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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09. 2023

공간 소유하는 방법, 노이즈 캔슬링

노이즈 캔슬링을 해야 제가 공간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만?

2017년, 이란을 홀로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티켓을 보여주고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승무원이 나를 제지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통로에서 비켜서 멀뚱멀뚱 다른 승객들이 탑승하는 걸 지켜만 봤다. 기분이 나빴다. 혹시 내 행색이 초라해서 나를 멈춰 세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3개월 동안 그리스와 이란을 여행해서 피부는 새까맸고 수염은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다. 승객들이 다 지나가면 컴플레인을 걸어야겠다고 이를 갈았다. 모든 승객들이 탑승하자 승무원이 내게 다가왔다. 미소와 함께 나의 좌석이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좌석에 앉으니 내가 언제 분노를 했었나 싶었다. 편하게 누워서 가도 되는 편안한 좌석, 비스듬이 앉아 다리를 꼬고도 남는 여유 공간, 앉자마자 나오는 웰컴 드링크, 혼자서만 쓰는 팔걸이, 멀리서 리모콘으로 컨트롤이 가능한 모니터, 그 모든 것이 쾌적했다. 더불어 나오는 기내식과 온갖 서비스들은 호텔에서 최상급 서비스를 받는 것만 같았다. 비즈니스 좌석에 감탄하고 있을 즈음 승무원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헤드폰을 가리키며 특별한 기능이 있음을 설명해 주었다. 바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었다. 기능을 실행하면 주위 소음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헤드폰을 착용해 노이즈 캔슬링 버튼을 눌렀다.


신세계였다. 기내에 깔려있는 비행기의 소음이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주위 승객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앉아있는 좌석이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공간으로 완성된 것만 같았다. 사실 하나의 좌석은 한정된 공간에 대한 물리적인 점유만을 의미했다. 그 누구도 이 공간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었지만 단 하나, 소음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무리 넓고 쾌적한 비즈니스 좌석이라 하더라도 주위 소음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좌석은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노이즈 캔슬링은 소음을 완벽하게 차단함으로써 온전한 나만의 공간을 구축했다.


사실 비즈니스 클래스의 경험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노이즈 캔슬링이었다. 내게 노이즈 캔슬링은 단순한 소음 차단의 의미로 다가오지 않아서였다. 선명하게 느꼈던 건 새로운 공간감이었다. 분명 곁에 있던 소음들이 노이즈 캔슬링 기능 하나로 사라져 버렸다. 이건 고찰해 보자면 그동안 인류 역사가 정의해 온 공간의 의미를 새로이 정의하게 되는 혁신적인 기능이었다. 그동안 이 세상 그 어떤 공간도 주위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 극단적인 예가 층간 소음이다. 인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중창을 만들고, 두꺼운 방음벽을 세우고, 벽에 흡음재를 발라가며 거주 공간을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쉽게 경험할 수 없었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이제 대중화되었다. 요즘 출시하는 이어폰과 헤드폰 중 일정 금액 이상의 제품들에는 이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고급 차량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앞으로 주거 환경에도 적극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거리의 행인들을 보면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비싼 이어폰과 헤드폰을 쓴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볼 때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비싼 값을 주고 노이즈 캔슬링이 탑재된 음향기기를 구매하는 것은, 하나의 공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심리가 기재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홍익대학교 졸업전시 작품



얼마 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전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 나의 이목을 끈 건 한 외국인 학생이 담은 한국 젊은이들의 초상이었다. 그가 바라본 한국인들은 무척이나 획일적이라고 했다. 모두가 하나의 유행과 가치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상징이 에어팟 맥스라고 했다. 물론 애플의 헤드폰이 우리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세련됨과 힙함의 상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초상이 젊은 세대가 열망하는 공간 소유에 대한 열망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집 마련은 아득해 보이는 오늘 이 시대 속에서, 노이즈 캔슬링은 나라는 존재의 최소한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얼마 전 SNL에서 MZ세대들이 회사에서 에어팟을 귀에 꽂고 근무하는 것을 풍자하게 되며 이 현상이 크게 조명이 되었었다. 회사에서조차 필요 이외의 잡음을 차단하고 싶어 하는 이러한 심리를 '요즘 것들'의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노이즈 캔슬링의 기능을 통해 바라보면 어떨까. 그들은 어디에도 소유할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노이즈 캔슬링으로 일상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오면 사유지에 침범하는 불청객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기성세대들이 노이즈 캔슬링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은 이미 사유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홍익대학교 외국인 학생이 진단하고, SNL이 풍자한 것처럼 우리 시대에 번져가는 노이즈 캔슬링의 유행은 우리 시대의 슬픈 일면을 진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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