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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 Oct 07. 2024

독서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를 위한 독서에 대하여

독서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대 시절에는 독서를 목적 그 자체로 여기며 살아갔다. 다독을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행위라 믿기까지 했다. 당시 나는 독서에 흠뻑 취해 존경하는 소설가들의 인용문을 읊조리며 살았는데, 그건 마치 학창 시절 처음 보는 놈들에게 아는 형들의 이름을 물어보며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니체, 괴테, 토마스만 등의 문장을 등에 업고 나 자신도 그들과 같은 부류라 여겼다. 정작 이렇다 할 내 작품도, 사상도 없었지만 지금보다도 더 당당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회의감에 빠졌다.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기까지 했다. “나는 그저 인용문의 인간인가.” 외우고 다니는 문장을 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아는 형들의 후광이 없이 찐따 그 자체였다.


독서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자 도구가 되어야 한다. 마치 커피처럼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매개체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독서의 행위에 취해, 독서 그 자체에 갇혀 사는 삶은 리스크가 크다. 책이 사라지면 자신이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독서는 반드시 내가 주체가 되어 내용을 비판도 하고, 비평도 하고, 책들을 자신만의 분류 체계에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서는 그저 디딤돌이어야 한다. 독서로부터 자신의 생각과 삶이 펼쳐져야 한다.


나는 이제 독서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이제는 큰 가치와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론 소설가로 살아가는 나의 삶에는 하루 두 잔의 커피처럼 필수불가결한 행위이지만, 타인의 삶에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서 없이도 유능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책벌레가 아니어도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를 대제국으로 키워냈고,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스티븐 잡스 같은 인물은 거대한 기업을 만들었다.


책을 많이 읽지 않고도 사상의 인간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가령 체사레 보르자는 냉혹한 정치 철학과 야망 가득한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가였다. 동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덕목을 저술한 그 유명한 <군주론>을 이 체사레 보르자를 훌륭한 군주의 모델로 삼고 집필했다. 마키아벨리는 냉혹한 군주의 모델을 세상에 제시했지만, 사상 없이도 체사레 보르자는 사상 그 자체로 살아갔다.


독서의 효용성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읽어 나갈 것이다. 소설가로 살아가는 내 삶에 독서는 커피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우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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