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또 다른 이름, 메타포

삶은 메타포의 향연

by 이우

삶의 또 다른 이름, 메타포



- 시인과 우편배달부, 메타포를 이야기하다

- 경쾌한 우정이야기, 그 속에 담긴 메타포

- 메타포란 무엇인가



V1700251p_01.gif.jpeg 영화로 개봉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영화 <일 포스티노>는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순수한 우정을 아름답게 그려내 개봉한지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호불호도 거의 없을 정도로 뭇사람들의 인생영화로 남아있다. 이 명화의 원작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원형’인 소설은 어떠할까. 소설도 영화 못지않게 아기자기하고 경쾌하다. 스카르메타가 칠레 태생의 작가이기 때문일까, 소설은 남미의 경쾌한 정서를 닮아 문체도 가볍고 호흡도 짧아 부담 없이 읽기 좋다. 하지만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은 그 속에 담긴 ‘원형’인 메타포만은 그리 가볍지 않다. 근데 메타포가 무엇이냐고?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라는 작은 해안가 마을, 그곳에 순수한 시골 소년 마리오 히메네스가 산다. 그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자전거에 올라타 우편 배달을 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오직 한 사람의 수취인을 위해서만 편지를 배달한다. 이 작은 마을에 훗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이미 유명 시인이 된 네루다에게는 세계 각지에서 편지가 날아온다. 양도 엄청나서 이슬라 네그라의 우체국에는 오직 네루다만을 위한 우편배달부가 있을 정도다. 아버지를 따라 어부가 되기는 싫고,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마리오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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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네루다의 ‘전용’ 우편 배달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네루다의 명성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다름 아닌 네루다의 시집 한 권을 사서, 그의 헌사를 받는 것이었다. ‘나의 둘도 없는 벗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파블로 네루다.’ 이 헌사가 적힌 네루다의 시집 한 권이면 여자들을 쉽게 꼬실 수 있을 거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는 첫 월급으로 과감하게 시집 한 권을 산다. 부푼 가슴을 안고 시인에게 찾아간다. “백만 불짜리 헌사를 부탁드립니다.” 너무나 유명해 바쁘기만 한 네루다는 시집에 무심하게도 ‘파블로 네루다 드림’이라고만 써준다. 마리오는 고작 이것으로는 자신이 유명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낙담하고 만다.



마리오가 생각했던 시집은 자신을 관능적인 꿈의 세계로 데려다줄 티켓 같은 것이었다. 그는 똑같은 시집 한 권을 사서 ‘다시’ 헌사를 받을 계획을 꾸민다. 하지만 상사 코스메는 같은 책에 두 번 헌사를 받는 법은 없다며 그를 일깨워준다. 낙담한 마리오의 손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 시집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인기 있는 남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던 그 시집을 무심결에 읽어내고 만다. 예기치 못한 이 독서의 경험은 우편배달부 네루다를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한다. 어느 날,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고백한다. 자신도 시인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제기랄, 나도 시인이 되었으면.” “제가 시인이면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할 수 있잖아요.”(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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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리오는 시인에게 ‘메타포(은유)’에 대해서 묻는다. “그게 뭐죠?”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좋아. 하늘이 울고 있다고 말하면 무슨 뜻일까?” “참 쉽군요. 비가 온다는 거잖아요.” “옳거니. 그게 메타포야.” “그렇게 쉬운 건데 왜 그렇게 복잡하게 부르죠?” “왜냐하면 이름은 사물의 단순함이나 복잡함과는 아무 상관 없거든...”(p.28) 네루다는 지친 태도로 메타포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곁들인다. “선생님은 온 세상이 다 무엇인가의 메타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p.32) 시인은 그의 예리한 질문에 놀라고 만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우편배달부가 떠나 사라질 때까지 문 앞에서 그를 배웅했다. 그렇게 우편배달부와 시인은 ‘메타포’ 하나로 친구가 되었다.



메타포를 알게 된 마리오는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된다. 베아트리스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는 대문호 단테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 베아트리체를 떠올리는 대목으로 이제 우편배달부가 시인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마리오는 시인의 시를 인용하면서까지 사랑을 고백하지만 사랑은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사랑의 열병을 앓던 마리오는 시인을 찾아간다. “당신이 제게 시집을 선물했고, 우표를 붙이는 데에만 쓰던 혀를 다른 데 사용하는 걸 가르쳐줬어요. 사랑에 빠진 건 당신 때문이에요.” 하지만 시인은 시를 함부로 표절하라고 시집을 준 게 아니라며 화를 낸다. 그러자 마리오가 말한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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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되고 변해가는 것은 마리오뿐만이 아니었다. 은둔 시인 네루다는 개인적인 시구와 심상 속에서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와 국가, 그리고 사회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 그리고 억압의 ‘메타포’를 발견해 그곳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다. 그는 사회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산당의 지명으로 대통령 후보가 된다. 후보 자리를 훗날 대통령이 되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넘기고 정권 교체에 일조한다. 그리고 이듬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새로운 정부의 파리 주재 대사로 임명된다. 하지만 그는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도 시인으로서 우편배달부와 우정을 나누던 작은 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그리워한다.



어느 날, 마리오에게 소포가 도착한다. 파리에서 온 선물은 다름 아닌 녹음기였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이슬라 네그라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녹음해달라고 부탁한다. “자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친구들은(...) 내가 망령 든 우스꽝스러운 늙은이라 생각할 테니.”(p.106)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에, 한 국가를 대변하는 주재 대사가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우편배달부뿐이었다. 마리오는 해안가 마을의 메타포를 정성스레 수집한다. 종루의 바람소리, 울려 퍼지는 종소리, 해변가의 파도 소리, 갈매기 울음소리, 자신의 아들 울음소리... 그리고 잘못 녹음된 자신의 욕설과 시인에게 바치는 자작시까지...



결국 네루다는 자신이 그리워하던 ‘메타포’의 세계로 돌아온다. 하지만 공산당 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무너지자 그는 반정부 인사로 낙인찍혀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네루다가 정부에게 불온적인 ‘메타포'로 취급된 것이다. 그는 감옥과 다름없는 집에서 점점 병들어간다. 스웨덴과 멕시코에서 망명지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떠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고 만다. 곁에서 마음 아파하던 마리오는 문예지에 시인으로 당선되어 그에게 시를 헌정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발표도 나기 전에 네루다는 숨을 거두고 만다. 임종 직전에 네루다는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린다. “하늘의 품에 휩싸인 바다로 나 돌아가노니(...) 삶은 스러지고 피는 침잠하려니.”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메타포’ 속에서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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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는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시인을 동경하며 그의 ‘메타포’ 주위에 맴돌던 그 역시 정부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군부에게 장악된 우체국을 떠나던 마지막 날, 그는 무심결에 사회주의의 ‘메타포’인 ‘마르크스’와 ‘체 게바라’의 초상을 챙겨 나온 것이었다. 그것 하나로 그 역시 시인처럼 불온적인 ‘메타포’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새벽,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그를 연행해간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종적을 감춘다. 훗날 문예지에서 발표가 난다. 하지만 당선자의 명단에는 마리오는 없었다. 세상에 나아가려던 그의 메타포는 그저 순수한 메타포로 남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어리숙한 메타포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만다.



메타포로 이어졌던 시인과 우편배달부의 우정 이야기. 그들의 삶에는 심상이 가득했고, 낭만이 넘쳤다. 메타포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메타포를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 메타포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메타포로 사랑을 했다. 메타포로 우정을 쌓았으며, 메타포로 미숙하게나마 성장했다. 메타포로 시를 썼고, 메타포로 노래를 했다. 그리고 메테포로 인해, 메타포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시인과 우편배달부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였다. 이슬라 네그라의 종루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 파도와 바람, 갈매기와 사람 소리... 사라진 것은 그들만이 소유했던 종루에 울려퍼지는 종소리, 파도와 바람, 갈매기와 사람 소리였다. 그것은 ‘그들만의 메타포’였다.



‘온 세상이 다 무언가의 메타포’라던 마리오의 깨달음을 떠올릴 때가 됐다.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는 말했다. 사람이 죽는 것은 그가 보고 느낀 하나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가 말하는 ‘하나의 세계’는 바로 한 사람이 인식한 고유한 메타포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시를 쓰지 않아도 모두 시인이다. 때론 햇살은 행복이 되고, 종소리는 고향의 정취가 되며, 꽃은 사랑하는 여인이 되고, 몰아치는 파도는 자유가, 어두운 바다는 죽음이 되니 말이다. 바로 그 온갖 메타포의 총체가 우리의 보고 느끼고 인식한 삶, 우리 전부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고유한 메타포를 만들어가고 인식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메타포로부터 태어나서 메타포 속에서 죽어간다.



우리는 어쩌면 이 불가해한 세상에서 속에서 잠시 만물을 메타포로 빌려 쓰다 가는 건 아닐까. 세상에 남는 것은 우리가 빌려 쓴 세상에 대한 채무, 메타포뿐이다. 하지만 온갖 심상으로 가득 찬 메타포는 언제나 아름답다. 그래서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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