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을 집 없이 지냈다
서울에서 집 없이 1년 6개월을 지냈다. 무작정 꿈을 이루겠다고 상경했을 때 이미 나의 고려사항에 집은 없었다. 집 대신 내가 구한 건 30평의 작업실이었다. 이곳은 나의 무대가 될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소설가로서 독서와 집필을 하고, 크리에이터로서 컨텐츠를 만들고, 출판사 대표로 업무를 보고, 문화 기획자로 북토크와 독서모임 등 다양한 클래스를 열 계획을 가졌다. 핫플레이스에 자리잡고 있는 제법 멋진 공간이기도 해서 월세도 비쌌다. 거금을 들여 가구를 사고 손수 인테리어까지 했다. 이제 내겐 두 가지 길 밖에 없었다. 꿈을 향해 나아가거나,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러가거나.
집은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필요성도 없었다. 주거는 간단하게 해결했다. 자는 곳은 군대에서 쓰던 접이식 매트리스를 썼고, 침구류는 베낭여행할 때 쓰던 침낭을 이용했다. 나의 꿈과 일에 집중해야할 때라고 생각해서였다. 20대 시절 30개국을 홀로 베낭여행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여행자는 간소하게 잠자리를 해결함으로써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더불어 이런 방향성에 좋은 시안이 되었던 것은 일론 머스크와 기안84였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위해 공장에서 먹고 잤으며, 기안84는 방송에서 보여진 것처럼 웹툰 작가 시절 네이버 본사에서 기생을 했다. 나도 일과 꿈에만 미쳐보고 싶었다.
대신 철칙을 세웠다. 작업실에서 자는 걸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말자. 이 말은 푸석하거나 꾀죄죄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는 의미였다. 5분 거리의 헬스장을 등록했다. 아침에는 7시에 일어나 헬스장에서 가벼운 운동 후에 샤워를 하고 왔다. 같은 건물에 사람들은 출근 시간이 대부분 오전 9시였다. 나도 이 리듬에 맞춰 깔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해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후 10시까지 작업을 하다가 헬스장으로 향했다.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새벽은 주로 소설가로서의 집필 시간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고 작업에 몰두했다.
빨래는 자주할 수 없으니 나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창고에 작은 빨래 바구니를 비치했두었다. 속옷은 20~30벌씩 준비를 했다. 헬스장에 돌아오면 빨래를 바구니에 차곡차곡 넣었다. 2주 정도 지나면 바구니가 어느정도 차올랐다. 그러면 그때 코인 세탁소로 가서 빨래를 하고 돌아왔다. 옷은 창고에 행거를 준비해두고 주기적으로 근처 세탁소에서 드라이 클리닝을 맡겼다. 식사는 늘 근처 식당을 이용했다. 근처 커리집을 가장 많이 갔는데 이유는 세 가지였다. 가까웠고, 맛있었고, 혼자 책 읽으며 먹기 편했다. 메뉴가 물리거나 하는 건 신경쓰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나의 일과 꿈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였다.
작업실에서 정말 주7일제로 12시간을 넘게 일했다. 그동안 누군가와 밥을 먹거나 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어쩌면 내 삶에 주어진 가장 좋은 기회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 헬스장에서 돌아오면 12시였는데 잠자리에 바로 들지 않았다. 졸려서 못 버틸 때까지 업무를 보다가 간이 침대를 펴고 잠에 들었다. 보통 새벽 2~3시에 잠이 들었는데 제대로 계산해보면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를 잤고, 밥 먹고 헬스장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나의 업무에 할애했다. 이건 공간이 주는 에너지 덕분이기도 했다. 업무를 위해 조성한 공간이다보니 몸이 그렇게 움직였다.
이게 힘들면 고향에 내려가던가.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1년 6개월의 성과는 만족할 정도로 좋았다. 소설가로서는 세 권의 책을 집필하고 출간했고, 메이저 신문사와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의 문학 전시회도 개최했고, 이것을 토대로 아트리버스라는 회사와 헥스 커피라는 커피숍과 협업해 두 번재 전시도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는 큰 주목을 받을 정도로 출판사로서도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또 작업실을 예쁘게 꾸며 방송 촬영 대관도 했는데 대관 횟수가 300여회에 달했다. 더불어 다양한 행사도 진행했다. 나의 북토크도 있었고, 다른 작가들의 북토크는 물론 다양한 클래스와 독서모임도 있었다.
2023년 연말에는 열심히 일한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매출이 직장을 다니던 때 월급의 5~6배를 달성했다. 직원도 없이 혼자서 일한 결과였다. 1년 6개월을 이렇게 살아보니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몸이 축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삶의 패턴을 길게 유지해서는 건강에 이상이 생기겠다 싶어 집을 구했다. 사실 그동안 집을 구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일과 꿈에만 집중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집을 구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1년 6개월만에 드디어 처음으로 집을 구했다.
어느덧 서울살이 2년차를 바라보고 있다. 이제 홈리스로서의 생활은 끝이 났다. 그런데 여전히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나의 주소지가 아직도 고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전입 신고를 서울에 하지 않았다. 기존의 작업실은 상가이고, 집은 상가 오피스텔로 구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모두 나의 사업자가 등록되어있는 공간이다. 1년 6개월의 실험의 결과는 두 가지 뿐일 거라 생각했었다. 꿈으로 향하거나,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이전보다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디론가 계속 나아가고 있는데, 이게 꿈을 향한 움직임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설가의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leewoo.dem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