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임차인의 슬픔
건물주가 나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임대료를 더 줄 수 있는 기업에게 건물을 통임대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혹은 나의 공간을 다른 용도로 직접 이용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나는 계약기간도 남았고 이곳에서 나의 꿈을 찾아가고 있기에 당장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건 임대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어진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다. 젊으니까 다른 데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냐는 것이었다. 젊어서는 원래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고 덧붙였다. 다시 시작해서 고생하라니. 1년 6개월 동안 내가 이룬 것들은 모두 무시하는, 너무 잔인하고 무책임한 말이었다.
사실 나는 임대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줄 알았다. 1년 6개월 동안 내가 이룬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겁이 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변호사는 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권리를 잘 보장해주고 있었다. 월세를 3개월 이상 밀리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계약 갱신권까지 임차인이 갖고 있었다. 계약 갱신 시 임대료 5%의 상한선도 있어서 월세가 터무니없이 올라갈 일도 없었다. 이렇게 내게는 최대 10년 동안 계약을 연장 및 유지할 권리가 있었다. 권리금도 보장되어 있었다. 즉 나는 법적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임대인에게 나갈 수 없다고 확고하게 입장을 표명하니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관계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 나는 임대인에게 자주 안부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명절에는 선물을 드리기도 했다. 멋진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늘 감사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대인도 건물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자 같다며, 성실하다며, 늘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며 나의 칭찬을 하곤 했다. 해외에 다녀올 땐 와인도 사다 주셨다. 하지만 나가 줬으면 하는, 나갈 수 없는 서로의 입장이 충돌한 뒤로는 좋기만 했던 관계가 어딘가 불편해지고 말았다. 이익 앞에서 냉철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이치를 느끼고 마음이 아팠다.
이번 일을 계기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임대인의 나가줄 수 있냐는 한 마디에 나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임대인과 이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도 마음이 절박했고 또 불안하기만 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임대인과 임차인의 입장 차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임대인에게 내 공간은 가진 것 중에 일부일 뿐이었지만, 나에게 이것은 내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일부와 전부를 놓고 대화를 하니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일이 있고 다짐했다. 이 공간을 나의 전부가 아닌 나의 일부로 만들자. 이건 나 자신을 더 큰 그릇으로 만들자는 각오였다. 이 공간에 나를 담는 게 아니라, 내 삶에 이 공간을 담자고 다짐했다.
각오를 하고 나니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 나는 그동안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세상은 열심히 산다고 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만은 아니었다. 성실에 영리함을 더해야 했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나는 내 삶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했고, 스케줄을 똑 부러지게 관리했다. 상업 공간에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은 모두 치워버렸다. 당근으로, 폐기물로 치워버렸다. 그렇게 나는 연말 두 달에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지금은 2호점을 냈고, 마침내 이 공간을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로 만들었다.
지금 나는 나가줄 수 있냐며 내 삶을 뒤흔들었던 임대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사실 이곳에서 나가라는 말도 아니었고, 나가줄 수 있냐는 하나의 제안이었다. 선택지는 내게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 한마디에 내 삶이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 가를 깨달았다. 덕분에 나는 나의 현 위치를 자각할 수 있었고, 발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으며, 내 삶을 전반적으로 리뉴얼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며 직면하는 위기는 삶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진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대로 무너지면 위기이고, 딛고 일어서면 기회인 것이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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