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사람, 내게 맞는 사랑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대한 단상

by 이우

내게 맞는 사람, 내게 맞는 사랑





- 아리스토파네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

- 프랑수아 사강,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

- 그렇다면 사랑이란...






DSC01710.jpg 사랑이란 무엇일까. 오귀스트 로댕 박물관에서 ©2017, leewoo




사랑이란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신화를 하나 만들어냈다. 그 신화는 다음과 같다. 본래 태곳적 인간은 ‘불완전’하지 않은 완전한 존재였다. 머리는 두 개였고, 심장도 두 개, 팔과 다리가 각각 네 개였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두 명의 인간을 합쳐놓은 형태였다. 그래서였을까, 인간은 강인했다. 강인해서 오만했다. 오만해서 신들마저 경멸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제우스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인간을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두 동강 내버린 것이다. 그때의 형벌로 인해 인간은 머리 하나, 심장 하나를 가진 반쪽짜리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반쪽이 된 인간은(우리는) 나약하고 불완전해졌다. 그때의 형벌 때문에 인간은 결핍이 생기고 말았다. 저 먼 옛날 떨어져 나가버린 반쪽에 대한 결핍, 그리고 그리움. 아리스토파네스는 바로 이 그리움을 채우려는 욕구와 과정이 바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그는 본래의 인간이 남녀가 합쳐진 형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남자와 남자가 함께 있던, 여자와 여자가 함께 있던 인간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당시 만연해있던 동성애를 포괄하는 사랑에 대해 정의한 셈이었다. 참으로 희극 작가 다운 발상이다. 정리하자면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은 언젠가 잃어버린 본래의 짝을 찾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본래 하나였던 영혼의 반쪽. 운명의 반쪽을 찾아가는 사랑. 실로 로맨틱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 영혼의 반쪽을 찾을 수 있을까. 과연 그 반쪽을 알아볼 수나 있기는 할까. 어쩌면 반쪽을 지나쳤던 것은 아닐까. 다가가지도 못했던 그때 그 사람이 바로 반쪽은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상대가 반쪽이라는 것도 모른 채 다시 이별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의 신화는 아름다우면서도 필연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다. 누가 자신의 반쪽인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오늘날 굳이 신화를 믿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얼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특히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는 신화를 믿기에는 너무 이성적이고, 그렇다고 사랑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 해도 그리 명쾌하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노래한 시나,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을 즐겨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신화로는 좀처럼 믿기 힘든 사랑의 형태들이 은연중에 드러나있으니 말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마따나 우리는 예술에 대한 환상으로 문학과 삶이 밀착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신화를 믿지 않으니 사랑을 헤아려보기 위해 책을 펼쳐보기로 하자. 이번에 펼칠 책은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이다.



DSC08728.jpg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017, leewoo



무대는 프랑스 파리이다. 주인공은 서른아홉 살의 여인 폴. 그녀에게는 오래된 연인이 있다. 푸근함을 선사하는 중년의 로제. 그는 사업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점심을 먹다가도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장거리 출장을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메지라는 육감적인 여인과 외도를 즐기느라 더 바쁘다. 폴은 이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있는 로제를 믿어준다. 외도하러 가기 위해 약속을 깨는 그에게 폴이 말한다. “당신은 이기주의자가 아냐. 당신은 일 때문에 바쁜 거잖아.” p.31 로제도 바람을 피우지만 여전히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폴…… 알다시피 당신 없이는, 폴…….” 그는 어리광을 피우듯 그녀에게 몸을 맡기며 말한다.



폴은 하루하루를 외롭게 보냈다. 울리지 않는 전화벨, 혼자 보내는 주말,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그러던 어느 날, 스물다섯 살의 젊은 청년 시몽이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하기 시작한다. “언제 저와 점심 식사를 하지 않으시겠어요?” ‘순간 그녀는 그를 챙겨 주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는 그녀 나이의 여자에게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기에 꼭 알맞은 그런 부류의 청년이었다.’(p.24) 그리고 로제에게 연락이 없는 사이, 그녀는 약속을 받아들이고 교외로 데이트까지 나가게 된다. ‘산책의 동반자든 인생의 동반자든,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언제나 애정을 느꼈다.’(p.45) 외로웠던 그녀는 그에게 점점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DSC01950.jpg 파리의 어느 거리에 있던 벽보. ©2017, leewoo



시골에서 주말을 보내자고 했던 로제는 폴 대신 메지와의 주말을 택한다. 폴은 또다시 혼자 남겨지고 우연히 시몽을 만나게 된다. 시몽은 폴에게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그녀를 벽에 밀치고 욕망하고 갈망하듯 그녀의 귓가에 그녀의 이름을 속삭인다. 그녀는 두려움과 부담을 느끼며 제발 이러지 말아달라며 자리를 뜬다. 다음날, 그는 어제 일을 정중하게 사과하며 그녀에게 좋은 공연이 있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 것인지 자문한다.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p.57)



거짓된 호감의 표시, 그리고 거짓에 대한 확신. 그녀는 자신이 로제를 사랑하는 것인지 의심한다. 그렇다면 과연 브람스는 좋아하는 것일까. 그녀는 공연을 보러 가기 전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들어보지만 좀처럼 귀에 들리질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로제는… 데이트를 승낙하고 콘서트장에 간 폴은 시몽에게 털어놓는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브람스에 대한 불확실은 시몽에 대한 불확실이었다.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 p.59 시몽은 그런 사내였다. 그녀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그저 폴이면 되는 것이었다. 시몽은 그녀를 갈구하고, 그녀는 시몽이 끌리지만 불확실할 뿐이다.



로제의 외도는 계속되었고, 그녀는 시몽에 대한 불확실한(거짓의) 호감에 점점 확신을 키워갔다. 메지와 잠자리를 갖던 로제는 어느 날 버럭 화를 낸다. 그녀가 자신에게 ‘자기’라고 부른 것이었다. “당신에게 난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야. 편리하고 일시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그러니 나를 ‘자기’라고 부르지 마. 특히 아침에는 말이야. 밤에는 아직 참고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로제, 난 당신을 사랑하는걸.” “아! 그렇지 않아.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마.”(p.119) 로제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놓곤 거북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리고 폴을 떠올렸다. 옷을 챙겨 입은 그는 폴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향했다. 하지만 폴은 이미 시몽과 사랑을 싹 틔우고 있었다. 로제는 이제 버림받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로제를 떠난 폴은 행복했을까. 행복한 사랑을 찾아 시몽에게로 갔던 그녀였지만, 그녀 역시 불안한 나날들을 보낸다. 시몽은 자신의 본업과 일상도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의 전부를 폴에게 헌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몽은 폴이 곁에 있었지만 술에 전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무슨 일이야?” 보다 못한 폴은 그에게 묻는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 언젠가 당신이 나를 쫓아내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뿐이야. 그리고 나는 몸을 웅크린 채, 때로는 희망을 품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뿐이라고…….”(p.124)



DSC07502.jpg 그렇다면 로제를 떠난 폴은 행복했을까. ©2018, leewoo



시몽과 폴의 사랑에 불협화음이 일기 시작했다. 시몽은 폴에게 미쳐가고 있었고, 로제는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을 앓기 시작했다. 열네 살 차이가 나는 그들을 바라보는 주위 시선 때문이었다. 얼굴에서 하루하루 늘어나는 주름을 발견하는 폴은 한창 젊은 시몽을 바라볼 때면 그런 감정은 걷잡을 수없이 커져만 갔다. 한편 그녀는 시몽과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배제한 채 그와의 사랑을 즐겼다. 뭇 여성들에게 사랑의 시선을 받는 그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시몽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한다. “나의 희생양. 나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나의 귀여운 시몽!”(p.139)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저녁 레스토랑, 폴과 시몽은 로제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는 낯선 여자와 함께 있다. 저녁 식사가 그들은 흐르는 춤곡에 맞춰 각자의 파트너와 춤을 췄다. 선율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사이, 로제는 손을 뻗어 폴을 건드린다. 찰나의 감촉, 그리고 이어지는 갈망하는 듯한 시선. 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폴은 그 순간 무언의 언어를 읽어낸다. 그날 밤, 폴은 시몽과의 잠자리를 거절하고 이튿날 로제에게 연락을 한다. ‘당신을 만나야겠어. 더 이상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 전화해 줘.’ 그들은 오랜만에 재회를 한다. “난 너무 불행했어.” “나도 그랬어.”(p.148) 로제와 폴의 첫마디는 이러했다.



로제는 그간 바람을 피웠던 것을 사과하고, 폴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한다. ‘그녀는... 익숙한 그의 체취와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자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p.149) 그들은 사랑을 다시 시작한다. 폴은 시몽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다시 옛사랑에게로 돌아온 폴. 그렇다면 폴은 행복한 사랑을 하게 되었을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폴을 아껴주고, 꽃을 정성스레 가꾸듯 애정과 사랑을 준 것은 시몽이었다. 로제는 예전 그대로의 로제일 뿐이었다. 어느 저녁 8시,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들은 폴은 수화기를 들지 않고도 로제가 어떤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다. “미안해. 일 때문에 저녁 식사를 해야 해. 좀 늦을 것 같은데…….”(p.150)




DSC05078.jpg 오귀스트 로댕의 <입맞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정원 ©2017, leewoo



그녀의 사람도, 사랑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녀는 잠시 자신에게 ‘맞지 않는’ 브람스를 잠시 좋아하는 척 스스로를 속였던 것뿐, 다시 자신에게 맞는 사람에게로, 맞는 사랑에게로 돌아왔다. 브람스가 오히려 자신의 취향을 더 확고하게 알게 해주었던 것이다. 시몽은 ‘귀여운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이 폴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제 문학을 통해 삶을 바라볼 차례다. 그녀의 이야기는 의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사람이 이끌리는 사랑은 싱그러움과 뜨거움보다는 익숙함과 편안함인 것일까. 결국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 메타포는 무언가와 닮아 있지 않던가. 바로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의 신화 말이다.



여기서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랑의 신화는 다르다고. 아리스토파네스의 사랑은 영혼의 반쪽을 찾는 일이라고 했는데, 로제의 경우는 다르지 않느냐고. 그녀는 행복해진 게 아니라 그저 예전 그대로 기다림과 외로움으로 돌와왔을 뿐이라고.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는 말했다. 사랑은 저 먼 옛날, 제우스로부터 형벌을 받기 전처럼 그저 두 몸이 한 몸처럼 영원히 함께하며 사는 것이라고. 그것이 행복하다고 말한 적도 없고, 그것이 기다림도 외로움도 없을 것이라 하지 않았다. 하기야 영혼의 반쪽과 함께 한다 해도 이미 갈라져 붙어버릴 수 없으니, 그 공백이 허전한 건 어찌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이쯤 되면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도 오늘날까지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그리스 신화가 싫다면, 사강의 사랑의 메타포를 떠올리자. 우리는 아직도 반쪽을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맞는 사람은, 맞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야 브람스를 한번 좋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DSC04677.jpg 그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야 브람스를 한번 좋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017, lee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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