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수팬의 탈덕 이야기
스무 살 무렵 나는 해외축구의 골수팬이었다. 그중 열렬하게 서포트했던 건 맨유였다. 내가 맨유를 좋아하게 된 건 당연히 박지성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라울이 뛰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했다. 한국인이 프리미어 리그를 뛴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었고, 나는 자연스레 레알이 아닌 맨유의 광팬이 됐다. 맨유의 새벽 경기가 있으면 늘 밤을 지새웠고, 축구 게임에 열을 올렸으며, 비싼 돈을 주고 박지성의 유니폼과 맨유의 굿즈도 샀다. 맨유와 박지성의 행보는 내 삶의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마침내 스무 살의 나는 첫 배낭여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고 첫 도착지는 당연히 영국이었다. 맨유의 경기를 직관하기 위해서였다.
맨체스터에 도착해 직관하게 된 건 웨스트햄을 상대로 한 홈경기였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박지성은 물론이거니와 호날두, 루니, 베르바토프, 퍼디난드 등 세계적인 선수들을 직접 봤다. 경기는 맨유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베르바토프는 골대 근처에서 우아한 턴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호날두에게 패스를 했고, 공은 골대의 그물망을 흔들었다. 이어 호날두가 추가 득점을 하며 경기는 맨유의 승리로 끝이 났다. 맨유 팬들 사이에 껴서 함께 환호했고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박지성 유니폼을 입고 갔던 덕분에 팬들로부터 많은 호의도 받았다. 펍에서 맨유 팬들과 술을 마시며 밤늦게까지 놀았다.
맨유의 골수팬이자 해외축구 덕후였던 사람이 축구 경기를 직관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내가 축구를 더 사랑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맨체스터를 떠나 유럽을 한 달 동안 여행하며 나의 마음은 점차 바뀌어 갔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던 것이다. 왜 나는 남에 동네 축구 경기에 열광하고 있었던 것일까. 맨체스터는 영국의 한 지역 축구팀이었다. 내가 맨유를 좋아한다고 나의 삶이 더 나아지거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맨유팬'이라는 정체성이 내 명함이 되거나 나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지성과 맨유를 탈덕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로 정말 해외축구와 맨유에 대한 관심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맨유의 골수팬으로 보낸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덕후의 열정을 배울 수 있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뜨거운 열정을 어딘가에 쏟아내야만 했다. 나는 나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나의 가치를 더 높이는 방법을 탐구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내가 열정을 쏟게 된 건 독서였다. 맨유로부터 배운 덕후의 열정은 이제 점점 문학 세계를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탈덕 선언을 하고 문학세계에 입문한 건 08년도. 16년이 지난 뒤 나는 어느새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늘 7번째 책을 출간했다.
지난날 해외축구에 미쳐있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결코 소설가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국을 찾아갈 정도로 정말 열렬하게 맨유를 사랑하며 뜨거운 열정을 배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맨유를 사랑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사랑했던 맨유는, 지금처럼 형편없는 맨유가 아니라 맨유의 황금기였다. 매 순간이 드라마틱했고 가슴 벅찬 행보로 가득했다. 그때의 선수들은 모두 레전드가 됐다. 아마 지금의 맨유를 사랑했다면 쓰라린 패배 밖에 없었을 테니 영광의 순간을 맛보지 못해 탈덕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의 맨유처럼 나의 문학적 여정을 열렬히 서포트하며 황금기를 만들어보려 한다.
https://www.instagram.com/leewoo.sse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