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AI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본격적인 AI의 시대가 열렸다. 챗GPT는 연일 화제이다. 이 챗GPT는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가진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 무려 미국에서는 의사와 변호사 자격시험에 버젓이 통과하는가 하면, 대학가에서는 이 챗GPT가 대신 써 준 리포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서는 이 챗GPT가 쓴 논문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은 완벽한 단계가 아니라 버젓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유해하거나 편향적인 답을 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세돌과 알파고의 격전에서 드러난 것처럼, AI의 사고력이 인간을 뛰어넘을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 AI의 시대를 전망해 볼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정이>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315년으로, 지금으로부터 대략 290년 후의 이야기이다. 과연 3세기 후 AI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되어 있을까.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정점에 다다른 AI의 기술 발전을 그리고 있다. AI는 이제 인간처럼 자아를 인식하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고도로 발전한 로봇기술과 생명공학은 AI를 인간과 다름없는 휴머노이드로 만들어냈다. 외형적으로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경계가 모호해 주인공은 직장 상사가 AI인데도 알아채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완벽한 AI 휴머노이드의 발전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의 핵심적 주제는 바로 'AI 인간 복제' 기술이다. 한 인간과 똑같이 생긴 AI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뇌 데이터를 복제해 삽입하면, 똑같은 AI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극 중 AI의 기술 개발 및 생산을 총괄하는 다국적 기업 크로노이드의 회장은, 자신의 젊은 시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만들어 회사 요직에 앉혀놓는다. 그가 AI라는 걸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다. 본인조차 자신이 AI임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이는 설정상 오류로 보인다. 아무리 완벽한 AI 휴머노이드라 하더라도 인간과 같은 생체 기능은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극 중 주인공인 서현을 맡은 故강수연 배우의 딜레마도 이처럼 극도로 발달한 AI 기술로 인해 발생한다. 바로 그녀의 엄마가 정이(김현주 배우)가 복제되어 AI 제품으로 개발된 것이었다. 정이는 살아생전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진 군인이었는데 전투 중 사망하게 된다. 수십 년 후, 크로노이드는 과거 최고의 군인이었던 그녀의 뇌 데이터를 복원하여 최강의 전투 휴머노이드를 만들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구 직책을 서현이 맡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똑같이 생긴 휴머노이드를 매일 같이 전투 테스트 해야 했다. 엄마는 매일 온갖 부상과 총상을 입고 소리 지르다 아파하며 죽고 이내 폐기되었다.
영화의 스토리보다 내가 주목한 건 AI의 인격 문제였다. 과연 복제된 정이는 서현의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정이는 어린 시절 서현의 모든 기억도 갖고 있으며, 전원이 켜질 땐 자신이 로봇인지 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전투 테스트 속에서는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서현을 떠올리며, 죽음을 앞두고는 딸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아파한다. 서현은 엄마를 테스트하며 매일 동요한다. 보고 싶었던 엄마가 매일 고통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니 말이다. 영화 속 사건의 발단은 서현이 엄마가 고통받는 걸 참지 못해 테스트 속에서 해방시켜 주며 발생하게 된다. 과연 정이는 진짜 정이였을까.
서현이 정이를 진짜 엄마로 여겼던 것처럼, 우리는 앞으로 AI가 발전해 감에 따라 AI 인식의 딜레마에 봉착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반려견을 통해 살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저 먼 옛날, 본래 늑대과의 동물이었던 개는 인간과의 유대관계를 쌓는 걸 생존방법으로 택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개를 단순한 동물로 여기지 않는다. 삶의 동반자이자 가족 구성원 중 하나로 인식한다. 2021년에 미국의 도리스라는 사업가는 자신의 반려견에게 55억 원의 유산을 남겨주기까지 했다. 이는 반려견이 인간의 지위까지 올라왔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와 일상을 함께하는 과연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영화 <HER>에서는 AI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테오도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만다는 음성으로만 존재하는 AI이지만, 테오도르는 그녀와 일상을 함께하다 보니 그녀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이처럼 만일 사장의 비서 역할을 하는, 주부의 가정일을 돕는, 환자의 병시중을 드는, 혹은 독거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AI가 등장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게 될까. 가족과 다름없는 AI가 고장 나 수리를 하러 갔는데 기술자가 AI를 막대하는 걸 본다면, 혹은 교통사고로 완전히 산산조각 나서 울고 있는데 상대방이 덤덤하게 얼마냐고 변상하겠다고 하면 어떨까.
우리나라에는 2019년, 동물보호법(법률 제16075호)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법령의 1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이 법은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의 방지 등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ㆍ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동물의 생명보호, 안전 보장 및 복지 증진을 꾀하고, 건전하고 책임 있는 사육문화를 조성하여,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함양하고 사람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AI보호법이 시행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AI와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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