발라가며 소독한다. 이 절차에 예외는 있었으니 청결에 대해 극심한 결벽증이 있는 '문지르기 조지'만은 보조원들도 열외로 여겼다. 하지만 심술 굳은 보조원은 억지로 조지를 발가 벗기고 소독하려 했다. 조지는 청결의 문제로 극심하게 거부했지만 보조원은 오기가 생겼는지 소독을 강행하려 한다. 그때 맥머피가 발 벗고 나선다. "이봐, 그만하면 됐다고 하지 않았나." 평소 맥머피를 눈엣가시로 생각하던 보조원은 그에게 주먹을 날린다. 이윽고 맥머피와 보조원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여기에 브롬든까지 합세하게 된다. 어언 십 년 동안 투명인간을 자처하며 무감각하게 살아온 브롬든이 싸움에 앞장선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브롬든은 맥머피가 자신을 예전과 다른 존재로 만들었음을 실감한다.
싸움은 환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맥머피와 브롬든은 난동을 부린 벌로 '충격 요법'을 받게 된다. 충격 요법은 침대에 환자를 꽁꽁 묶어놓고 입에 재갈을 물려 아무 소리도 못 내게 만든다. 그리고 머리에 틀을 씌워 양 관자놀이로 강력한 전류를 흘려보낸다. 일종의 고문인 셈이다. 이 충격 요법 치료를 받게 되면 이 주일 정도를 멍한 상태로 보내게 될 정도로 '효과'가 세다. 수간호사는 맥머피가 자신의 모든 행동들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면 충격 요법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협박을 한다. 지금까지 했던 행동을 철회하고 순종적인 환자가 돼야 하는 조건이 담긴 제안에 맥머피는 헛소리는 집어치우라는 태도로 셔츠를 올려 배를 벅벅 긁으며 자리를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환자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외친다. "나는 당신 따위에겐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거요. 내가 굴복하기를 기대하느니 내 엉덩이를 핥는 게 나을 걸. 암, 그렇고말고!"p.457
충격 요법은 계속되지만 맥머피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병동에서 그의 위상은 점점 커져만 갔다. 환자들은 그를 우러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함께 충격 요법을 받던 브롬든은 맥머피가 저항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고문' 현장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길거리 도박판에서 노름꾼의 돈을 빼앗아가는 속임수, 일명 '스네이크 아이스'를 떠올린다. 스네이크 아이스는 주사위에 추를 달아 하나의 수만 나오게 조작하는 수법이다. 브롬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스네이크 아이스에는 이길 수 없노라고 되뇐다. 하지만 맥머피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계속해서 저항한다. 수차례의 충격요법 끝에 돌아온 맥머피는 환자들에게 마치 영웅처럼 추앙받게 되었다. 맥머피가 수간호사의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 돌아왔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들은 맥머피가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며 그를 탈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맥머피도 동료 환자들의 의견처럼 병원을 탈출하려 하지만, 자신이 하고 갈 일이 있다며 계획을 미룬다. 그것은 바로 빌리의 동정을 떼주는 일이었다. 그가 사랑했던 창녀, 캔디를 병동에 몰래 초대해 그와의 하룻밤을 만들여 주려 한 것이었다. 그는 이 일을 하고 병원을 나갈 것이라고 선포한다. 그 사이 수간호사는 맥머피 때문에 무너진 병동의 규율과 자신의 권위를 되찾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곳곳에 남은 맥머피의 존재감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는 맥머피에게 최종적인 치료를 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전두엽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분이 없던 그녀의 건의는 계속해서 무산되고 만다. 그러자 맥머피에게 직접적인 제안을 하기까지 이른다. "그것을 잘라낸다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p.463 하지만 맥머피는 그녀를 조롱하며 하품을 하고 윙크를 하고 트림을 한다.
맥머피는 진짜로 창녀들을 병동에 초대한다. 야간 근무자까지 마리화나와 술로 구워삶아 병동을 연회장으로 만든다. 환자들은 맥머피와 진탕 술파티를 벌이고, 빌리를 캔디와 한 방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탈출을 앞둔 순간 동료 환자들에게 함께 병동을 나가자고 제안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한다. 병동에서 나간다고 하더라도 더 똑같은 콤바인이, 오히려 더 거대한 콤바인이 자신들을 정신병자로 만들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브롬든에게도 함께 가자고 제안하지만, 그는 맥머피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수간호사의 손아귀로 돌아가는 병동에서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을 거라며 거절한다. 먼 길을 가야 하니 잠시 눈을 붙였다 동이 트면 탈출하겠다던 맥머피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 그는 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한다. 이른 아침, 수간호사는 광란의 파티 현장을 고스란히 목격하게 된다. 맥머피는 처음으로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수간호사는 급히 인원점검을 하다가 빌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급히 굳게 닫힌 문 하나를 열게 되고 그곳에 캔디와 함께 누워있는 빌리를 발견하게 된다. 환자들의 모든 걸 알고 있던 수간호사는 빌리의 가장 극심한 트라우마를 건든다. 이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고 빌리에게 말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빌리는 괴로워하다가 모두가 한눈 판 사이 목을 그어 자살을 한다. 빌리가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환자들은 충격에 빠진다. 이윽고 맥머피는 수간호사에게 달려가 목을 조른다. 환자들은 아무도 맥머피를 말리지 않았다. "우리로서는 맥머피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맥머피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런 행동을 강요한 사람은 수간호사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였다."p.505 맥머피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에 제지당했다. 그리고 절규의 소리를 내지른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죽음 외에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할 때 지르는 마지막 비명이었다."p.505
맥머피의 마지막 절규 때문일까, 병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맥머피의 숭고한 저항, 빌리의 부당한 죽음으로 완전한 세계의 정당성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비치던 수간호사의 권위는 무너졌고, 병동의 법칙도 부조리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환자들은 하나둘 의사의 치료 증명도 받지 않은 채 퇴원을 감행했고, 또 다른 환자들은 병원에 요청해 다른 병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맥머피와 어울리던 환자들은 단 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 떠나게 되었다. 마침내 맥머피는 얼이 빠진 식물인간으로 병동에 돌아오게 된다. 수간호사가 그토록 원했던 바람대로 행정절차를 통해 합법적으로 전두엽을 제거당한 것이었다. 그를 보자 남아있던 환자들은 말한다. "뭐야, 수간호사는 이런 걸 가져다 놓고 우리를 속일 셈인가? 이건 맥이 아니야." "비슷하지도 않아." p.509
브롬든은 맥머피가 더 이상 기세등등하게 자유를 부르짖던 저항가가 아니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만약 저 사나이가 삼십 년이든 누워 수간호사의 체제에 도전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견본으로는 결코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p.510 브롬든은 결심이라도 한 듯 바보 천치의 얼굴로 멍하니 있는 맥머피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러 죽여버린다. 그리고 편안하게 두 눈을 감겨준다. 브롬든은 맥머피가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일, 병원을 탈출하는 일을 자신이 감행한다. 욕실로 향해 커다란 제어반 상자를 번쩍 들어올린다. 맥머피는 브롬든에게 그는 벙어리 같은 존재가 아니며 이 정도는 거뜬히 들어올릴 수 있는 커다란 존재라고 누누이 말해온 터였다. 처음으로 투명인간이 아닌 '커다란 존재'가 된 브롬든은 제어반을 창가로 힘차게 던진다. 그리고 병동을 나서 캐나다로 향한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켄 키지가 스물일곱 되던 해인 1962년에 출간한 소설이다.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그의 유년시절의 행적이 깊이 배어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의 창작 과정에 등록해 월러스 스테그너의 지도를 받을 무렵, CIA 주관으로 멘파크 재향군인 병원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곳에서 약물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목격하고, 향정신성 약물에 중독된 환자들을 마주하고 그들을 인터뷰했다. 하지만 약물중독자들과의 인터뷰가 그에게 작품의 영감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마주했던 정신병동은 그저 세상의 표본에 불과했다.
켄 키지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막 세계 2차 대전과 베트남 전이 끝났을 무렵이었다.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가 보여준 것은 인간성의 상실뿐이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신앙의 자리를 이성이 차지하게 되면서, 인간에게 신앙의 대상은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신성한 국가가 보여준 것은 양차 대전과 홀로코스트, 베트남 전쟁을 통해서 보여준 인간 존엄의 상실이었다. 반면 미국은 승전국으로 때아닌 호황을 누리며 경제대국으로 성장해간다. 물질적 풍요와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인간은 더욱더 소외되어 갔고 착취되어 갔다.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기성세대에 대한 회의주의가 팽배했다.
켄 키지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묘사하는 완벽한 정신병동은 그가 목도한 시대의 축소판이나 다름없었다. 개개인의 개성과 인간성을 무시한 채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몰았고, 잔인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젖어들게 했다. 국가적인 효율성만이 강조된 사회 풍조 속에서 인간은 소모품처럼 희생되어 갔다. 소설 속 화자는 인디언의 혈통을 가진 브롬든으로, 그는 정신병동의 강압적인 권력을 체감할 때마다 인디언의 가치와 풍습을 강압적으로 말소하고 미국적으로 만들려던 미국인들을 떠올린다. 인디언은 인디언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살아가려면 강제로 미국인이 되어야만 했다. 세상은 인디언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정신병동은 거부할 수 없고, 어찌해볼 수도 없는 권력 그 자체로 묘사된다. 병동에 수감되면 병원에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정해진 시간에 세면을 하고, 청소를 하고, 영문도 모르는 약을 받아먹고, 약물 치료를 하고, 단체 상담을 하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를 보내다 잠에 든다. 병동을 지배하는 수간호사는 권력의 주체이다. 어느 날 이 절대적인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이 나타난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하고, 각종 범죄에 연루되는 등 거친 인생을 살아온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기 싫어 정신병을 주장하며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는 야수 같은 행동으로 정신병동의 부조리에 저항한다.
그렇다면 맥머피가 부르짖던 자유란 무엇일까. 체제로부터의 거부, 새로운 가치관의 모색이다. 때문에 이미 한 세기 전, 유럽 대륙을 오래된 기독교적 도덕에서 탈피시키고 이성의 시대로 이끌었던 니체의 허무주의가 미국의 젊은이들을 매료시킨다. 니체의 허무주의 사상의 골자는 보편적인 도덕과 가치관에 대한 거부이다. 맥머피는 바로 니체의 허무주의적 관점에서 세상의 축소판인 병동을 조소하고 야유했다. 하지만 맥머피가 구체적으로 어떤 자유를 갈망했는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끝내 병원의 권력 앞에 처참하게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켄 키지는 이 거대 권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패를 가진 사기도박꾼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소설 밖, 켄 키지의 행보를 통해 맥머피가 부르짖던 자유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켄 키지는 스스로가 정신병동에 저항했던 맥 머피처럼, 세상에 저항하고 자유를 추구하며 살았다. 마리화나를 소지했다가 경찰에 체포되는가 하며, 수차례 마약법을 위반해 경찰에 쫓기고 자살을 가장해 도망 다니고, 형무소에도 수감된다. 또한 소설의 성공으로 명예와 부도 거머쥐며 사회적인 혁명을 시도하기도 한다. 1963년 캘리포니아의 라혼다의 넓은 토지를 매입하여 히피 코뮌을 만든다. 히피란 기성의 가치관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제도를 거부하며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그의 히피 코뮌은 실패로 끝이났다. 히피는 논리적 귀결은 사회적 유토피아에 불과했다. 하나의 사회가 유지되려면 사회를 지키는 법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소속감도 주고 통제할 수 있는 구속력도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히피는 법과 질서 그 자체를 부정하는 공동체였기에 공동체 내 구성원들에게 어떠한 구속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히피 코뮌 내에서도 그들은 자유롭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던 사회주의 혁명처럼 히피 운동은 인간의 본성을 간과했기에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켄 키지가 시도했던 히피 운동으로부터 소설 속 맥머피가 추구하던 인간의 자유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다. 맥머피가 추구하던 자유란, '사회적인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하고 싶은 걸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기조(Francois Guizot, 1787-1874)는 자유란 아무것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야만으로의 회귀라고 주장했다. 정치체제도, 법도, 규칙도, 질서도, 관습도 없는 야만의 상태가 온전한 의미의 자유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러한 완전한 자유에 다다를 수 없다.
켄 키지는 자신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통해 그러한 자유는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유를 부르짖던 맥머피가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꿈꾸고 갈망하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자유를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켄 키지의 행보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다 보면, 완벽한 자유에는 닿을 수 없을지라도 최소한 가까워질 수는 있는 것이다.
맥머피는 우리의 가슴속에 거대한 부조리에 의해 희생된 자유의 상징, 자유의 순교자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