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의 대중 기만에 대하여
글로벌 패션계는 세상을 기만했다. 그건 바로 비건 레더의 열풍이었다. 2021-2022년 무렵,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과 윤리적 소비가 핫한 트렌드로 주목받았다. 윤리적 소비와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 비건이라는 삶의 태도가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이를 주도하듯 구찌는 동물성 가죽을 대체하는 데메트라Demetra라는 비건 가죽을 선보였다. 식물성 원료를 77% 함유한 이 데메트라는 가죽에 비해 혁신적으로 가벼웠지만, 형태와 질감을 레더의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구찌뿐만 아니라 에르메스와 발렌시아가도 비건 레더의 트렌드를 반영해 자체 대체 가죽을 개발했다.
비건을 지향하는 대체 가죽, 윤리적 소비와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는 멋이라니 얼마나 세련된 행보란 말인가. 패셔니스트 소설가를 꿈꾸는 나도 이에 편승하고 싶었다. 명품들이 비건 레더를 도입하자 국내 브랜드들도 우후죽순 이 트렌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강제적인 동참이기도 했다. 점원이 앞으로 패션계에 천연 가죽 사용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말할 정도로 의류 매장에는 비건 레더가 눈에 띄게 많았다. 가죽 제품을 좋아했던 나는 당시 시스템 옴므와 타임 옴므의 비건 레더 재킷을 총 세 개나 구입했다. 소비 만으로도 세련되고 건강한 패션을 지향한다는 도덕적 우월감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비건 레더는 대중의 기만에 지나지 않았다.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대체 가죽을 비건 레더라 정의한 것인데 그 본질은 사실 합성 피혁이었다. 이 합성 피혁의 단점은 시간이 지나면 가수분해가 되어 가죽이 가루처럼 부서진다는 것이다. 내 옷장에 있던 비건 레더도 3년 정도 지나자 가수분해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매장에 가져갔더니 놀랍게도 두 브랜드 모두 같은 답변을 내놨다. "합성 피혁은 어쩔 수 없어요." 나는 항변했다. "아니, 비건 레더라면서요." "비건 레더가 합성 피혁입니다. 고객님." 그리고 수선 불가 판정을 냈다. 팔 때는 비건 레더이고, 수선할 땐 합성 피혁이라니.
사실 그들의 응대가 맞았다. 비건 레더는 포장지였고, 본질은 합성 피혁이었으니 말이다. 즉, 비건 레더는 패션 산업과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련된 상업적 수사에 불과했다. 합성 피혁은 폴리우레탄 등의 합성수지로 천연 가죽을 모방해 만든다.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지 않아 '비건'이라 칭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백수를 홈프로텍터라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세 개의 비건 레더 재킷을 버렸다.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수명을 다한 옷이 과연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보유한 천연 가죽 재킷 중 18년을 넘게 입고 있는 제품도 있다. 과연 무엇이 더 친환경일까.
지금도 나는 비건 레더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와 패션 산업에게 속수무책으로 기만당했기 때문이다. 가죽이 아닌 비건 레더를 소비한다는 것에 얼마나 큰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던지,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기까지 하다. 합성 피혁은 비건 레더의 포장지를 입고 보다 비싼 가격에 소비자에게 팔렸다. 마치 인공 배양육이 클린 미트로 이름표를 바꿔 비싸게 팔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비건 레더라는 포장지를 벗기면 합성 피혁이 내구성의 문제와 함께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이제 패션 업계의 비건 레더의 바람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유한다고 말했다.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도 잘 드러난다. 소설 속 절대 권력자 빅브라더는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 언어를 통제한다.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의 단어를 삭제해 그것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현실은 소설처럼 극단적이지 않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설계된 언어'를 통해 '설계된 사유'를 하고 이어 '설계된 행동'을 하고 있다. 비건 레더의 대중적 기만처럼, '오픈런'이나 '잇템' 같은 단어는 무의식적 소비를 부추긴다. 이처럼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마주하는 단어가 그 속에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한 번쯤 파악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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