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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03. 2023

직원에게 사기를 당하고 깨달은 것들

우리는 누구나 사기를 당할 수 있다

사기를 당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내게 크나큰 좌절감이 찾아왔다. 그것은 돈을 잃었다는 허탈감이 아니었다. 내가 속고 이용당했다는 상실감이었다. 그동안 나는 사기란 어리숙하고 어딘가 치밀하지 못한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기를 막상 당하고 나니 내가 이렇게 부족했나 좌절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사기를 당하기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기꾼과 나누었던 이야기, 그에게 베풀었던 친절과 호의, 철석같이 믿었던 그의 달콤한 거짓말들, 그에 대한 믿음, 그 모든 것들이 사기로 귀결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기라는 걸 나만 몰랐던 것이었다.


그를 만나게 된 건 사람이 급해서였다. 거래처를 돌며 물건을 수거하고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할 직원이 필요했다. 사업도 하고 소설도 집필하던 나였기에 하루하루가 너무나 숨이 가쁘도록 힘들었다. 일손이 너무 부족해서 당장이라도 일 할 직원이 필요했고, 급한 마음에 구인 광고를 냈다. 가장 첫 번째로 연락 온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면접에 온 그는 자신이 이 일에 얼마만큼의 경력이 있고, 또 이 일을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력서도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게는 귀인이 찾아온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고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당장 내일부터 일할 수 있다고 운을 띄워놓고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사정이 있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지금 타 지역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력서의 주소란을 다시 보니 정말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의 옆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채용해 주면 여기 근처로 이사를 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헌신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이제 자신을 무시하고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걸 보고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새로운 인생을 타지에서, 그것도 나와 일하며 시작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를 채용하면 일도 잘 될 것 같았고, 이 사람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의미 있는 선택인가, 그가 찾아온 게 운명처럼 여겨졌다. 그는 자신이 회사 근처에 이미 집도 알아봤으며 채용만 해주면 바로 계약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채용하겠다고 했다. 그는 감사하다고 하곤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기는 한데..."로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근처에 집을 구하려면 계약금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계약금을 제외한 월세 보증금 정도는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는데 혹시 빠른 계약을 위해 계약금을 미리 가불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여기에서 의심이 들었다. 아직 그가 누구인지도 몰랐고 일도 시작하기 전에 가불을 해달라는 게 어딘가 미심쩍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아니 누구든 일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마음속에는 이미 그를 채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계약금이 얼마인지 물었다. 200만 원이라고 했다. 천천히 생각해 보니 근로계약서도 쓰고, 차용증도 쓰고, 그의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증명서등을 받아 놓으면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차용증도 변호사에게 물어서 작성하고, 신상에 대한 서류는 그와 함께 시청에 가서 발급받으면 별 탈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제안을 했다. 가불을 해줄 테니 매달 20만 원씩 월급에서 차감하는 식으로 상환을 하면 어떻겠냐고. 그는 너무 좋다고 했다. 다음날 그와 근로계약서를 비롯한 차용증을 썼다. 함께 시청으로 향해 그에 대한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들을 발급했다. 함께 간 이유는 혹시나 그가 위조해 올 수도 있을 위험성을 피하고자 함이었다. 이 정도의 치밀함을 생각한 나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성실히 일할 사람을 잡았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도 들었다. 서류를 받은 나는 다시 그를 태우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추가 안전장치의 일환이었다. 그가 진짜 부동산 계약을 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계약 자리에까지 합석을 했다. 임대인도 있었고, 보증금은 이틀 후 납입 예정이었고, 계약금도 200만 원이었다. 그 어떤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계약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임대인에게 계약금을 입금시켜 주었다. 부동산 계약도 완료가 되었다. 그는 내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힘차게 일해보겠다고 했다. 나도 좋은 인연이 생긴 것 같아 기쁘기 그지없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겠다는 그를 붙잡았다. 취업을 위해 먼 길을 버스를 타고 왔을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찐해 보여서였다. 그를 차에 태워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드디어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출근 시간이 되어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첫 출근부터 이러면 실망이긴 한데. 10~15분 정도 늦나 보다 생각하며 그를 기다렸다. 30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했지만 통화연결음에서는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안내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온갖 추측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밤 이삿짐을 늦게까지 정리하다가 늦잠을 자는 건 아닐까. 하지만 무작정 그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쌓여있는 업무들을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점심도 먹지 않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눌러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부동산으로 향했다. 나는 중계인에게 물었다. 혹시 그 집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나를 기억한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계약한 날 그 집 계약 파기 하셨잖아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말인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같이 왔던 분이 계약 끝나고 10분도 되지 않아 문자로 계약 파기하겠다고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럼 계약금은 어떻게 된 거죠?" 나는 놀라 물었다. "본인 계좌로 달라며 문자를 보냈어요. 계약상 파기할 때는 10% 차감하고 드리는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괜찮다고 하던데요. 사장님도 다 아시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는 그제야 내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종일 일은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너무나 허무했다. 그는 나의 차를 타고 가며 문자로 계약을 취소했던 것이었다. 내게는 내가 출간한 소설책에 대해서 묻고는 꼭 읽어보겠다고까지 했었다.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이 게임 스트리머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렇게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문자로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을 갈취해 간 것이었다. 그를 만나고 나서 있었던 모든 일이 그의 계획 속에 있던 일이었다. 내가 그의 손에 놀아났다는 사실에 크나큰 좌절감이 찾아왔다.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자책하며 지내기 시작했다.


그의 사기는 나의 삶에 크나큰 타격을 주었다. 그것은 심리적인 타격과 금전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었다.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나는 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에게 내용증명을 보내고, 경찰서에 진성서를 제출하고, 또 조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사실 그를 잡을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의 신상을 내가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가족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가족 중 한 명이 게임 스트리머였다. 그건 그가 말했던 유일한 진실이었다. 등본 상의 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게임 스트리머가 있었다. 그를 가족과 함께 엮어 공론화하면 사법적인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공론화는 하지 않았다. 공론화라는 제도가 썩 내키지 않아서였다. 요즘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유명인들의 가족일 경우, 해당 사건이 유명인들의 문제로 공론화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사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사회적인 처벌이었다. 이 현상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 번째 사법질서가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며, 두 번째 사법제도를 사회적 처벌이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더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공론화를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공론화는 일종의 연좌제적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죄가 가족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이었다. 연좌제는 부당한 제도였다. 한 개인의 정치적인 잘못이 온 가족의 숙청까지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죄가 대물림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본보기 기능을 할 수는 있었지만, 사법제도의 불공정함을 나타내는 지표였다. 때문에 갑오개혁 때는 이 연좌제가 공식적으로 폐지가 되게 된다. 이 연좌제는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에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도 했다. 오늘날에 이르러 연좌제의 형태가 공론화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도덕관념은 연좌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신고를 해놓고 기다리기만 했다. 6개월이 지났고, 1년이 지났을 무렵 저 멀리 창원지방법원에서 연락이 왔다. 그가 잡혔다는 것이었다. 놀랐던 것은 그가 나에게만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전국 여기저기를 다니며 개인사업자들에게 동일한 형태의 사기를 치고 다녔다. 일손이 급한 사업장에 가서 자신이 일을 할 테니 가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가불의 이유는 다양했다. 안경을 맞춰야 한다는 것부터 부채를 상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버젓이 살아있는 어머니의 장례식 비용도 있었다. 장례식 사정을 들은 사업주는 1,000만 원을 빌려주기까지 했다.


재판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판결문이 도착했다. 판결문에서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미 사기로 수차례의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모두 위장 취업의 형태였다. 그는 징역을 살고 출소하면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시 잡히고 징역을 살았다. 그는 평생을 사기꾼으로 살 사람이었다. 이번 사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피해자들에게 변제를 할 능력이 없다고 징역을 택했다. 나는 어떻게든 변제라도 받고 싶어 변호사에게 민사로 해결할 방법을 물었지만 해당 사건은 여러모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그에게 이용당해지고 버려진 셈이었다.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일반인이 사기꾼을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기꾼들은 상대방의 니즈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조급한지도 알고 있다. 그들은 이 전제 조건들을 통해 자신들이 어떻게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계산해 낸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은 소시오패스적이라는 것이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한 개인이 일생동안 피땀 흘려 일궈온 모든 것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보이스 피싱, 전세 사기, 투자 사기 등이 그렇다. 그들은 피해자들이 금전적 피해를 입고 충격으로 극단적 선택을 해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그저 피해자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을 뿐이다.


얼마 전 교양 프로그램에서 교도소에서 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교도소의 범죄자 중에서 유일하게 교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사기꾼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뇌구조가 이미 남을 속이고 자신을 이득을 취하는 사고에 길들여져 있어서 퇴소를 한다 하더라고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다. 사기꾼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일반인들과 인생 게임을 한다. 일반인은 자신의 미래와 가족들의 신상을 걸고 타인의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자신의 신상과 가족마저 사기를 치기 위한 카드로 여긴다. 이미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사기를 당하고 상처뿐이었지만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기는 그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기로 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 덕분에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람에 대한 의심의 체크리스트는 갖기로 했다. 내가 무언가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을 때는 언제나 이 니즈를 빌미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내게 과도하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사람은 내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원할 때는 절대 조급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나는 사기 같은 건 당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오만하지 말자.







관련 글에 대한 영상도 두 편 만들었답니다.

놀러 오세요 :)


https://youtu.be/FHR0DSXdXVE


https://youtu.be/U8cbvdjCf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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